[포(four)에버육아]<10>아이 손잡고 소중한 한 표…숙제가 아닌 축제, 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7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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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일은 선거하는 날이죠? 선거하는 거 보고 사진도 찍어 오래요.”

첫째가 지방선거 전날인 12일 아침 말했다. 요즘 어린이집 숙제는 참 건전하구나. 국공립어린이집인 만큼 투표율을 독려하려기 위한 복안이 반영된 건진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그럼 내일 엄마 투표할 때 동생들과 함께 가자”고 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만든 작은 코팅지를 내밀었다. 주민등록증과 똑같이 생긴 종이에 자신의 얼굴이 인쇄된 신분증이었다. “선생님이 투표할 때는 꼭 이런 걸 들고 가야 한대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를 낳은 이래 두, 세 번 선거를 치른 것 같다. 대부분 육아휴직 때였기에 갑작스러운 ‘빨간 날’이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이번엔 근무였지만 다행히 팀원들의 배려로 쉴 수 있었다.

엄마가 되면서 아무래도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보육 관련 정책이다. 우리 동네는 비교적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서관이나 체육관 같은 어린이 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영·유아를 둔 젊은 직장인 부부가 많은 데 반해 어린이집 수도 여전히 부족하다. 동네 엄마들 카페에는 아직도 연초마다 ‘어린이집 대기 순번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구청장, 시·구의원 선거에서 후보들이 어린이 시설 관련해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 살폈다. 같이 투표를 하러 가는 딸에게도 간단히 설명해줬다. “이 후보는 새로 태어날 아기가 들어갈 어린이집을 더 만들어줄 수 있대.” “이 아저씨는 우리 딸들 책 읽을 도서관을 만들어준다네.”

선거일 아침, 남편은 출근이라 새벽에 나가 따로 투표를 했고 나는 아이들 아침을 먹인 뒤 집 앞 투표소로 향했다. 혹시 사진을 찍힐까 싶어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나왔는데 다행히 언론사는 없었다. 괜한 오지랖이 아니라 지난 선거 때는 애들을 끌고 투표하러 나왔다가 투표소 앞에 있던 몇몇 언론사가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아이들을 여럿 끌고 나온 엄마의 투표 장면이 인상적이었 게다. 인터뷰까지 하려고 다가오는 통에 “나도 기자다” 라고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하고서야 상황을 모면했다.

이번에 언론사는 없었지만 여느 때처럼 투표소 직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뱃속에 하나 더 있는 거예요?” “애국자시네.” 신분 확인을 하고 투표용지를 받으면서 으레 듣는 인사가 뒤따랐다.

첫째는 숙제에 대한 책임감으로 내게 딱 붙어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었다. “엄마, 여기에 투표를 하는 거예요?” “내가 투표하는 곳에 따라 들어가도 돼요?” 안된다고 하자 제법 전문용어까지 썼다. “아, ‘비밀투표’구나.”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서 모의 투표를 했단다. 반에서 가장 좋아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한 명을 뽑아 써내는 일종의 인기투표였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딸은 투표 막판까지 누구를 뽑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원래 정규과정에 있는 건지, 다른 기관에서도 이런 수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투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한 교육에 새삼 감사했다.

전날까지 마음에 둔 후보와 정당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반을 접어 한 무더기는 첫째, 다른 한 무더기는 둘째에게 줬다. 첫째는 구멍에 넣은 뒤 “선거에 참여했다”며 팔짝거리며 좋아했다.

불현듯 나의 첫 선거가 기억났다. 그때 나도 저렇게 설레는 기분으로 투표함에 용지를 넣었는데…. 내 첫 선거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2002년 대통령선거였다. 구권력과 신권력의 교체, 그동안 본 적 없는 선거방식과 표심몰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란 희대의 스타 탄생은 내게 선거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다시는 그런 선거를 겪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때의 경험은 내게 선거란 ‘반드시 해야 하는 것’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정치에 제법 관심이 많다는 신랑만 해도 선거 공보물을 제대로 안 읽는데 반해 매 선거 때마다 기자란 직업을 떠나 선거 공보물을 열심히 읽는 것도 그런 경험의 소산이다. 내 한 표를 신중하게 행사하고 싶다.

과거 투표소 사진으로 논란이 많았던 만큼 아이의 숙제 사진은 안전한 투표소 밖에서 찍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와 셋째는 물론이며 숙제를 하러 왔다는 첫째조차 그저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 왔다는 것 자체에 신이 난 것 같았다. 투표소 이름이 적힌 종이 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자 신난다며 포즈를 잡았다.

투표소를 나서며 꼭 숙제가 아니더라도 다음 번, 또 다음 번 투표 때도 아이들을 동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첫 선거 때 그랬듯 우리 아이들에게도 투표란 즐거운 것,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축제,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란 인상을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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