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면 공룡잔등 바위능선… 발 아랜 바다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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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해남 땅끝 달마산 ‘달마고도’

산골짝 아래 저 바다 왼편으론 해남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보이고 그 반대편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여긴 달마고도 3코스의 너덜 구간으로 이 돌무더기는 8km나 이어지는 암석연봉의 추락 잔해다. 해남(전남)에서 summer@donga.com
산골짝 아래 저 바다 왼편으론 해남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보이고 그 반대편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여긴 달마고도 3코스의 너덜 구간으로 이 돌무더기는 8km나 이어지는 암석연봉의 추락 잔해다. 해남(전남)에서 summer@donga.com
바닷가 산, 높이 수치만 보고 만만하게 여기다간 큰코다친다. 등산의 기점이 해발 0m(해수면)여서다. 내륙의 산은 대부분 그보다 훨씬 높다. 그러니 해안의 산은 높이가 낮아도 고도차가 훨씬 큰 경우가 많다. 또 해안에서 치솟아 경사도 가파르다. 해남 땅 끝 달마산(489m)을 보자. 높이는 소백산(1439m)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렇다면 산행시간(왕복 네 시간)도 그럴까. 천만에. 별 차이가 없다. 소백산 등산기점(희방사) 고도가 850m여서다. 정상까지 수직 고도차는 585m. 달마산보다 100m가량 높다. 물론 미황사(주차장 고도 117m)에서 오르면 372m 정도지만.

달마산은 특별하다. 산쟁이가 아니라도 오르고 싶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공룡잔등의 돌기를 연상시키는 장장 5km의 톱날형상 바위능선이 그것이다. 이 산은 백두산에서 몸을 일으킨 대간(大幹)이 태백산 지리산 지나며 잦아들다 바다 앞에서 멈칫 선 형세의 두륜산(대흥사를 품은 산) 여파다. 대차게 뻗던 대간지세는 엉거주춤한 두륜산을 내팽개치고는 그 등줄기 너머 바다로 질주하다 땅 끝을 코앞에 두곤 급제동하는데 달마산은 그 주체불가의 거대관성이 잠자던 암반을 벌떡 일으켜 세운 모양새다. 누구와도 맞짱 뜰 자세로 비치는 이 산의 폭발적 기갈은 게서 온 듯하다.

달마산의 매력 하나를 추가한다면 땅 끝 해남의 바다풍광 전망대란 것이다. 내륙 산 정상에선 수많은 산봉이 파도처럼 다가오는 ‘산의 바다’를 만난다. 반면 여기선 바다와 육지가 격하게 충돌하거나 서로 포옹하는 특별한 풍광을 만난다. 달마산에선 해남 땅과 진도 완도의 점점이 섬이 두루 어울리는 풍광을 본다. 그리고 그 일부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의 다도해국립해상공원. 게다가 여기가 어딘가. 인도에서 온 승려 ‘달마대사의 법신이 머물 만한 산’(동국여지승람 기록) 아닌가. 그래서 수많은 이가 이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런데 이젠 그 수고마저 덜게 됐다. 달마봉(정상)에 이르지 않고도 이 모든 것을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달마고도(達磨高道)’가 개통된 덕분이다. 이름 그대로다. 이 길은 ‘평지’가 아니라 해발 300m 산중턱 허리께로 난 고지대 길이다. 그 높이를 굳이 비교하면 서울의 남산꼭대기(262m)쯤. 달마봉 아래 동서남북 산사면을 동그랗게 에워싼 둘레길이다. 산길인 만큼 오르내림도 빈번하지만 정도는 미약한 수준. 어린이들도 무난히 걸을 정도다. 17.74km나 되니 부지런히 걸어도 7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나마도 쉽지 않다. 다도해 섬과 바다, 해남 땅의 정겨운 풍광에 홀려 걸음이 지체돼서다. 그러니 구간별로 나누어 걷기를 권한다.

기자가 여길 걸은 건 봄볕 따사롭던 14일. 소감은 이 한마디로 족하다. ‘명품 길.’ 그 묘미는 스위스알프스 산악하이킹에 견줄 만하다. 고도 2000m 안팎 산등성을 걷는 알프스에선 장대하고 멋진 설산과 계곡, 산 아래 마을 풍광이 시시각각 쉴 새 없이 펼쳐져 걷는 내내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아쉬움과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달마고도를 걷는 동안 그 모든 것이 해소됐다. 연이은 멋진 산과 바다, 숲의 풍광에 매혹돼서다.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면 금강산 1만2000봉을 상기시키는 수려하고 기묘한 바위능선이 시야를 압도한다. 그 바위는 오랜 세월 이어진 추락의 잔해. 그런데 그 흔적을 우린 고도를 걷는 동안 곳곳에서 만나고 건넌다. 그 바위가 부서져 고도차 1200m로 산등성을 덮고 있는 너덜지대다. 한반도에서 이런 광경이 펼쳐지는 곳, 아마도 여기뿐일까 한다. 또 시야를 가리던 수풀이 사라진 곳은 전망대(능선 남쪽 2·3코스 사이)이자 쉼터가 된다. 거기선 늘 해남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보인다. 그것도 아주 또렷이. 주변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그 수면은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완도군)으로 장식됐다. 또 섬과 섬 사이엔 설치미술을 연상시키는 전복 양식장. 그 기하학적 패턴 덕분에 이 바다는 정원으로 다가온다.

그 바다와 이 달마산 사이의 해안평지. 여유가 느껴지는 그 땅은 지금 봄의 생명력이 충만하다. 혹독한 겨울을 용케도 이겨내고 뽀송뽀송한 대지를 뚫고 나온 초록빛 마늘줄기의 밭이다. 그 사이 농로로는 경운기가 오가고, 초록 빨강 파랑의 색색 마을지붕 위로는 아지랑이가 핀다. 그런 해안마을 앞 바다로 배 한 척이 지난다. 저 바닷길, 17세기엔 구사일생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스페르베르호 선원 하멜의 일행(36명)이 효종의 부름으로 한양 가느라 지났던 바다(1653년)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도 오가던 바닷길이다. 그 기지 청해진은 대교 건너 완도의 왼편 해안에 있었고 그의 선단은 달마 두륜 두 산 너머 강진에서 청자를 싣고 아라비아 상선이 정박하던 동중국해의 닝보(중국 저장성 영파·옛 명주)를 오갔다. 고려 조선 때 창궐했던 왜구의 노략질도 저 길로 이어졌고 정유재란 중에 충무공 휘하의 조선 수군이 활약한 무대도 저기였다.

이 길을 내기가 그리 녹록진 않았다. 달마산 전체가 바위여서다. 그런데도 장비를 전혀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산등성 곳곳에 널브러진 돌을 하나하나 손으로 주워 길섶에 쌓은 축대에 의지해 길을 냈다고 한다. 그렇다. 맨손으로 쌓고 다진 덕분이다. 이 길이 이렇듯 단단하고 이리도 아름다운 것은. 이 사실을 알고 이 길을 걸으니 그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발걸음 하나도 허투루 내디딜 수 없다. 누군가의 고마움을 안다는 것, 그건 곧 나도 누군가에게 고마움이 될 수 있음이다. 그런 만큼 달마고도를 걷는다 함은 곧 타인을 향한 보답과 보시의 준비다.

달마대사는 인도 남부 향지국(香至國) 왕자였다. 그는 깨달음을 얻고자 520년 중국으로 건너가 불교에 귀의했다. 소림사에서 면벽 9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후 수나라의 혜가(彗可)가 가르침을 전수하며 달마는 선종(禪宗)의 종조로 추앙됐다. 그는 양나라 무제에게 미움을 사 독살 당했다. 하지만 3년 후 환생했고 직후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대륙엔 그 이름을 딴 산이 없다.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다. 그게 동국여지승람에 이 산이 그의 법신이 머물 만한 곳으로 기록된 배경이다.

깨달음은 오직 인간의 소치다. 그리고 그건 어디서고 가능하다. 이 길을 걷는 이, 맨손으로 이 길을 닦은 이를 기억하자. 그러면 고마움을 느낄 것이요, 그건 곧 깨달음으로 이어질 터. 그런데 여기가 어딘가. 달마의 법신이 깃들 만한 산이라 하지 않은가. 그러니 이 봄, 이 멋진 산길을 걸으며 종적 묘연한 달마와 조우를 기대하심은 어떠할지.


▼해창주조장의 3종 막걸리▼

150m 지하수에 無감미료… 클래식 음악으로 빚은 막걸리



전남 해남에 진정한 막걸리 주조장이 있다. 1927년 이후 90여 년간 술을 빚어 온 일본가옥의 술도가에서 술을 만드는 해창주조장이다. 여기서 직접 만든 누룩으로 해남 쌀(찹쌀 멥쌀), 지하 150m에서 퍼 올린 생수로 20일간 저온발효로 빚는데 어떤 감미료도 첨가하지 않는다. 발효 도중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특징. 음파의 진동이 발효에 간여하는 효모와 누룩 균의 활성화를 촉진시켜 좋은 술을 만든다는 믿음에서다.

막걸리는 세 종. 6도(%), 9도, 12도(3000, 6000, 9000원)이며 17도 프리미엄 막걸리도 준비 중이다. 술도가는 1927년 일본인 미곡상이 건축한 집을 개축한 것이다. 집엔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전통 정원이 조성돼 있는데, 배롱나무 등 40여 종의 수목이 연못을 끼고 우거져 있다.

실내엔 릴테이프 음악을 감상하며 간단히 시음할 수 있는 테이블도 있다. 주인은 술이 좋아 이 집을 사 여기서 주조를 시작한 귀농인 오병인 씨. 현지 판매보다는 서울 등지 애주가의 택배주문이 더 많다고 한다. 막걸리 병엔 이렇게 쓰여 있다. ‘발효의 섭리와 추억이 깃든 대한민국 대표 지역유산.’ 향과 맛을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문구다. 주소는 전남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 1. 061-532-5152

해남(전남)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달마고도: 미황사와 해남군청이 함께 이뤄낸 국내에 하나뿐인 해발 300∼350m 산허리의 고도(高道). 미황사 도솔암을 잇는 수직등산로도 곳곳에 연결돼 있다. ◇걷기 정보: 출발은 미황사 경내(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왼쪽으로 1코스(2.7km)가 시작된다. 전 구간 한꺼번에 걷기는 무리. 3구간에 이어 4구간 1km 지점의 임도에서 하산이 적당하다. 사전에 택시를 ‘마봉리 약수터’로 부른다. 이 코스의 소요시간은 대략 5시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게 좋다. 나무가 무성해지는 5월부터는 다도해 시야가 가려지니 신록 시기 전에 걷기를 권한다. ◇트레킹 가이드: 함께 걸으며 안내하는 전문가이드(13명)가 훈련을 마치고 대기 중. 1주일 전 요청한다(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229). 상세 정보는 전국의 걷기·자전거길 안내(통합여행정보서비스) 사이트인 ‘두루누비’(www.durunubi.kr) 참조.
미황사를 품은 달마산은 암봉이 무려 8km나 이어지는 아주 특별한 산이다. 해남(전남)에서 summer@donga.com
미황사를 품은 달마산은 암봉이 무려 8km나 이어지는 아주 특별한 산이다. 해남(전남)에서 summer@donga.com

미황사: 부채처럼 펼쳐진 달마산 암봉의 능선을 병풍 삼은 듯한 사찰. 삼국시대인 749년 산 중턱(해발 250m)에 들어섰다. 사적비에 따르면 홀연히 해안에 나타난 돌배(석선·石船)의 금인(金人)이 불경을 내려놓자 돌이 갈라지며 검은 소가 나타났다고 한다. 금인은 소가 불경을 싣고 가다가 누워 일어나지 않으면 거기에 불경을 봉안하라고 했다. 미황사 터는 그 소가 누워 죽은 곳. 소가 죽으며 냈던 울음소리 ‘미(美)’, 금인의 옷 빛깔 ‘황(黃)’에서 왔다. 이건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시사하는데 그 배경은 해상교역기지 청해진을 둔 한중일 삼국교역로의 교두보라는 지정학적 위치다. 대웅보전 천장의 꽃문양 단청과 천 분의 부처 그림, 자하루 전시관에 전시 중인 조병연 작가의 천 개 돌에 그린 부처 작품은 빼놓지 말고 보자. 템플스테이도 가능. 종무소(061-533-3521)

남도 한 바퀴: 전남관광지 광역 순환버스 ‘남도한바퀴’(citytour.jeonnam.go.kr)가 올해 ‘전라도 방문의 해’를 맞아 새롭게 단장한 후 운행 중. 월요일만 빼고 하루(13개) 이틀(8개) 일정의 다양한 테마(코스)가 있다. 코스 2개를 연결하면 1, 2박 일정. ‘해남·완도 힐링여행’(화요일)코스는 대흥사∼완도수목원∼정도리구계등해변∼완도타워. 모든 코스의 출발·도착지는 광주의 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과 송정역. 요금은 9900원. 섬·요트 코스만 1만990원, 2만5000원이다. 전용 콜센터 062-360-8502
#여행#해남#달마산#해창주조장#막걸리#달마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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