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 아닌 ‘필카’로 찍었다고?…이정록 사진작가의 ‘생명의 나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9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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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한 ‘사진’이다.

처음엔 그림으로 보였다. 사진이란 걸 안 뒤론 컴퓨터그래픽(CG)이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이게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찍은 작품이라니. 사진작가 이정록(47)의 개인전 ‘생명의 나무(Tree of life)-Decade’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년)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제8회 갤러리나우작가상’ 선정 기념으로 열렸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갤러리나우’에서 만난 이 작가는 “신과 인간이 교통(交通)하는 장소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작품은 지난해 영국 필립스옥션에서 2만2500 파운드(약 3360만 원)란 고가에 팔릴 만큼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엇’이 담겼기 걸까. 그게 뭔지는 각자 몫이겠지만.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는 건가.

“말로 설명하긴 다소 복잡하다. 일단 원하는 구도를 찾고 대상을 설치하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촬영도 장시간 노출하며 수없이 촬영을 반복한다.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 기법의 일종인데, 장시간 빛을 발산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순간 광(光)’을 쓴다. 한 작품 당 완성에 최소 2주가 걸린다. 한라산에서 작업할 땐 6주가 걸렸다.”

-무척 고된 작업이겠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작가로선 너무 즐거운 시간이다. 예술사진은 실상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표현이라고 본다. 심장 어딘가를 관통하는 찰나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나. 난 억지로 만들기보단 기다리는 편이다. 에너지가 뿜어내는 순간이 잡으면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나무라는 개체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

“자연은 언제나 내가 작품을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특히 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한 존재 아닌가. 계기는 2007년 전남 고흥이었다. 뿌연 안개 아래 넓은 들판에 홀로 선 고목을 마주한 순간 찌릿하고 전기가 통했다. 나무 주위로 퍼지는 아우라가 보였다고나 할까. 나무를 숭배한 옛 선조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걸 표현해나가는 작업이 10년이 흘렀다.”

-나무 주변으로 ‘나비’가 날아다니는 작품도 많다.

“역시 신화적 풍경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 평범한 장소(place)가 중립적인 무균질의 공간(space)이 바뀌는 지점에 어울리는 매개체다. 나비는 역사, 종교적으로도 메타포가 강하다. 탄생과 죽음, 이상과 저승의 메신저로 읽히기도 하고. ‘navi’는 히브리어로 선지라라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엔 어떤 작품을 찍고 있나
.

“5·18민주화운동 당시 만행을 저지른 505부대를 아는가. 최근 광주에 그들이 고문을 자행했던 지하실에 다녀왔다. 온 몸이 떨렸지만 번뜩 뭔가 들어오더라. 신과의 교통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몇 년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을 다녀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류의 아픔도 신화적 교감이란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나우. 02-725-2930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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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나우 제공

생명의 나무, 2007년 첫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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