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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처럼 날다… ‘국가대표’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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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처럼 날다… ‘국가대표’ 해피엔딩

김재형 기자 , 김동욱 기자 입력 2018-02-20 03:00수정 2018-02-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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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한 맏형 최흥철 극적 합류… 스키점프 1세대 ‘꿈같은 비행’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 맏형 최흥철이 19일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점프 남자 단체전에서 날아오르고 있다. 한국은 12위(274.5점)를 기록해 8팀이 오르는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평창=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7년 전 좁디좁은 9인승 승합차에서 함께 ‘인간 새’의 꿈을 꾸던 스키점프 삼총사가 평창에서 다시 뭉쳤다. 영화 같은 ‘비상(飛上)’을 했다.

스키점프 단체전이 열린 19일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한국의 최서우(36)와 김현기(35·이상 하이원)에 이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던 최흥철(37)까지 나섰다. 예견되지 않은 등장이었다.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 스키점프대표팀의 최흥철, 김현기, 박제언, 최서우, 강칠구 코치(왼쪽부터). 최흥철 김현기 최서우 ‘3인방’은 27년 전부터 동고동락하며 불모지 한국 스키점프의 역사를 쓰면서 평창에서 6번째 올림픽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 스키점프대표팀 제공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주인공인 이들의 결합은 극적이었다. 최흥철은 월드컵 랭킹 점수가 낮아 평창 무대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날 국제스키연맹(FIS)은 “최흥철의 단체전 출전만 허용해 달라”는 대한스키협회의 구제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대한스키협회는 안방 흥행을 위해선 스키점프 1세대인 그의 출전이 필요하다며 FIS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FIS는 결국 대회 전날 출전국 전원의 동의를 얻어내 이를 허용했다.

4명이 필요한 단체전 인원을 맞추기 위해 노르딕복합(크로스컨트리+스키점프)의 박제언(25)까지 합류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단체전부터 시작된 최흥철과 최서우, 김현기 3인방의 6번째 올림픽(단체전) 비행은 이렇게 이뤄졌다. ‘국가대표’의 한 축 강칠구(34)는 2016년 은퇴 후 대표팀 코치로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최흥철의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올림픽 출전권이 없는데도 지난해 말부터 사비를 들여가며 국제대회에 출전해 경기 감각을 익혔다. 최흥철은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평창에서 동생들과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맏형의 복귀에 최서우 김현기 또한 가슴이 벅차올랐다. 김현기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함께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20년 전 ‘한국 무대에서 꼭 함께 날자’라던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감격했다.

이들은 27년을 동고동락하며 한국 스키점프의 역사를 써온 ‘역전의 용사’다. 스키점프로 맺어진 이들의 인연은 1991년 시작됐다. 무주리조트가 인근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스키점프 꿈나무를 모집했다. 그때 합격한 선수들이 지금의 세 선수다. 강 코치는 1994년 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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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캘거리 주니어스키점프선수권에 출전했던 김현기(왼쪽)와 최서우(오른쪽에서 두 번째) 최흥철(오른쪽). 최서우 제공
1996년 첫 유럽 전지훈련 때 코치가 몰던 승합차를 타고 10대 초반의 삼총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대륙을 돌아다녔다. 주니어 스키점프 대회를 휩쓸었다. 차에서 쪽잠을 자며 버텼지만 세계무대에서 비행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웃음 짓던 시절이다. 당시 삼총사는 주니어 무대를 휩쓸며 차 한가득 트로피를 챙겼다. 스키점프를 시작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유럽 무대 데뷔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당시 이들의 여정을 이끌었던 이상오 국제스키점프 심판(52)은 “삼총사를 포함해 6, 7명의 선수가 저와 코치 한 명이 탄 승합차에 몸을 구겨 타고 유럽 곳곳을 돌며 꿈을 키웠다”며 “트로피가 쌓이면 그 추운 날씨에도 트렁크를 반쯤 열어 짐을 싣고 다녔다. 그래도 모두 가슴만은 뜨겁던 시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던 때였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비인기 종목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 훈련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대회에 나가 입상해야 했다. 1년에 한두 벌의 유니폼으로 대회를 치렀다. 찢어진 곳을 기우다가 도저히 안 되면, 그냥 옷이 찢어진 채로 비행했다. 김현기는 “선수들 모두 바느질 선수가 됐다. 조금 커도 바로 수선을 할 수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2008년 한국에 스키점프 실업팀(하이원)이 만들어지기까지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2003년 이탈리아 타르비시오 겨울유니버시아드에선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해 아오모리 겨울아시아경기 단체전에서도 정상을 밟았다. 이런 기적 스토리는 2009년 영화 ‘국가대표’의 주제가 됐다. ‘국가대표’는 해피엔딩이었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영화 흥행 직후 일부 기업체와 체결한 후원 계약(스폰서)은 몇 년을 넘기질 못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갔다. 기대감에 부풀던 삼총사의 가슴은 다시 멍들어갔다.

평창 올림픽은 그런 그들을 다시 비상케 한 원동력이었다. 안방에서 올림픽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삼총사다. 그 결전의 무대를 1년 앞둔 지난해 이들은 큰 위기를 겪는다. 스키점프는 대한스키협회가 뽑은 메달 유망 종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들의 유럽 대회 출전비용은 턱없이 적게 배정됐다. 세대교체도 난항이다. 이 와중에 그동안 대표팀을 정신적으로 이끌어왔던 맏형 최흥철이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최서우만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개최국 출전권 한 장은 월드컵 포인트가 더 높았던 김현기의 몫이었다.

이런 시련에 대해 삼총사는 평창에서 단체전 비행을 하기 위한 서막이었다고 말한다. 이젠 웃을 수 있다. 비록 이날 단체전 1차 성적이 최하위(12개 팀 중)로 나와 결선(8팀 진출)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그들은 또 한번 함께 꿈꾸었다. 최흥철은 경기 뒤 “세 명이서 단체전에 출전한 것은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언제 다시 단체전에 뛸지 모르는 만큼 오늘 경기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평창=김재형 monami@donga.com·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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