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내 어릴 적 생쥐에게 보내는 레퀴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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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중학교 생물 수업이 있다. 생쥐의 꼬리와 이어진 척추를 한 번에 당기면 죽는다는 걸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어린 학생이었던 나는 당황했다. 이 때문에 생쥐는 바로 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두세 번 더 꼬리를 쭉 당긴 후에야 생쥐는 죽었다. 돌이켜 보면 왜 그 실험이 꼭 필요했는지 의문이 든다. 척추가 손상되면 즉사한다는 상식을 꼭 확인해야 했던 걸까.

과학은 실험동물과 함께 진화해 왔다. 실험동물은 꿈틀대는 반응기다. 그런데 실험동물을 어떻게 사육하느냐는 오랜 논쟁거리이다. 최근 미국 유력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는 행복한 실험동물이 더 좋은 연구결과를 나타내는지 살펴봤다.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면 최소한의 사육 환경만 조성하면 된다. 각 실험동물마다 같은 조건을 만들어야 연구결과에 대한 재현성이 신뢰를 얻기 때문이다. 동물 윤리를 고려하면 자연 상태와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야 제대로 된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실험동물의 학습이나 인지 능력, 세포의 활성화와 반응 등은 비정상적인 환경에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1650년경 영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보일과 로버트 훅은 생쥐를 이용해 공기 없는 펌프 안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확인한다. 생쥐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후 생쥐는 열기구를 타거나 유전형질을 알아보는 실험 대상이 되었다. 1800년대 중반부턴 과학자들이 실험동물로 쥐를 본격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때 실험쥐들은 굴을 파거나 바퀴 안에서 달릴 수 있었다.

포유류 실험동물 중에 설치류인 실험쥐가 많은 이유는 인간에게 옮기는 질병 때문이었다. 인류는 한때 페스트로 인해 절멸의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동이 잦은 설치류를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실험쥐는 비교해부의 연구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쉽게 사육 가능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과학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실험 조건의 변수를 줄이기 위해 사육시설을 표준화했다. 작고, 저렴하고, 멸균된 환경으로 말이다. 요즘 실험쥐들은 신발 상자만 한 크기의 우리 안에서 산다. 실험쥐들은 땅을 헤집거나 똑바로 설 수조차 없다. 그들은 통풍이 안 되고 생체주기가 혼란될 정도로 밝은 형광 빛 아래서 온종일 보낸다. 이 때문에 실험쥐들은 살이 찌고, 약한 면역력을 갖고, 암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실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정상 상태가 아니라면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미국에선 실험동물에 효과가 있던 약물 9가지 중 1가지만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성공했다. 따라서 실험 조건의 변수를 따져봐야 한다.

유전적 결정이 아니라 환경 요인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는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집에서 자유롭게 키운 쥐는 실험실 안에 가둔 쥐보다 학습 능력이 좋았다. 나무 블록과 회전식 미로가 제공된 실험쥐들은 뇌의 감각 영역이 더 많이 발달했다.

2000년 호주 멜버른대에선 더 구체적인 증거가 나왔다. 실험쥐한테 둥지를 만들 종이 판자나 장난감 공, 사다리와 로프를 제공했더니 새로운 신경세포가 더 많이 만들어졌다. 특히 놀랍게도 헌팅턴병(신경계 퇴행성 질환) 증상이 나타나는 게 훨씬 느려졌다. 그동안 헌팅턴병은 100% 유전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연구진은 자폐증, 우울증, 알츠하이머병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했다.

암 세포 증식에 관련한 실험에서도 좋은 환경은 영향을 끼쳤다. 2010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선 실험쥐들에게 1m² 상자 안에다가 미로와 쳇바퀴, 형형색색의 이글루들을 넣어주었다. 그 결과 종양이 80%나 적게 발생했다. 유쾌한 환경은 뇌의 시상하부를 활성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뇌의 시상하부는 기분부터 암 증식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을 조절한다.

몇몇 사례들을 일반화하긴 힘들다. 신경 세포나 종양 관련 결과를 다른 질병들에 적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특히 연구실별로 다른 환경이라면 실험은 어떻게 재현 가능한가. 그런데 과연 실험의 객관적 조건이 연구결과의 재현성에 충분한 것인지 혹은 그런 조건이 가능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실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조건을 최소화하고 통제하는 건 아닐까.

한 대학에선 튜브를 이용해 실험쥐들이 이동 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설치류의 사육 환경 변화를 위한 연구논문과 발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제 실험동물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더 좋은 연구결과를 위해서라도 사육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 실험동물들의 비명 소리가 실험실을 뒤덮는 순간 과학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실험동물#로버트 보일#로버트 훅#과학#생쥐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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