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유령역’ 4개 더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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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선 공사때 환승 목적 설계… 10∼12호선 무산되며 빈공간 신세
‘11호선 논현역’은 신분당선역으로… 나머지 3곳 아직 활용계획 없어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논현역 지하 4층에 있는 ‘11호선 승강장’을 강남역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7호선과 십(十)자로 교차하는 이 승강장은 양 옆에 있는 콘크리트 가벽을 철거하면 선로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2022년 신분당선 연장선(신사역~강남역)이 개통하면 사진 왼쪽에 강남역, 광교역 방향, 오른쪽에 신사역 방향 선로가 놓인다. 서형석기자 skytree08@donga.com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논현역 지하 4층에 있는 ‘11호선 승강장’을 강남역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7호선과 십(十)자로 교차하는 이 승강장은 양 옆에 있는 콘크리트 가벽을 철거하면 선로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2022년 신분당선 연장선(신사역~강남역)이 개통하면 사진 왼쪽에 강남역, 광교역 방향, 오른쪽에 신사역 방향 선로가 놓인다. 서형석기자 skytree08@donga.com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논현역 지하 3층 부평구청역 방향 승강장. 중간쯤 되는 곳 벽에 음료 자판기 2대가 있다. 바로 옆에 자판기 2대 크기의 녹색 철문 한 짝이 굳게 닫혀 있다. 조문옥 논현역장이 문을 밀어 열자 승강장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얼굴로 밀려왔다. 열린 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먼지가 코를 찔렀다. 한 걸음 내딛자 어둡고 깊은 정적. 상상한 것 이상의 무엇이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 역장이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낡은 형광등 1개가 파르르 떨며 빛을 밝혔다.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수백 명이 드나들 수 있을 만했다. 약 20m를 걸어가 오른쪽으로 90도 꺾자 계단이 놓이지 않은 경사로가 드러났다.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콘크리트 기둥이 가운데 늘어서 있다. 휴대전화 신호는 끊겼다. 경사로 아래 25m쯤 되는 곳을 손전등으로 비추자 길고 넓은 공간이 보인다. 양옆에 선로를 놓으면 영락없는 지하철 승강장이다. “여기는 역 안내도에 없는 공간입니다.” 조 역장이 말했다. 서울 강남대로 지하에 16년간 잠들어 있는 ‘지하철 11호선’ 논현역 승강장이다.

서울에는 이같이 일반 승객들은 접근할 수 없는 ‘유령역’이 5곳 있다. 43년간 폐쇄됐다가 올 10월 시민에게 개방된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을 비롯해 지하철 11호선 논현역과 ‘10호선’ 신당역 신풍역 영등포시장역이다. 총 넓이는 5257m²(약 1590평·신설동역 제외)에 달한다.

신설동역을 제외한 4개 역은 1996∼2002년 2기 지하철(5∼8호선) 공사 때 3기 지하철(9∼12호선, 3호선 연장)과 환승하도록 만들었다. 미리 3기 노선 구조물을 만들면 예산을 아끼고 환승동선을 승객에게 편리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2기 노선이 개통했을 때 1기(1∼4호선) 노선과 환승거리가 길어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3기 노선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이듬해 무산되지만 않았다면 1999년 개통했다. 그나마 5호선 여의도역(9호선 여의도역)과 5호선 오금역, 8호선 가락시장역(이상 3호선 연장)을 지을 때 만들어 놓은 환승역은 빛을 봤다. 이들 역이 환승거리가 짧은 이유다.

이 4개 유령역은 만든 지 길게는 20년이 되다 보니 역무원조차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에서 일하는 문종현 서울교통공사 과장은 “역무원들도 해당 역에 발령을 받고 나서야 이런 ‘예비 승강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계획이 바뀌며 이들 유령역의 운명도 바뀌었다.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지하 4층에 있는 ‘10호선 환승통로’ 구조물. 영등포시장역은 당초 3기 지하철 노선 '10호선(경기 구리시~서울역~석수역)'이 5호선과 십(十)자로 통과할 계획이었지만, 1998년 10호선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10호선 대비 구조물만이 21년째 쓰이지 못하고 비어 있다. 서형석기자 skytree08@donga.com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지하 4층에 있는 ‘10호선 환승통로’ 구조물. 영등포시장역은 당초 3기 지하철 노선 '10호선(경기 구리시~서울역~석수역)'이 5호선과 십(十)자로 통과할 계획이었지만, 1998년 10호선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10호선 대비 구조물만이 21년째 쓰이지 못하고 비어 있다. 서형석기자 skytree08@donga.com

논현역은 11호선을 대신해 2022년 개통하는 신분당선역이 된다. 영등포시장역과 신당역은 무산된 10호선을 대신할 계획이 없어 유령 신세를 언제 벗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신풍역은 10호선 대신 신안산선이 놓일 예정이지만 환승 위치가 다르다. 당장 활용 계획이 없다.

유령역은 현재 서울교통공사가 정기 안전점검하며 유지 및 보수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서울 도심 지하의 이 넓은 지하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하철 근로자 휴식시설, 유실물센터, 전시장같이 효율적이면서도 공익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지하철#유령역#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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