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치지 않는 자의 골프 이야기]<10화>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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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태풍으로 죽어 가.
북한은 전쟁을 원해.
캘리포니아는 산불로 불타고 있어.
일자리 성장세는 떨어지고 있어.
그런데 트럼프는 (또) 골프를 치고 있지.

Puerto Ricans are dying.
North Korea wants war.
California is burning.
Job growth is low.
Trump is playing golf (again).”

필자의 한 미국인 지인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한 글이다. 이 글이 ‘반(反) 트럼프’ 진영 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단다. 최초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리트윗 횟수만 4만 건이 넘으며 화제다.

지인의 트위터에도 이에 관한 여러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와중에 한 용감한 사람이 반론을 제기했다. “오바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클린턴이나 부시라면? 왜 트럼프만 비판하는 거야? 골프를 친 대통령이 트럼프 혼자도 아닌데.”

재반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이런 식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후 불과 9개 월 만에 오바마가 집권 8년 내내 친 것보다 골프를 더 많이 쳤어. 그런데도 문제가 없다고?” “트럼프는 오바마가 대통령일 때 ‘대통령이 골프를 너무 자주 치고 툭 하면 행정명령을 발동한다’고 비판했어. 본인이 대통령이 돼서 한 일을 봐. 오바마보다 골프도 많이 쳤을 뿐 아니라 행정명령도 더 많이 내렸어. 이게 소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지 뭐야?”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를 얼마나 많이 쳤을까. 미 NBC방송에 따르면 올해 1월 20일 정식 취임한 그는 이달 8일까지 총 69회 골프를 쳤다. 1달에 8.6회다.

자신이 소유한 골프장을 주로 이용해서일까. 즐기는 형식도 남다르다. 올해 3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골프를 칠 때는 5시간 동안 27홀 라운딩을 해 화제가 됐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보통 4시간에 18홀을 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와 아베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27홀을 돌았는지, 그의 성정이 얼마나 급한 지 알 수 있다.

미국에 오래 산 경험이 있는 대학 후배 1명은 “6년 전 캘리포니아 주의 한 골프장에서 트럼프를 만났다”고 알려줬다. 후배가 열심히 골프를 치고 있는데 뒤 조에 있던 트럼프가 성큼 다가와선 “우리 조는 3명인데 여기서 앞지르면 안 되겠느냐”고 묻더란다.

후배가 “알겠다. 그런데 당신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그는 해당 홀에서 트럼프가 드라이버 샷을 친 후 같이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후배의 말이다. “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역시 트럼프의 급한 성미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2014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에서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전인지와 기념사진을 찍은 트럼프 대통령. 동아일보 DB, 전인지 선수 제공
2014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에서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전인지와 기념사진을 찍은 트럼프 대통령. 동아일보 DB, 전인지 선수 제공

트럼프는 과거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2016년 8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에 사흘 간 폭우가 내려 최소 13명이 숨졌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트럼프는 루이지애나 주에서도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을 방문했다. 한 지역민이 “골프를 치지 않고 여기 와 줘서 고맙다”고 하자 트럼프는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답했다. “누군가는 골프장에 있죠.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데 말이죠.”

당시 루이지애나 주를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지만 직접 방문하지는 않고 휴가를 떠난 오바마 대통령을 꼬집은 거였다. 루이지애나는 2005년 미국 재난 역사상 최악의 피해로 손꼽히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지역. 자연재해에 민감한 민심을 파고든 트럼프의 전략이 적중한 걸까. 그는 2016년 11월 대통령 선거 당시 루이지애나에서 58.1%를 얻어 38.4%에 그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크게 앞섰다. 물론 당시 한 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지금 자신을 때리고 있지만.

한국 권력자들도 부적절한 상황에서 골프를 쳤다는 이유로 종종 구설에 오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추도일에 골프를 즐겼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14년 골프장에서 20대 여성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병관 전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2010년 천안함 사건 애도 기간에 골프를 쳤다는 의혹 등으로 낙마했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2006년 3.1절에 골프를 쳐 비난을 샀다.

권력자의 행태도 문제지만 골프라는 운동이 갖는 태생적 약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운동보다 꽤 비싼데다 잔디 관리를 위한 농약 살포 등 각종 환경 문제에 휩싸여있다. 캐디 등 소위 ‘감정 노동자’를 괴롭히는 진상 골퍼가 있는 골프장이라는 곳을 곱지 않게 보는 이가 많다.

이를 감안할 때 언제 어디서나 대중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최고 권력자에게 골프는 ‘양날의 칼’이다. 물론 골프에 관계없이 최고 권력자를 싫어하는 사람은 늘 존재한다. 설사 그 권력자가 골프를 치지 않더라도 반대파는 그 권력자를 싫어할 것이다. 이 반대파를 얼마나 잘 포용할 수 있느냐가 지도자의 능력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프랑스계 다국적 마케팅기업 하바스코리아의 전략부문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역서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로드 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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