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12>北의 ‘안정적 경제’ 때문에 제재에도 버틸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5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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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적 국가 북한
기업가적 국가 북한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되어 있고 철권 통치를 받고 있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버티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장화와 자본주의 경제’가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나왔다. 북한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9%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호주 시드니대 저스틴 해스팅 교수는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고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는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평양에서는 건물 붐이 일고, 식료품 가격이 안정적인데다 대북 수출 제한 품목인 고급 승용차가 버젓이 거리에 등장하기도 한다.

미국 등은 북한이 외화를 얻는 방법으로 무기 거래, 마약 밀매, 컴퓨터 해킹, 보험 사기 등을 지목하기도 한다. 해스팅 교수는 진실은 보다 복합적이라고 진단한다. 바로 북한 경제가 더 이상 사회주의 경제가 아니라는 것에 의문을 푸는 열쇠가 있다는 것이다.


해스팅 교수는 이같은 북한 경제의 변화를 분석한 책 ‘ 세계 경제에서 가장 기업가적인 국가, 북한’을 펴내기도 했다. 북한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실용주의와 창의, 이윤에는 거리낌없는 행동 등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한 기층 국민들은 중국이나 한국산 제품을 판매하면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회색 시장(합법과 불법의 중간 영역)’이 나타나고 있다. 보다 규모가 큰 사업가는 국영 기업 등으로 등록한 뒤 사업을 벌인다. 대부분의 주요 도시간 교통 수단도 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선양(沈陽) 등의 북한 식당에 종업원을 공급하는 사업도 있다.

북한의 고위층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중국 등과 사업을 벌인다며 한 중국인 사업가는 북한 군 고위 관계자에게 사업 기회를 얻기 위해 10만 달러를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국영 기업은 변경 지역의 업체나 위장 계좌 등을 통해 제재를 피하는데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제재에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제재 품목인 철광석 수산물 섬유 등은 밀수를 통해 조달되기도 한다. 한 무역업자는 북중 변경 도시 단둥(丹東)을 통한 무역의 70% 가량은 실제로는 밀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해스팅 교수는 전했다.

해스팅 교수는 무역이 완전 중단되고 국경이 폐쇄되면 북한이 무릎을 꿇겠지만 그럼에도 경제적 실패 때문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북한 경제의 베일을 벗긴다
북한 경제의 베일을 벗긴다

서울대 경제학과 김병연 교수도 ‘북한 경제의 베일을 벗기다’라는 영문 저서에서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경제가 정치로부터 분리되는 시장화의 길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필요한 생필품을 ‘비공식 부문에서 조달’하는 비중이 60% 이상으로 구소련 시절 20%인 것에 비하면 유례없이 높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비공식 부문에서 조달’하는 비중이 곧 ‘시장화’라고 분석했다.

주로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일반 평민들은 장마당 시장 경제에서 돈을 벌고, 북한의 최고위층은 무역에 직접 가담하거나 무역업자로부터 ‘뒷돈’을 받는 방법으로 돈을 챙기는 등 시장 경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시장 경제가 커지고 무역이 활성화하면 북한 지도부에게는 자금원이 커지는 것이지만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는 양면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부정적인 측면이 있어도 시장 경제화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 이처럼 시장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경제 제재가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단 제대로 해야 한다는 조건에서다. 김 교수는 제대로 이뤄지는 경제 제재는 ‘사자 굴 입구를 찾은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비유했다. 입구에서 기다리다 사자를 잡듯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피어슨과 다니엘 튜더 두 명의 전직 서울 주재 로이터 특파원이 쓴 ‘조선 자본주의 공화국’은 ‘북한의 일반 주민이 자본주의로 먹고 산다는 사실을 아시나요’라는 질문으로 서문을 시작한다.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라는 부제처럼 북한 사회에 불고 있는 시장화 및 자본주의 물결이 어느 정도인지를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상세히 묘사했다.

북한자본주의 공화국
북한자본주의 공화국

북한은 최근 이 책의 제목이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을 ‘조선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바꾼 것에 반발해 번역서를 소개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자들을 비난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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