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갑식]나훈아와 엄앵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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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문화부장
김갑식 문화부장
신성일의 이름과 떨어져 있는 엄앵란은 꽤 어색하다. 그래도 나훈아(70)와 엄앵란(81) 얘기를 쓰고 싶다. 한 주 전 이들을 잇는 작은 인연의 끈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맨발의 청춘’ 등으로 1960년대 대표적 흥행 감독이었던 김기덕 감독에 대한 오비추어리가 계기가 됐다. 엄앵란은 김 감독에 대해 얘기하다 “나훈아 콘서트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1년 이상 암 투병 중인 노배우의 말이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다소 뜻밖이고, 궁금했다. 그런데 11월 시작되는 이 콘서트의 3만 석은 예매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동이 났다. “역시 명불허전의 ‘트로트 황제’” “부모님께 꼭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다” 등의 반응과 암표 가격이 10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는 얘기도 나돈다.


최근 병원 치료를 막 끝낸 엄앵란과 전화 연결이 됐다.

“정말 소원이세요?”

“표를 구할 수 없어서…. 지금도 손녀가 사준 나훈아 신곡 듣고 있어요.”

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였고, 인연도 없지 않다. 엄앵란은 신성일, 나훈아는 김지미의 이름과 줄곧 나란히 있었다.

신성일-엄앵란의 결혼은 당시 큰 ‘사건’이었다. 1964년 11월 1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에는 전국에서 5000여 명의 팬이 몰려 일대가 마비됐다는 기사가 보인다. 2010년 작고한 앙드레 김도 엄앵란이 입은 웨딩드레스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두 배우가 없으면 영화를 찍을 수 없다고 했으니, 그 화제성은 요즘의 송중기-송혜교, ‘송송 커플’ 이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훈아는 뛰어난 가창력과 엄청난 카리스마뿐 아니라 굴곡이 많았던 세 차례 결혼으로 무대 밖에서 더 뜨거운 이슈 메이커였다. 여러 루머 끝에 열린 2008년 기자회견이 그 논란의 정점이었고, 이후 세상과의 인연도 사실상 끊어졌다.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60, 70년대까진 쇼 공연장과 방송사에서 종종 마주쳤다는 게 엄앵란의 말이다. “먼저 스타가 되고 10여 년 나이 차가 있어 그런지 그 양반(신성일)과 나를 선생님이라고 깍듯하게 불렀어요. 단짝 현미랑 어울려 있으면 찾아와 재밌는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요즘 같지 않아 가족처럼 지냈는데 차츰 뜸해진 거죠.”

알려진 얘기지만 그래도 직접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가정을 지키셨나요?”

“‘엄앵란은 속이 없나 봐’, 이런 말들 하잖아요. 근데 배우와 인간으로 자존심, 품격 같은 걸 지키고 싶었어요. 그 양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며 밖으로 다녀도 집과 아이만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양반, 이번에 치료 때문에 잠시 머물다 ‘내는 영천 시골 간다. 니도 잘 살아라’ 한마디 하고 훌쩍 갔어요.”

그래서일까. 팔순을 넘긴 배우의 가수 나훈아에 대한 평이 그냥 들리지 않는다. “남편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족집게처럼 잘 알고 위로하는지. 노래 듣고 있으면 꽉 막힌 가슴이 풀리고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요. 진짜 가수죠.”

그의 드라마 출연은 어떨까? 실제 2개월 전 유명한 PD가 드라마를 찍자고 찾아왔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욕심이죠. 대사 못 외워 바쁜 젊은 애들 붙잡고 있으면 그게 무슨 짓이야, 민폐죠.”

스스로 속이 없다는 배우의 속은 그렇게 깊었다. 팔순의 배우가 ‘레디 고’를 기다리고, 70대 가수가 관객의 눈물을 빼는 그런 무대를 상상해 본다.

올드 스타의 건재는 그 자체로 감동이자 축복이다. 그들은 우리 문화의 연륜을 증언하는 얼굴이자 소중한 스토리텔러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
#나훈아#엄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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