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속 車 갇힌 아기 구하라”… 번개처럼 나타난 40대 슈퍼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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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지하차도서 가족 구한 최현호씨

아찔했던 지하차도 지난달 31일 폭우로 침수된 광주 광산구 소촌동 소촌지하차도에 주부 이모 씨와 자녀 2명이 탔던 승합차가 물에 잠겨 있다. 최현호 씨가 이들을 모두 구한 뒤 광산구가 배수 작업을 하면서 촬영한 사진. 광주 광산구 제공
아찔했던 지하차도 지난달 31일 폭우로 침수된 광주 광산구 소촌동 소촌지하차도에 주부 이모 씨와 자녀 2명이 탔던 승합차가 물에 잠겨 있다. 최현호 씨가 이들을 모두 구한 뒤 광산구가 배수 작업을 하면서 촬영한 사진. 광주 광산구 제공

친정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귀가하던 주부 이모 씨(36)가 광주 광산구 소촌지하차도에 진입한 건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0분경. 당시 광주에는 시간당 5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걱정이 들었지만 앞선 승용차가 별일 없이 지나는 걸 보고 이 씨는 자신의 카렌스 승용차를 서서히 운전했다. 당시 승용차 뒷좌석에는 두 살배기 딸이, 유아용 카시트에는 8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빗물이 승용차를 덮친 건 불과 3, 4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배수로 두 곳에서 쏟아져 내린 빗물이 사방을 에워싸면서 갑자기 차량의 시동이 꺼졌다. 차오르는 물을 보며 이 씨가 수차례 시동을 걸었지만 실패했다. 119에 구조요청을 했지만 위치만 반복해 묻자 통화를 끊고 근처 친정엄마에게 전화했다.

이 씨는 급히 딸을 차 지붕 위로 데리고 올라 간 뒤 소리를 지르며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다. 마침 지나던 주민 김초자 씨(60·여)가 물에 잠긴 차량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왔다. 김 씨는 이 씨 모녀를 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미 수심은 어른 키를 넘어선 상태였다. 김 씨는 겨우 헤엄을 쳐 물에서 빠져나왔다. 잠시 후 이 씨의 친정부모가 도착했다.

친정아버지가 거센 물살을 헤치고 차도로 향해 힘겹게 딸을 구하는 순간 누군가가 급히 뛰어왔다. 근처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최현호 씨(41·사진)였다. 휴가였던 최 씨는 마침 부인과 딸을 데리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최 씨는 폭우 때마다 물에 잠기던 지하차도가 늘 걱정이었다. 이날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하차도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흙탕물에 잠긴 승용차를 본 것이다.

최 씨는 우선 이 씨의 딸을 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지붕 위 이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 씨는 “안에 8개월 된 아기가 있는데 문이 안 열린다. 나보다 아기를 구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119구조대가 도착하려면 몇 분이 더 걸려야 하는 상황.

최 씨는 망설임 없이 다시 흙탕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운전석 문은 수압 탓에 열리지 않았다. 반대편으로 가 조수석 문을 힘껏 잡아당기자 사람 한 명 통과할 공간이 생겼다. 최 씨는 잠수를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더듬거렸지만 아기는 없었다. 다시 잠수해서 들어가 보니 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천장 쪽 공간에 둥둥 떠 있었다. 최 씨는 온 힘을 다해 아기를 껴안고 밖으로 나왔다.

최 씨는 2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위급했지만 전후 상황을 따질 수 없었다. 아마 당시 아기가 나에게 힘을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는 다음 달 1일 최 씨와 처음 현장으로 갔던 김 씨에게 구청장 표창을 수여하기로 했다. 표창 수여식에는 이 씨 가족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 씨는 “최 씨는 우리 아이들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워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침수#지하차도#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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