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빛의 흐름에 따른 한 가족의 이야기…‘빛의 걸음걸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0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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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대녕 씨는 인간 내면성의 복원을 작품의 주제로 담으면서 1990년대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동아일보DB
소설가 윤대녕 씨는 인간 내면성의 복원을 작품의 주제로 담으면서 1990년대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동아일보DB
‘화단은 상기 모네의 붓질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옆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화답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어, 저기 내 귀가 지나가네.
그 말에 얼핏 놀라 화단을 쏘아보니 바람 한자락이 슬쩍 화단머리를 핥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원 참, 꽃들이 귀가 멍멍해.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이 기묘한 화답은 조금 더 계속됐다.
신발 신고 가우?
맨발에 짚신을 머리에 엿는 걸.
고 봐요. 큰애 낳고 안 사준 신발이니 여태 맨발이지. 요새 누가 짚신 신어요, 그냥 들고 다니다 팔 떨어져서 머리에 엿지.
그럼 당신도 방금 저기 지나갔나?
내가 먼저 갔더이다.
하면 어디 좋은 데로 갔나?
조금 더 여기 등 뒤에 누워 있다우.’

-윤대녕 소설 ‘빛의 걸음걸이’ 중 일부

윤대녕 작가가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한 건 1980년대의 종언이었다. 그의 소설에 드리운 감수성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1980년대의 문학에선 인간과 이념이 등가였는데, 1990년대의 인간은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그의 소설은 그래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거슬러 올라가 탐색하는 경로에 놓여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겪는 사랑과 상처와 고독 같은 감정이 소설에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빛의 걸음걸이’는 오후의 빛의 흐름에 따라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어머니는 병을 앓고 있고, 이혼한 누나는 곁방살이를 하고 있다. 여동생은 첫애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화자는 ‘부모형제와 반쯤은 타인인 채’ 가끔 집에 들르는 상황이다.

누나는 이혼하면서 자식도 내주었고 막내는 입양되는 아이처럼 중매결혼에 응했다. 화자는 발리에서 잠시 만난 발리 여성을 다시 찾겠다는 마음을 품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자식들이 인연에 대해 가진 사연들은 이렇게 농익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자녀들이 한자리에 모인 집에서, 깊게 늘어지는 오후에 아픈 어머니는 아버지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된 대화가 아니다. 어머니가 뜻모를 소리를 하고, 아버지가 이를 받아 중얼거린다. 해독 불가능이지만 육십이 넘은 부모가 당신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다.

이 정다운 웅얼거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해온 오랜 시간의 더께다. 자녀들의 깊지 않은 인연의 시간들과 대비되면서 다가올 어머니의 죽음이 예감돼, 부모의 화답은 더욱 아름답다. 시간에 따른 빛의 흐름을 ‘빛의 걸음걸이’라는 시적 어휘로 표현한 제목도 그렇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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