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잔향]인연의 종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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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신문사로 책 보내면 포장 뜯어보지도 않지? 신문마다 책면에 비중 있게 다루는 책은 어차피 비슷하잖아.”

출판담당 맡고 8개월간 열 번 정도 들은 말이다.

일일이 뜯어본다. 그리고 책 하나하나마다 묻어 있는 사람들 손때에 조금은 덜 미안해해도 되겠다 싶은 만큼의 시간 동안 들여다본다. 물론 대개 매우 짧은 시간이다. 자기기만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2주 전 한 출판사 독자친목회에 참석한 가수 요조가 2년 전 차린 자신의 동네책방 경험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방 주인이 책방에서 차분히 독서하는 게 불가능하단 걸 알았다. 책 말고 사람을 상대해야 하니까. 난 거기서 독서의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없다.”

언제였더라. 독서의 카타르시스. 가물가물하다. 밥상머리에서도 놓지 못했던 책들의 공통점은 또렷하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좋아서 읽은 것들.

행사 일정이 완전히 어그러져 사장이 “망했다”고 실토한 그 출판사 독자친목회는 뜻밖의 묘한 여운을 남겼다. 기대했던 프로그램이 무산됐음에도 항의하는 이가 거의 보이지 않은 것. 풀 죽은 사장을 격려하는 목소리만 가득했다.

필요로 인해 만난 인연과 별 목적 없이 그냥 좋아서 맺은 인연의 차이가 무엇인지 보였다. 행사 내내 느낀 이물감의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도 더불어 확인했다.

“책 포장 뜯어보지도 않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은근히 감정이 발동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럴 까닭이 없었다. 그런 말을 건넨 사람들은 모두 그래도 괜찮을 만한, 일의 필요로 맺은 인연들이었으니까. 일은 ‘일’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는 거다. 감정은 어울리지 않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출판사#신문#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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