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고개 들면 하얀 세상, 발아래는 초록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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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융프라우 하이킹

여행(Travel)과 관광(Sightseeing). 그 둘은 다르다. 그 차이는 ‘느낌’의 여부. 관광이라고 느낌이 없겠는가. 그러나 여행의 그것에는 족탈불급이다. 관광은 ‘풍경쇼핑’에 그치는 데 반해 스스로 나를 대접하는 여행은 나를 보듬고 치유(治癒)한다. ‘느낌’이란 게서 오는 포만감 행복감이다. 살아온 날을 되짚고 살아갈 날을 꿈꾸는 생에 대한 관조. 그런 여유와 휴식이야말로 풍경쇼핑의 관광에선 기대할 수 없는 여행의 요체다.

알프스에서 즐기는 봄꽃의 향연

자연이 위대해 보이는 것. 사람 생각 저편의 불가항력적 세상이어서다. 인공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자연. 사람들은 말한다. 그걸 극복하자고. 글쎄, 가능할까. 알파고가 바둑 최고수에게 신으로 추앙되는 마당에도 드러난 저수지 바닥 때문에 모내기를 못해 시름에 잠긴 농민을 여전히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우리가.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친화의 대상이다. 더불어 살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그 깨달음을 지난달 융프라우 지역에서 하이킹 중에 얻었다. 융프라우 하이킹은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등 4000m 내외 알프스고봉 밑 나무가 없는 고원(수목생장성 이상)이 무대. 그곳은 이제야 봄. 해발 2000m 이상 고지대이기 때문인데 곳곳에 잔설이 성성하다. 그럼에도 초록의 풀이 돋아 산등성과 구릉은 초원을 이뤘고 노랑 하양 보랏빛의 야생화가 지천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첫 장면을 기억하실지. 지금 가면 바로 그런 초원에서 온종일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알프스산악철도의 진수 융프라우철도

스쿠터바이크로 보르트(1570m)에서 그린델발트로 다운힐하는 여행자들. 빙하 오른편으로 보이는 게 아이거봉의 북벽이다.
스쿠터바이크로 보르트(1570m)에서 그린델발트로 다운힐하는 여행자들. 빙하 오른편으로 보이는 게 아이거봉의 북벽이다.
융프라우 지역은 아이거(해발 3970m) 묀히(4107m) 융프라우(4158m) 등 4000m급 고봉이 포진한 산지 북사면의 아이거북벽 아래까지 발달한 고원. 그 중심은 클라이네샤이데크(2061m)이고 양편에 발달한 계곡 산등성엔 해발 1200m까지 마을(그린델발트 벵겐 뮈렌)이 산재한다. 그 마을까진 도로와 철도가 놓였는데 오직 월드컵스키 활강경기로 이름난 벵겐만 도로가 없다. 이 고원을 현지에선 ‘베르너오벌란트(Berner Oberland)’라고 부르다.

그런데 여행자는 고원이란 걸 모른다. 기차로 오다 보니 고도 상승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그걸 단박에 깨치도록 해주는 게 있다. 융프라우 관문인 인터라켄의 고도 표지. 567m라 쓰여 있다. 인터라켄 오스트(동쪽)역은 융프라우와 묀히 두 봉 사이 안부(鞍部·능선에서 가장 낮은 곳)인 융프라우요흐(3454m)로 오르는 산악열차 출발지. 베르너오벌란트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열차여행과 더불어 산정역에선 유럽 최장의 알레치빙하(유네스코 세계유산)를 보고 빙하설원에서 튜브를 타거나 빙하터널(얼음궁전)을 탐험하는 특별한 여행이다.

그 철도여행의 고도차는 2887m(567∼3454m). 그걸 톱니레일 산악철도로 오르는데 한 열차로 직행하는 건 아니다. 여러 산악마을을 잇는 6개 철도노선이 두루 이용된다. 하지만 산정만큼은 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 ‘톱 오브 유럽’행으로 갈아타는데 그게 ‘융프라우철도’. 인터라켄오스트역에서 2시간 30분이 걸리던 게 지금은 두 시간으로 30분 줄었다. 한 해 이 열차 승객은 한국인만 25만 명 선.

알프스, 초원하이킹의 천국

그런 융프라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관광에서 여행으로. 정상역에서 알프스비경만 보고 떠나던 게 하루 이틀 묵으며 오벌란트고원을 하이킹과 액티비티로 심도 있게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흘간 하이킹 계획을 세우고 아이거북벽 아래 빙하마을 그린델발트(1034m)의 선스타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첫날 목적지는 융프라우요흐. 기차는 아이거와 묀히 두 암봉 속 터널로 정상역까지 오른다. 거길 나서면 절벽에 기대듯 선 ‘톱 오브 유럽’(식당 기념품가게가 있는 전망대 콤플렉스). 철도패스에 포함된 바우처로 신라면(컵)을 사먹고 뒤편에 있는 스핑크스테라스(천문관측소 부설 야외전망대)를 향해 지하통로를 걸었다. 도중엔 융프라우철도 건설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알파인센세이션)도 있다. 스핑크스테라스는 지하에서 초고속 엘리베이터(27초 소요)로 오른다. 야외테라스(3571m)에선 700m 깊이의 계곡을 채운 거대한 알레치빙하(총연장 22km)가 온전히 보인다. 스핑크스 앞엔 튜브와 스키, 집라인을 즐기는 스노펀(Snowfun) 눈밭도 있다.

묀히산장까지 빙하트레킹

나는 이 모든 걸 지나치고 묀히 봉 아래 묀히산장(3650m)을 향해 스핑크스를 나섰다. 100m쯤 더 높은 산장까지 1.5km는 눈밭. 이 지대는 융프라우 묀히 두 봉 사이의 남사면으로 바닥은 빙하다. 눈길은 압설차가 길을 내긴 해도 걷기가 쉽지 않다. 3500m 이상 고도(약 0.6기압)의 희박한 산소 탓으로 이런 데선 천천히 걷는 게 왕도. 그런데 걷다 보니 고된 것도 잊었다. 알레치빙하지대의 설경에 취해서다. 그러다 후회막급한 일을 당했다. 강한 자외선에 손등과 귀를 덴 것. 거기까진 자외선 차단크림을 바르지 않아서다. 가는 데 한 시간, 되돌아오는 데는 30분. 산장의 식당에선 묀히요흐커피를 마셨다. 슈납스(과일주·리큐르)를 넣고 크림을 얹은 고칼로리 커피인데 지친 체력을 보완하기 위한 음료다.

산정역 하산 길엔 ‘아이거워크(Eiger Walk)’란 길로 클라이네샤이데크까지 내리막 하이킹(한 시간 소요)을 했다. 그런 뒤 벵겐과 멘리헨을 경유해 그린델발트로 향했다. 오를 때와 반대편 계곡으로 가는 코스다. 아이거워크는 기차가 아이거북벽의 터널을 나온 뒤 처음 서는 아이거글레처역에서 클라이네샤이데크를 잇는 산길. 아이거북벽을 등지고 걷는데 도중에 옛 아이거봉 정상에 있던 것을 옮겨둔 산장(아이거등정박물관)도 지난다.

기차로 내려간 벵겐은 자동차로 접근할 수 없는 전통 산악관광마을. 세계적인 라우버호른 활강경기(월드컵스키의 상징코스)의 피니시 라인이 여기다. 여기서 그린델발트는 멘리헨을 경유하는데 벵겐에서 케이블카로 올라 그린델발트 아래 그룬트까지는 곤돌라로 이동한다. 그룬트에서 그린델발트까지는 열차로 한 정거장(1분). 돌아와선 호텔 스파에서 핀란드사우나로 피로를 풀었다. 땀을 식히느라 호텔 정원 풀밭의 의자에 앉는데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정면에 아이거북벽과 슈렉호른의 빙하가 초대형 스크린처럼 펼쳐져서다. 새들의 노랫소리에 소 목의 종소리 그리고 산들바람에 빙하풍광…. 열차여행만 하고 가는 관광객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융프라우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톱 오브 어드벤처, 피르스트

2168m의 피르스트에 설치된 클리프 워크. 핀스터아어호른(4274m) 아래로 흐르는 운테러그린델발트 빙하를 배경으로 선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2168m의 피르스트에 설치된 클리프 워크. 핀스터아어호른(4274m) 아래로 흐르는 운테러그린델발트 빙하를 배경으로 선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튿날은 그린델발트 뒤편(북쪽)의 피르스트(First) 지역을 찾았다. 피르스트(2168m)는 그린델발트(1034m)에서 곤돌라로 오르는 작은 봉. 정상역의 호스텔 겸 식당은 ‘톱 오브 어드벤처(Top of Adventure)’라 불리는 액티비티의 중심으로 겨울엔 스키어, 나머지 계절엔 바흐알프(왕복 3시간), 파울호른(왕복 5시간), 멀리는 시니게플라테(편도 8시간) 하이킹의 출발점이다. 집라인과 마운틴카트(세 바퀴 카트), 트로티바이크(자전거 모양의 킥보드)를 차례로 타고 그린델발트까지 내려가는 액티비티 역시 여기서 시작한다. ‘클리프 워크(Cliff Walk)’도 여기 있다. 잔도(棧道·절벽에 기둥을 꽂아 가설한 길)로 이어진 절벽가의 돌출전망대다.

바흐알프호수까지 하이킹(3km)은 산책로다. 게다가 정상에 올라야만 풍광을 볼 수 있는 우리 산과 달리 여기선 거대한 알프스산악의 풍광이 길 어디서든 펼쳐진다. 그러니 걷는 게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길은 높낮이에 변화가 적다. 대개는 내리막이거나 산허리를 감은 평지. 그래서 어린이와 어르신도 쉽게 걷는다. 게다가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뀌는 풍광으로 감탄사가 끊일 틈이 없으니 고되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다. 드디어 도착한 바흐알프호수. 그런데 여전히 얼어 있었다. 언 호수는 7월 초에야 풀리는데 그러면 수면에 그림 같은 알프스연봉이 거울처럼 비친다.

그린델발트로 하산 길은 그야말로 ‘고고싱’. 피르스트∼슈렉펠트는 ‘피르스트 플라이어’(집와이어·800m)로, 게서 보르트는 마운틴카트(3km)로, 다시 그린델발트 마을까지는 트로티바이크로 다운힐(5km)한다. 정면으론 베터호른 슈렉호른 아이거봉이, 바닥은 야생화로 덮인 초원. 세상 어디서 이런 멋진 체험을 할 수 있을까. 봄여름의 스위스알프스뿐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니 융프라우에서 이걸 해보지 못했다면 당신의 융프라우 여행은 무효다.

알프스초원의 야생화 군락

마지막 날엔 야생화 공원 알파인 가든(Alpine Garden)을 찾아 시니게플라테로 향했다. 2068m 고도의 이곳은 식물학자들이 야생화 연구단지로 조성한 곳. 방문객은 흐드러지게 핀 꽃으로 덮인 초원과 산을 보며 하이킹을 한다. 길 옆 꽃엔 학명과 이름을 적은 표지를 세워 이해를 돕는다.

여기엔 보물 같은 곳이 있다. 인터라켄이란 지명을 탄생시킨 두 호수(왼편 툰, 오른편 브르엔저)가 한눈에 조망되는 정상이다. 시니게플라테는 빌더스빌역에서 전용열차로 갈아타고 오르는데 그 여행도 특별했다. 110세에도 건재한 전기모터로 가파른 산을 톱니바퀴로 오른다. 철도역의 시니게플라테호텔도 125년 역사를 자랑한다. 5월 말∼10월 말에만 운영하는데 객실은 80∼100년 된 침대와 가구로 운치가 넘친다. 아침저녁 두 끼 식사를 제공하는 고풍도 특징.

그린델발트(스위스)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항공편:
◇직항노선: 인천∼취리히,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운항 ◇방콕 경유노선: 타이항공 이용. 이튿날 오전 11시면 인터라켄오스트역에 도착해 하루 숙박비 절약. 경비 절약형 항공편이라 선호하는 이가 많다. 매일 오후 5시 반 인천 출발, 다음 날 오전 7시 반 취리히 도착.

여름VIP패스: 융프라우요흐 티켓(1회)을 비롯해 다양한 승차권(무제한탑승)과 할인권(스노펀·피르스트플라이어·트로티바이크·마운틴카트·유람선 50%), 선물바우처(6CHF·스위스프랑)로 구성. ◇구매: 현지(융프라우 지역 철도역)에서 할인쿠폰 제시하고 할인가에 구매. 스위스패스 소지자도 할인 혜택을 받지만 모든 면에서 융프라우VIP패스가 더 유리하다. ◇할인쿠폰으로 구매가격(1CHF는 약 1165원): 1일(170CHF·19만8050원)∼6일권(270CHF·31만4550원) ◇어린이 혜택 △만 5세 이하: 무료 △만 6∼15세: 기간에 상관없이 80CHF(9만3200원). ◇할인쿠폰: 홈페이지(www.jungfrau.co.kr)에서 신청. 우편·이메일로 받는다. 방문수령 가능. ◇한글정보: 철도이용법 여행후기 전문여행사 각종 혜택 등 유익한 정보가 홈페이지(www.jungfrau.co.kr)에 수록. 융프라우철도여행가이드북(61쪽)에도 상세 정보 수록(요청하면 쿠폰과 함께 우편 발송). 문의 02-756-7560(융프라우철도)

스위스정부관광청: 한글홈페이지(www.myswitzerland.com/ko)
#스위스 융프라우#초원 하이킹#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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