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지하공간 3곳, 7월 잠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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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박물관 방공호-신설동 ‘유령역’-여의도 벙커
서울시, 역사-문화 체험공간으로 개방

7월 하순 문화시설로 개방되는 서울역사박물관 방공호(위쪽 사진)와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지하 3층 ‘유령역’. 각각 70년, 40년 넘게 굳게 닫힌 채 잠들어 있던 지하공간이다. 서울시 제공
7월 하순 문화시설로 개방되는 서울역사박물관 방공호(위쪽 사진)와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지하 3층 ‘유령역’. 각각 70년, 40년 넘게 굳게 닫힌 채 잠들어 있던 지하공간이다. 서울시 제공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의 뒤쪽 주차장 한구석에는 두께가 30cm는 족히 돼 보이는 철문이 달린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다. 위로는 지붕 대신 수풀이 우거져 있고 왼쪽으로는 경희궁 숭정문으로 갈 수 있다. 입구는 잠겨 있고 표지판도 없어서 무슨 시설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사실 이 벽면 형태의 구조물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방공호다. 70년 넘도록 방치된 ‘미지의 공간’에 하반기부터 사람의 발길이 닿게 된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역사박물관 방공호와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지하 3층의 ‘유령역’, 영등포구 여의도 지하벙커 등 그동안 닫혀 있던 지하공간이 이르면 다음 달 하순 문화시설로 탈바꿈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서울역사박물관 방공호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패색이 짙어진 1944년 만들었다. 원래는 경희궁의 내전(內殿)인 회상전이 있던 자리다. 근처에 있던 경성중학교 학생들도 동원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책 ‘일제의 흔적을 걷다’에서 방공호에 관해 기술한 정명섭 작가는 “안으로 들어가면 110m 길이의 통로가 있고 좌우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방 10개와 화장실, 물탱크, 발전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며 “총독부 직원의 공습 대피용이나 비상시 경성전화국 시설로 쓰려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방공호는 경희궁을 완벽하게 복원하려면 철거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철거 대신 보존을 택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처럼 식민지배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다크 투어리즘’(어두웠던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위한 시설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유령역과 여의도 지하벙커는 개방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많이 알려진 유휴(遊休) 지하시설이다. 신설동역 유령역은 1974년 지었지만 노선 계획 변경으로 폐쇄된 역사다. 현재는 운행을 마치고 군자차량기지로 들어가는 차량의 통로로 쓰인다. 폐(閉)역사 특유의 괴기한 분위기 덕분에 각종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뮤직비디오나 영화 ‘감시자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서울시는 이곳을 낮 시간 동안 열어둬 전시 및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아래에 있는 지하벙커는 2005년 4월 측량조사 중 우연히 발견됐다. 면적 957m²에 방 2개와 화장실, 샤워실, 기계실 등이 있는 공간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항공사진 등을 비교, 분석해본 결과 1970년대 대통령 경호를 위한 비밀시설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시는 벙커 발견 직후 버스 환승객을 위해 매점을 비롯한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다 수익성 문제로 현 상태로 남겨뒀다.

여의도 지하벙커는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문화시설로 바꾸기로 결정하면서 40년 넘은 ‘잠’에서 비로소 깨어나게 됐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해 발굴한 미디어아트 분야 신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세 곳의 숨겨진 지하공간을 동시에 개방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개성 있는 장소로 꾸미겠다”며 “세계적으로 관심받고 있는 뉴욕 ‘로라인(Lowline) 공원’처럼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햇다. 로라인 공원은 1948년 폐쇄된 4000m² 넓이의 지하철 터미널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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