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현]삼성바이오로직스, 차라리 한국 떠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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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산업1부 기자
김지현 산업1부 기자
지난해 삼성서울병원 남도현 신경외과 교수는 항암 신약을 개발하는 벤처회사 ‘에임드 바이오’를 세우고 싱가포르부터 찾았다. 현지 국립암센터 등과 간암 공동연구를 하고 투자도 받기 위해서였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에 조인트 벤처를 만드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싱가포르가 글로벌 제약산업의 ‘허브’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정부 역할이 컸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0년부터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장기 산업발전계획을 추진했다. 2003년 바이오산업단지 ‘바이오폴리스’를 만들고 머크, 화이자,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의 연구소와 생산공장을 유치했다. 2016년에는 ‘헬스케어 및 바이오메디컬’ 분야를 국가 주도 4대 연구개발(R&D) 분야로 지정하고 5년간 40억 싱가포르달러(약 3조2871억 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 업체의 생산공장 및 R&D센터를 하나씩만 유치해도 최대 2조2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생긴다. 매년 5000명의 양질의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삼성도 2010년 바이오를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정했다. 2018년이면 1세대 바이오의약품 특허가 대거 만료된다는 점에 착안해 선제 투자에 나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한다는 목표였다. 2010년 삼성서울병원 지하에서 12명으로 출발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의 제조업 강점을 살려 회사 설립 7년 만에 세계 3위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2015년 7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나스닥 상장 검토를 발표하자 한국거래소가 펄쩍 뛸 만도 했다. 거래소가 상장 규정까지 바꿔가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국내에 상장시키려 공 들였던 것도 바이오산업의 가능성과 거기서 유발될 다양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금융당국은 그렇게 품에 안으려 했던 회사를 불과 2년 만에 ‘상장 폐지’까지 거론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처음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회사로 회계처리했어야 한다는 건데, 결국 관계회사로의 처리는 ‘지배력 상실’ 가능성을 언제 인식했느냐의 시점 문제다.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만 따로 다투면 될 것을, 바이오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 일반 주주들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미 한국에 발목이 묶인 ‘잡힌 물고기’라는 자신감 때문일까.

하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부도 기업과 ‘계약’으로 묶이는 관계다. 막대한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붙잡으려면 정부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주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상장기업들은 얼마든지 상장 국가를 바꿀 수 있다.

실제 중국 바이오업체인 우시앱텍은 2007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했지만 2015년 11월 스스로 상장 폐지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턴’을 권유한 데다 미국시장 내 불신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주주들에게는 매수청구권을 주고 적정 가격에 주식을 되샀다. 우시앱텍은 올해 5월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SSE)에 다시 상장했다. 미국에서 상장 폐지 당시 기업가치는 33억 달러(약 3조7000억 원)였지만 19일 현재 시가총액은 14조 원으로 약 4배로 뛰었다. 최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회사는 홍콩에서도 추가 증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요즘 ‘유탄’을 맞은 국내 바이오 업계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차라리 자진 상장 폐지하고 나스닥이나 ‘귀빈’ 대접해주는 싱가포르, 홍콩으로 가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한다. 정부에도 이런 소리가 들리는지 궁금하다.
 
김지현 산업1부 기자 jhk85@donga.com
#삼성바이오로직스#바이오산업#상장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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