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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충선 “더그아웃 벗어나 타석에 서는 배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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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충선 “더그아웃 벗어나 타석에 서는 배우이길”

이해리 기자 입력 2018-10-12 09:00수정 2018-10-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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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당’에서 인간의 욕망을 일깨우는 지관 정만인 역으로 활약한 배우 박충선. 스포츠동아DB

마음 졸이던 시간이 지났다. 때때로 휴대전화를 들고 하루에 얼마만큼의 관객이 영화를 봤는지 확인하는 일도 멈췄다. 그렇게 배우 박충선(54)은 영화 ‘명당’을 지나 보냈고, 이젠 새로운 작품을 통해 관객 앞에 나설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박충선에게 지난 추석 연휴는 어느 해보다 특별한 시간이었다. 단단한 각오로 나선 영화 ‘명당’을 관객 앞에 내놓은 뒤 다양한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연기자로 살아왔고, 연극부터 영화 드라마까지 숱한 작품을 대중 앞에 내놓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주변으로부터 소위 ‘개봉 후기’에 해당하는 여러 반응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오랫동안 원하던 배역이고 하고 싶던 인물이라 매일매일 기분 좋은 마음으로 촬영장에 갔다”고 돌이켰다. 촬영장에서 얻은 에너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듯도 보였다.

뜨거운 추석이 지나고 ‘명당’의 상영이 마무리될 즈음 박충선을 만났다. 영화는 추석 연휴에 맞춰 개봉한 또 다른 한국영화들과 그야말로 ‘접전’을 벌였다. 200만 관객을 모았지만 배우나 제작진 모두를 만족시킬 수준의 성적은 아니다.

물론 모든 걸 ‘스코어’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일. ‘명당’에서는 박충선이 그런 경우다.

“누구나 그렇듯, 많은 관객이 봐주길 바란 마음이 컸다. 가까운 이들은 나의 낯선 모습이 놀랍다고 하고, 영화계 관계자들 역시 ‘박충선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는 평가도 하더라. 고마운 일이다.”

영화 ‘명당’에서 조선후기 권력을 움직이는 지관 정만인을 연기한 배우 박충선. 인간의 욕망을 일깨우는 역할을 맡은 그는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극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조선후기 권력에 기생하는 지관 정만인

박충선은 ‘명당’ 제작진으로부터 정만인이라는 인물을 제안 받고 “내심 놀랐다”고 했다. 조승우가 맡은 신념을 지키는 지관 박재상과 대립하는 인물이자, 당대 세도가인 장동김씨 김좌근(백윤식) 일가의 권력의 발판을 마련해준 인물이 때문이다. 설명하기 간단치 않은 배역은 언제나 배우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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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인은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욕망을 끌어내는 인물이다. 단순히 악인이라고 구분 지을 수도 없다.

“정만인은 오직 ‘혀’로 살아간다. 주요한 등장인물을 한 명씩 만나면서 사건을 만든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내가 이해할 만한 당위성이 필요했다.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만의 상상을 더했다. 워낙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사람이다. 그러니 말로 승부를 해야 했다. 목소리, 웃음, 눈빛에 집중했다.”

박충선은 촬영을 준비하는 내내 집에서 녹음까지 해가면서 ‘정만인 웃음소리’를 연마했다. 때로는 악마성이 드러나는 웃음으로, 때로는 비웃는 소리를 냈다. 인물과 상황에 맞는 웃음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그의 웃음 연습을 옆에서 듣고 지켜봐야 했던 중학교 3학년 아들은 매번 매번 놀람의 연속이었다고.

“대체 무슨 영화를 찍는데 그런 웃음소리를 내냐고 놀라 묻더라. 하하! 설명을 해줬더니 아들이 직접 유튜브를 뒤져서 도움이 될만한 영상을 찾아 줬다. 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박충선은 1989년부터 영화에 참여해왔다. 30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부터 연기를 한 건 아니다. 국어국문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가 만난 연극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인생이 바뀌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 꿈을 찾자는 마음으로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 때 나이 26살이다.

“나는 촌놈이니까, 차마 영화 출연까지는 엄두를 내지 않았다. 연극을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대학 땐 연애 한 번 안 하고 계속 연극 연습만 했다. 낮에 수업 듣고 저녁엔 매일 연습에 또 연습. 연극 이외의 것들은 용납되지 않은 때였다.”

대학을 졸업하니 어느새 서른 살.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저기 극단을 다니면서 떠돌이 배우 생활”을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찍은 ‘오! 꿈의 나라’의 주연배우 자격으로 1989년부터 이듬해까지 2년간 전국 거의 대부분 대학도 찾아다녔다. 저절로 연기의 매력, 영화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2005년 조연으로 참여한 ‘혈의 누’는 그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킨 계기가 된 첫 번째 영화다. 이후 ‘블라인드’, ‘후궁:제왕의 첩’ ‘소수의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힘을 보탰다. 최근 TV 드라마로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푸근한 아빠의 모습도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소시민의 아빠이자, 자상한 모습을 보인다.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잘 모르지만 오래 기다렸다는 측면에선 ‘명당’이나 정만인이 소중하다.” 그만큼 간절하게 기다려온 기회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영화 ‘명당’에서의 박충선.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화면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배우이길”

가만히 있어도 시나리오를 받는 일부 배우를 제외하고, 대다수 연기자는 자신을 써줄 작품을 꾸준히 찾아야 한다. 박충선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를 많이 놓고 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보니 ‘명당’을 통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배역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감추지 않았다.

“야구를 할 때도 일단 타석에 서는 게 중요하다. 타석에 있으면 홈런도 치고 안타도 치고, 눈치 살피다 도루도 하지 않나. 타석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그아웃에 있으면 아무런 기회가 없다. 난 더그아웃은 거부한다. 현장에서 많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 매운 맛이든 달콤 씁쓸한 맛이든. 여러 맛을 내고 싶으니까.”

박충선은 이미 다채로운 맛을 내는 배우다. ‘명당’의 정만인은 악인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악역으로 분류하기도 쉽지 않은 캐릭터이다. 권력의 편에 붙어 자신만의 비뚤어진 신념을 고집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온전히 박충선의 공이다. 돌아본다면, 앞서 참여한 ‘혈의 누’나 ‘소수의견’은 물론 수많은 어린이 팬을 확보한 계기가 된 KBS 2TV ‘매직키드 마수리’에서도 박충선은 늘 그랬다.

“배우는 결국 화면을 통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화면이 답이다. 과정은 아무 상관없다. 화면에 나오는 것만이 진실이다.(웃음) 내가 한 말이 아니라, 히치콕 감독의 말이다. 그 말처럼 화면 안에서 마음껏 놀고 싶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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