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프런트의 전문성이 중요한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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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4월 17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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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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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과 비시즌 선수단과 프런트의 역할은 따로 정해져 있어
비전문가가 상대 영역을 참견하는 것은 하수가 하는 행동
이사회의 전문성이 V리그 미래 밑그림 그리는데 가장 중요해
리그의 품격은 선수단이, 리그의 정착과 성공은 프런트가 이끌어야


프로스포츠에는 두 개의 계절만이 존재한다. 시즌과 비시즌이다.

시즌은 현장, 즉 감독이 이끄는 선수단의 계절이다. 매일 상대팀과 전투를 벌이는 시기다. 당장 오늘의 경기를 이기기 위해 팀의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는 때다. 내일은 없다. 시즌 때 프런트가 할 일은 많지 않다. 선수단이 편히 경기를 하고 쉴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하면 된다. 어줍지 않게 감독의 선수기용을 평가하고 선수들의 기술을 언급하는 것은 하수 프런트가 하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프런트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 하수 프런트가 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엄청나다

이들은 자신의 군 시대 경험과 골프에서 배운 근거 없는 스포츠 이론, 또는 모기업에서 했던 성공사례를 스포츠에도 도입하면 성공한다고 믿는다.

물론 헛된 생각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이런 생각으로 조언을 했다가 술자리의 안줏감으로 전락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프로배구단 어느 프런트 수장의 10km 구보 이론도 이 가운데 하나다. 그는 군 시절 매일 10km씩 구보를 해서 체력이 좋아졌다면서 선수들에게도 매일 오전 10km씩 뛰라고 했다. 그는 팀의 나쁜 성적이 체력이 약해서라고 믿었다. 배구는 체력이 좋다고 꼭 이기는 경기가 아니다. 그 팀 선수들의 기술이 모자랐을 뿐이다.

어느 단장은 프로골퍼에게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아 타수를 줄였던 경험을 믿었다. 선수들이 매일 하루 5~6시간씩 운동을 하는데도 왜 기술이 좋아지지 않느냐고 했다. 오전 식사 뒤 쉬는 시간이나 점심 뒤 낮잠시간을 줄여서라도 운동을 더 해야 한다고 채근했다. 그는 힘든 운동을 앞두고 몸을 쉬어줘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운동은 몸의 기억이고 몸에 밴 나쁜 습관을 고치는 데는 상상 이상의 시간이 들어간다. 프로골퍼도 그립 하나 바꾸는데 몇 년이 걸린다. 선수육성과 기량발전은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다. 조금만 더 훈련한다고 좋아질 기량이었으면 모든 선수가 다 슈퍼스타가 됐을 것이다. 심오한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는 단순한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 이런 스포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구단을 이끄는 것이 현실이다.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도드람 V리그’ 인천 대한항공과 천안 현대캐피탈의 챔피언 결정전 4차전 경기가 열렸다. 조원태 구단주와 유승민 IOC위원이 대한항공 우승을 눈앞에 두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도드람 V리그’ 인천 대한항공과 천안 현대캐피탈의 챔피언 결정전 4차전 경기가 열렸다. 조원태 구단주와 유승민 IOC위원이 대한항공 우승을 눈앞에 두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리그의 품격은 선수단이, 리그의 성공은 이사회가 만든다.

지금 프로배구는 비시즌, 바꿔 말하면 프런트의 시즌이다. 선수단 구성 등 시즌 밑그림을 그리고 투자와 선수 스카우트에 전력을 쏟을 때다. 프런트가 현명하면 구단이 헛돈을 쓰지 않을 수 있다. 좋은 판단의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 공교롭게도 시즌 때 설치는 프런트 가운데 비시즌 때 제 할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자신이 열심히 일해야 할 때라는 것조차 모른다.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와 비교해보면 프로배구의 사장 단장 등의 스포츠 경험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짧다. 힘겹게 잘 성장해온 V리그가 겨울 스포츠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를 굳혀야 할 중요한 시기인데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이유다. 장기 방송중계권과 스폰서계약 덕분에 여러 수치가 장밋빛이고 당분간 생존의 걱정은 없겠지만 언제까지 이런 인기를 누린다는 보장은 없다. 프로농구의 헛발질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잘 나갈 때 일수록 V리그의 규모와 위치에 맞는 시스템을 보완하고 리그의 경기수준을 잘 유지하기 위한 많은 제도를 준비해야 하지만 걱정스럽다.

결국 이사회 구성원들의 비전문성을 어떤 식으로건 해결해야 한다. V리그 최고의사결정기구에 참가하는 대부분 단장들이 모기업의 일을 하면서 배구단 운영까지 겸업하고 있다.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진다. 임기도 짧다. 어느 구단은 1년에 단장이 3차례나 바뀐 적도 있다. 이런 구조에서 V리그와 각 팀이 1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프런트의 속내는 내 임기동안의 좋은 성적과 우리 팀의 이익이다. 리그 공통의 목표는 없고 각자도생만 생각한다. 비전문가 단장들은 이사회에서 존재감도 없다. 지금 심의하는 규정이 리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한 채 참석한다. 이사회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다가 가는 사람들도 많다. KOVO가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책의 연관성도 없고 사전에 공부도 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결정했던 사안조차 뒤집는다.

리그의 품격을 높이는 것은 현장의 선수단이 할 일이지만 리그를 스포츠산업으로 성공 발전시키는 것은 프런트 즉 사장 단장의 역할과 능력에 달렸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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