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표도르와 시라소니, 누가 셀까

  • 입력 2006년 2월 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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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광기와 야수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 그는 싸움의 천재다. 강호를 평생 홀로 떠돌았지만 누구도 그를 꺾지 못했다. 그는 평생 60여 차례나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한번도 지지 않았다. 검술이면 검술, 창술이면 창술 등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는 누구도 스승으로 삼지 않았다. 유파도 없고, 오로지 강호에서 ‘싸움의 기술’을 터득했다.

‘야인시대’의 협객 시라소니 이성순(1914∼1983)도 싸움의 달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팔도와 만주 중국 땅을 홀로 떠돌며 ‘주먹 신화’를 썼다. 그는 늘 반쯤 졸린 눈을 하고 다녔지만 싸움이 붙으면 눈에 광기가 번득였다. 그는 임기응변에 천재였다. 싸움판의 상황에 따라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를 때려눕혔다. 특기는 허공에서 몸을 날려 상대 이마를 박살내는 이른바 ‘공중걸이 박치기’와 무릎치기. ‘발차기와 피스톤 펀치’로 유명했던 김두한(1918∼1972)도 그를 ‘형님’으로 대했을 정도다.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FC 헤비급 챔피언인 ‘얼음주먹’ 에밀리아넨코 표도르(30·러시아). 그도 ‘만화주인공 구영탄’처럼 늘 반쯤 ‘풀린 눈’이다. 하지만 일단 링 위에 오르면 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다. 그는 현대판 싸움 도사다. 그는 말한다. “링 위에 오르면 중요한 것은 두뇌다. 정신을 집중하고 상대를 주시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 즉시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렇다. ‘싸움의 기술’은 머리에서 나온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타고난 동물적인 감각’에서 나온다. 태권도나 유도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라도 ‘싸움 천재’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타격기술이나 그라운드기술은 그 다음이다.

지난해 8월 표도르는 크로캅(‘크로아티아 경찰관’ 출신이라는 뜻)과의 프라이드 FC 헤비급 타이틀매치에서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타격전을 전개했다. 의표를 찌른 것이다. 그리고 크로캅의 특기인 ‘공포의 하이킥’을 맞받아치거나 하이킥을 시도하는 그를 태클로 넘어뜨려버렸다. 그라운드에선 누가 봐도 표도르 세상. 그의 연속적인 ‘얼음 파운딩(주먹)’을 누가 당해낼 수 있을까. 표도르의 3-0 판정승.

무사시는 열세 살 때 강호에서 제법 이름난 아리마 기헤에라는 검객에게 생애 첫 도전장을 냈다. 다들 웃었다.

“13세의 꼬마가 자기보다 두 배나 나이를 더 먹은, 그것도 쟁쟁한 검객에게 목숨을 걸다니….” 더구나 무사시는 칼도 없이 떡갈나무 몽둥이를 쥐고 있었다. 상대는 날이 시퍼런 진검 자세.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사시는 몽둥이를 땅에 내던지며 맨손으로 붙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어이없어 하던 그 검객도 웃으며 칼을 버렸다. 그 순간 무사시는 번개처럼 검객에게 달려들어 내동댕이친 다음 자신이 버렸던 몽둥이를 집어 들어 상대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무사시는 상대 허를 찌른 것이다.

시라소니와 표도르가 링위에서 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아마 시라소니가 불리할 것이다. 이종격투기에서 박치기는 ‘반칙’이기 때문이다. 팔꿈치 가격이나 척추꺾기도 안 된다. 시라소니는 한 팔을 묶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표도르는 세계 60억 인구 중 가장 강한 사나이라는 뜻에서 ‘60억분의 1’이라고도 불린다. 그 ‘60억분의 1’이 최근 서울을 다녀갔다. 그는 한국의 김치와 인삼이 몸에 좋다며 먹어대더니 보신탕까지 시켜 먹었다. 표도르의 몸은 단거리 선수나 역도선수 못지않은 울퉁불퉁한 ‘찐빵근육(속근)’이다. 그런 근육은 순발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운동량 측정 단위인 뉴턴미터로 보면 그의 앞차기 타격력은 오른발 350, 왼발 354.6로 큰 차이가 없을 뿐더러 보통 선수(250∼280 뉴턴미터)보다 훨씬 세다.

요즘 크로캅은 뭐하고 있을까. 표도르와 다시 한번 ‘맞짱’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의 하이킥이 보고 싶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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