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엔드 포커스]통계 스포츠…'판타지 게임'을 아십니까

  • 입력 2004년 3월 4일 16시 31분


코멘트
《최근 미국 CBS스포츠라인 인터넷사이트는 ‘판타지 골프’ 게임을 선보였다. 개인이 골프 선수 5명을 가상의 팀으로 구성해 그들의 실제 대회성적을 토대로 점수를 매겨 승부를 가린다. 선수의 한 대회 언더파-오버파, 평균 퍼팅수, 온그린 적중률 등 각종 통계가 점수로 환산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포츠를 보면서 즐긴다. 그러나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통계를 알면 스포츠가 더 재미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판타지 게임’을 한다. 》

판타지 게임은 개인이 가상의 구단주가 돼 프로선수들로 팀을 구성해 그들이 실제 경기에서 보인 각종 통계를 점수화해서 다른 구단주와 경쟁을 벌인다. 1979년 미국에서 시작된 ‘판타지 야구’ 이후 미식축구, NBA 농구,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아이스하키, 골프, 자동차 경주까지 퍼졌다.

전 세계적으로 약 5000만명이 판타지 게임을 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 중 판타지 야구 참가자는 약 3000만명이다.

○ 통계 게임 ‘판타지 야구’

회사원 홍진석씨(31)는 지난해 3월 말부터 9월 말까지 ‘www.mvpbaseball.co.kr’라는 야구팀의 구단주였다. 직장 동료와 친구 11명과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하는 판타지 야구 게임에 하나의 리그를 만들어 참여한 것이다.

홍씨는 자기 팀 선수들이 실제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보인 각종 통계가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오후 6시에는 인터넷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여름휴가를 가서도 인근 PC방을 찾았다.

1979년 11월 말 미국 뉴욕의 작가이자 야구광인 다니엘 오크렌트와 그의 출판계 친구들은 맨해튼 52번가의 프랑스 식당 ‘라 로티세리’에 모여 판타지 야구를 고안했다.

그들은 드래프트로 실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뽑아 가상의 팀을 구성해 하나의 리그를 만들었다. 선수들이 실제 경기에서 얻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도루, 승패, 세이브, 삼진, 평균자책 등의 통계에 따라 부문별 점수를 매일 매겼다. 실제 시즌이 끝나면 부문별로 얻은 점수를 합산해 팀 순위를 결정했다.

판타지 야구는 크게 드래프트, 리그 편성, 트레이드, 점수 계산으로 이뤄진다. 특히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를 잘하려면 선수들의 각종 통계를 면밀히 분석해 미래의 활약을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그것이 판타지 야구의 묘미 중 하나다.

홍씨는 “통계를 잘 분석해 선발한 무명 선수가 실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0년 인터넷으로 판타지 야구 게임을 하는 벤처기업 10여개가 생기면서 참여 인원이 50만명에 이른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1만명 정도가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새로운 통계 ‘세이버메트릭스’

○새로운 통계 '세이버메트릭스'

판타지 야구 초기에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통계는 일간신문에 나오는 선수들의 기록이 전부였다. 따라서 투수의 승수나 타점, 홈런, 타율 등 간단한 통계만을 사용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도 대부분 게임은 투수와 타자를 합쳐 10개 부문 통계를 주로 쓰지만 좀 더 복잡하면서도 새로운 통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좋아하는 민간인들의 조직인 미국야구조사협회(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SABR)가 개발한 수학적, 통계적 야구 분석법이다.

기존 통계가 개인의 기록을 중시했다면 세이버메트리션들은 개인이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능력을 중시한다. 이들은 경기에서 이기려면 득점을 해야 하고 득점은 베이스에 선수들이 나가야 가능하다고 봤다. 단순히 타율이 좋은 선수보다 출루를 많이 하는 선수(출루율)와 앞선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도록 장타를 치는 선수(장타율)를 높이 평가했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은 이런 새로운 통계를 선수 선발에 적극 활용했다. 다른 팀이 감이나 신체능력으로 선수를 뽑을 때 그는 볼넷을 얻어낸 통계나 상대 투수로 하여금 많은 공을 던지게 한 통계 등으로 선수를 선발했다. 그 결과 팀연봉은 리그 15개팀 중 바닥을 맴도는 팀이 99년부터 리그 선두를 다투는 팀으로 변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출루율과 장타율, 그리고 이 둘을 더한 수치인 OPS는 2000년 이후 선수의 기여도를 분석하는 중요한 통계로 자리 잡았다.

○ 통계의 우상(偶像)

세이버메트리션을 자처하는 이보균씨(29·회사원)는 “새로운 통계를 가지고 분석하면서 야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기의 승패를 떠나서 야구 자체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선수들의 기록을 줄줄 외는 ‘움직이는 야구연감’들은 70년대에 한국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록만으로는 야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새로운 통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통계가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모든 현상의 실체를 꿰뚫어보는 전지전능한 도구만은 아니다.

MBC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송재우씨(38)는 “통계의 맹점은 우리 눈으로 직접 선수를 보지 않고도 그 선수를 판단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 SK 와이번스에서 뛰는 조진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당시 그의 마이너리그 통계가 당시 박찬호 선수보다 좋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는 것이다.

한국프로야구 기록을 수집해 통계를 공급하는 ‘스포츠2i’사의 박기철 상무(46)도 “스포츠는 단순히 통계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다. 멘털 게임이면서 동시에 선수를 보는 눈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계를 아는 만큼 스포츠는 재미있다. 그러나 통계에 매몰되지 않고 많은 경기를 직접 보면서 바탕을 다진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