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다 쓰러지면 정신력 부족?…부상 부르는 한국축구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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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엔진’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초롱이’ 이영표(30·토트넘 홋스퍼)에 이어 ‘설바우두’ 설기현(28·레딩 FC)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인방이 모두 부상으로 수술받은 뒤 재활에 몰두하고 있다. 박지성은 오른 무릎 연골, 이영표는 왼 무릎 인대, 설기현은 오른 발목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박지성은 길면 1년 이상 재활에만 매달려야 한다. 왜 한국 선수들에게 부상이 몰려온 것일까.

몸이 재산인데… 혹사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는 2004년 16세 청소년대표 선수 29명에 대한 메디컬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3분의 2가 넘는 20명이 과사용증후군(근육, 인대, 관절 이상)과 과훈련증후군(심장박동 이상, 몸의 산성화)을 보였다.

축구선수가 부상하는 주 이유는 과다 사용이다. 김현철(김&송 유나이티드정형외과 병원장) 한국축구대표팀 주치의는 “우리 몸은 혹사시키면 탈이 나게 돼 있다. 무엇보다 부상 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뛰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관절을 다치면 뼈와 뼈를 이어 주는 인대가 늘어나거나 찢어진다. 이게 원상 복구되기 전에 사용하면 탈이 나는 것이다. 인대가 제 역할을 못해 주니 연골 내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많아져 연골이 빨리 닳고 마찰 부위에 장시간에 걸쳐 새 뼛조각이 형성된다는 얘기다. 이게 5∼8년 뒤에 나타난다.

박지성도 이런 경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학창시절 언젠가 무릎을 다쳤고 통증이 사라지자 뛰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연골 내 뼛조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 주치의는 “한국 선수 대부분이 이런 종류의 부상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말한다.

무조건 이겨라… 강요

‘아파도 정신력으로 참고 뛴다’는 한국 축구계의 전근대적인 분위기가 이런 부상의 가장 큰 원인이다. 초중고교와 대학 팀들이 전국대회를 치르며 성적지상주의에 빠지다 보니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적을 내야 하니 잘하는 선수가 많이 뛸 수밖에 없고, 중요한 대회라면 “주사를 맞고서라도 뛰어야지” 하며 감독이나 부모가 선수들을 종용한다.

심지어 프로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주위에선 ‘대단한 투혼’이라고 부추긴다.

맨땅 축구도 부상을 키운다. 땅에서 잘 미끄러지다 보니 신발을 꽉 조여 주는 습관이 들게 돼 경기 도중 신발이 벗겨져야 할 상황에서 안 벗겨져 무릎과 발목이 꺾이는 현상이 많이 나오게 된다.

잔디구장이 늘어나면서 맨땅 축구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성적지상주의에 따른 선수 혹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너죽고 나살자… 태클

다치면 병원을 바로 찾아야 한다. 통증이 사라진다고 해서 의학적으로 ‘완쾌’된 것이 아니다. 결국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선수들의 동업자 정신도 중요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볼을 보고 태클한다. 경기 도중 부상이 적은 이유다. 우리나라는 발을 보고 무리한 태클을 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유럽 빅리그에는 골키퍼를 빼고도 30세 중반 넘어서까지 뛰는 선수가 많다. 우리나라는 30세면 노장이다. 부상으로 일찍 은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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