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사이언스] ‘6조각’ 브라주카 미세돌기의 비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4월 30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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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집중분석

월드컵은 별들의 전쟁이다.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스타군단들이 각축전을 벌인다. 세계인의 축제를 빛내기 위한 과학적 지원도 대단하다. 각국 대표팀은 조금이라도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스포츠과학의 힘을 빌린다. 스포츠과학은 유니폼, 축구공 등 용품을 비롯해 기후 적응, 체력 단련, 심리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된다. 6월 13일(한국시간) 개막하는 2014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스포츠동아와 한국스포츠개발원(KISS)은 축구 속에 숨겨진 과학들을 살펴볼 계획이다. 그 첫 회에선 브라질월드컵의 공인구 ‘브라주카’를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주>

첫 월드컵 공인구는 32개 가죽조각으로 제작
14조각→8조각…브라주카에 이르러 6조각
공 불규칙성 줄이기 위해 완벽한 구형 추구

표면이 매끄러워지면서 공기저항 많이 받아
골프공처럼 미세돌기 처리로 공기저항 줄여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이웃 학교와 축구시합을 할 때, 서로 자기 공을 사용하겠다고 우기다가 동전을 던져서 결정했던 생각이 난다. 경기가 끝난 뒤 ‘공 때문에 졌다’고 아쉬워했던 철부지 모습도 떠오른다. 1930년 우루과이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제1회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서로 자기 공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중재로 전반에는 아르헨티나 공, 후반에는 우루과이 공을 사용하게 됐다. 그 결과 전반에는 아르헨티나가 2-1로 리드했지만, 후반에는 우루과이가 4-2로 역전해 우승했다. 결국 자기 공을 사용할 때 더 많은 골을 얻은 셈이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1970년 제9회 멕시코월드컵부터 공을 둘러싼 논란은 더 이상 일지 않았다. FIFA가 공인구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아디다스와 손잡은 FIFA는 가볍고 구형에 가까운 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32개(검정색 오각형 12개·흰색 육각형 20개)의 가죽조각으로 된 텔스타를 발표했다. FIFA와 아디다스의 독점계약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44년에 걸쳐 12차례 공인구를 만드는 동안 축구공의 기능을 향상시켜왔다.

32조각의 축구공은 현대식 축구공으로 각인되며, 2002년 한·월드컵까지 사용됐다. 32조각을 탈피한 것은 2006년 독일월드컵 때의 팀가이스트다. 팀가이스트는 14조각(정육각형 8개·사각 프로펠러 구조 6개)으로 만들어졌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사용된 자블라니는 8조각으로 줄었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6개로 줄어 역대 어느 공보다 완벽한 형태라고 한다. 이처럼 축구공 조각을 줄이는 것은 완전한 구형에 가깝게 만들어 공의 불규칙성을 줄이고 정확한 패스를 통해 기술적 흥미를 높이기 위해서다.

제20회 브라질월드컵에 사용될 공인구는 2012년 브라질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인터넷조사를 통해 ‘브라주카(Brazuca)’로 명명됐고, 2013년 12월 일반에 공개됐다. 공인구 사상 처음 실시된 투표에는 100만여명이 참가했다. 브라주카는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브라질인’또는 ‘브라질 특유의 삶’을 뜻하는 포르투갈 속어다. 브라질 사람들이 월드컵 공인구 명칭에 브라질을 연계시킨 것은 FIFA의 설명처럼 ‘축구를 대하는 브라질인의 자부심, 정서, 우호’를 상징하고, ‘브라질인의 삶 속에 담긴 국가적 자긍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 표면의 디자인은 브라질을 가로질러 흐르는 아마존강을 형상화한 것이고, 화려한 색채는 브라질 살바도르 사람들이 소원을 빌 때 차는 소원 팔찌, 바히아 위시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

월드컵 공인구에 대해 FIFA는 1996년 ‘국제경기 사용구 기준(International Matchball Standards)’을 정했다. 공의 둘레, 둥글기, 질량, 반발력, 방수능력, 압력손실, 내구성의 7개 항목을 규정하고 있다. 공인구의 조각 수, 문양, 명칭 등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아디다스의 발표에 따르면, 브라주카는 질량 437g, 둘레 69cm, 반발력 141cm, 방수능력 0.2% 등으로 모든 기준을 통과했다. 이처럼 규격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이유는 공의 규격이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의 공인구를 꿈꾸며 개발했다’는 아디다스는 브라주카의 기능적 특징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했지만,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역대 가장 적은 6조각으로 만들었고, 공의 표면에 미세돌기를 특수 처리했다는 것이다. 또 많은 선수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제작단계에 반영함으로써 기능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반발력 저하(자블라니 143cm·브라주카 141cm)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공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조각의 수를 줄일수록 완전구형에 가까워질 수 있고, 조각이 많은 공에 비해 이음새가 줄어드는 만큼 표면이 매끄러워져 불규칙성 또한 줄어든다. 그러나 공이 날아갈 때는 공의 표면이 매끄러울수록 공기저항을 많이 받는다. 풍동(wind tunnel) 실험을 통해 살펴보면, 공기흐름이 앞에서 중간 부분까지는 공 주변을 감싸듯 매끈하게 흐르고, 뒷부분에선 공기가 소용돌이친다. 공 주변을 흐르는 부분을 경계면이라고 하는데, 이 면이 넓을수록 소용돌이가 줄어 공기흐름이 유선형처럼 돼 공기저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골프공에 곰보처럼 딤플(dimple)을 만드는 것도 바로 경계면을 넓힘으로써 공기저항을 줄이려는 것이다. 브라주카 표면에 미세돌기를 특수 처리했다는 것은 공 조각이 줄어 표면이 매끄러워짐에 따라 공기저항이 늘어나는 만큼 이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는 자블라니에 처음 사용된 기술이다.

자블라니는 잡으려 해도 잘 안 잡혀 골키퍼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다. 아디다스의 주장과는 달리 14조각에서 8조각으로 줄어든 공인구가 풍동실험만으로는 경기현장의 다양한 상황까지는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제 6조각으로 더 줄었다니, 태극전사들이 한층 분발해 브라주카에 빨리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다.


최규정 박사 한국스포츠개발원(KISS) 스포츠과학실 수석연구원
스포츠동아·한국스포츠개발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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