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 치료자 절반은 스포츠도박에 빠졌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5월 26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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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포츠도박은 병이다

도박은 중독을 부른다. 도박은 강력한 중독 인자를 품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박이야말로 지구상에서 마약 다음으로 중독성이 강한 ‘독’이라고 강조한다. 인류의 변천에 따라 도박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한 도박이 ‘대세’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에 도박중독으로 치료 받은 대상자를 분석한 결과 스포츠도박이 47.9%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전통적 도박유형인 카지노(16.9%)와 카드(10.9%)는 한참 뒤로 밀려났다. 경제행위인 주식도 과몰입되면 중독이 된다. 주식중독도 5.9%로 나타났다. 스포츠도박의 경우 중독자 대부분이 불법온라인도박으로 인한 중독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PC는 물론 스마트폰을 사용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독에 이르는 과정이 다른 도박 종류보다 훨씬 빠르다. 베팅 횟수와 금액 제한이 있는 합법적인 베팅과 달리 무제한으로 베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도박충동을 더욱 자극한다.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중독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인 인간의 황폐화가 그 어떤 도박중독보다 빠르게 일어난다.

지난해 상반기 치료자 중 47.9% 차지
심적 불만족·승부욕 강한 사람 등 위험
전문의 “도박중독은 병…뇌질환의 하나”
인터넷 끊는 등 물리적으로 멀리해야

● “나는 딸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중독 불러

사람들은 왜 도박에 중독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사람이 도박에 빠지게 될까.

정신과 전문의 손석한(47·연세정신과의원) 원장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도박에 중독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첫째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 둘째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상에서의 재미, 심리적 불만족을 도박을 통해 해소하려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도 도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자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다. 전문적인 표현으로는 ‘왜곡된 인지’라고 한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딸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잃은 기억은 안 하고 크게 땄던 기억만 한다. 손 원장은 “인지패턴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도박중독에 취약하다. 이들의 무모함 뒤에는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자기애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심리상담사 나지훈(38)씨는 “도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도박중독으로 가는 길을 밟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씨는 “도박에 중독된 남편을 찾기 위해 도박장을 헤매던 아내가 호기심에 시작한 도박으로 인해 결국 도박중독에 이르게 된 사례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박중독은 병일까.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은 병”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손석한 원장은 도박중독을 뇌 질환의 하나라고 했다.

“뇌에는 보상체계가 있다. 리워드 시스템이라고 한다. 도파민 물질이 주로 관여하는 시스템이다. 인간은 뭔가를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지나치게 기능이 항진하게 된다. 즉, 지나친 보상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마다 즐거움, 쾌감을 느끼는 것이 다르다. 누군가는 먹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고, 누군가는 섹스를 할 때 쾌락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다. 도박중독자는 도박할 때 최고의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 ‘쾌감’이 일반사람이 느끼는 쾌감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작용한다. 보상이 ‘지나친’ 것이다.

중독자들은 대부분 “한 방만 터지면 그만 두겠다”라고 호언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손 원장의 설명이다. ‘한 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은 베팅의 ‘쾌감’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중독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 스스로 중독임을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

중독초기에는 일상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 의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일상생활이 병행된다면 아직 중독초기다. 당연히 치료도 용이하다.

문제는 중기·말기로 가면서 일생생활의 기능이 저하되고 결국 내팽개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직업을 포기하고, 곧이어 대인관계의 상실이 따른다. 친구들이 떠나고 마지막에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는 차원을 넘어 훔치거나 사기를 치는 단계에 이르면 마지막 단계에 다다랐다고 봐야 한다. 손 원장은 “말기임에도 병원에 와서는 멀쩡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치료는 본인 스스로 중독임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중독을 병으로 인식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그저 취미이자 여가활동일 뿐”이라 주장한다는 데에 있다. 심지어 병원에 함께 온 가족들도 이렇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도 중독자 자신이 중독이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끔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중독자들은 성격도 바뀐다. 온화했던 사람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심리상담사 나씨는 “중독자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가족이 먼저 도박중독임을 인식하고 함께 상담을 받을 것”을 권했다. 특히 도박중독자가 재정적인 문제를 터뜨리고 도움을 요청할 경우 가족들이 돈을 대신 갚아주기 전에 먼저 상담 받을 것을 권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씨는 “오히려 이때가 치유를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중독이 심하면 상담 외에 약물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갈망을 줄여주는 항갈망제가 있다. 알코올 중독 치료에도 쓰이는 약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동반될 경우 항우울제를 사용해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 한다.

● “하루 종일 그 생각만 난다?”…멀리 하라는 신호

도박중독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중독성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박만 하면 즐겁고, 만사를 잊을 수 있고, 하루 종일 그것만 생각이 난다면 멀리해야 한다는 신호다. 뭔가를 한다면 혼자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중독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혼자한다는 것이다. 술도 여러 사람과 어울려 마시는 사람 중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별로 없다. 손 원장은 “물리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주변에 도박장이 있으면 이사를 가고, 온라인도박에 빠졌다면 인터넷을 끊어야 한다. 스마트폰 속의 도박 애플리케이션도 삭제한다. 인간은 원래 의지가 나약한 동물이다.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인간 행동이 바뀌기 어렵다.

도박중독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도박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도박에 빠지기 쉬운 기질인지 아닌지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암에 잘 걸리는 체질인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발암물질을 섭취할 필요는 없다.

지구상에서 마약과 함께 가장 악마적인 중독으로 불리는 도박. 남들처럼 즐길 수 없다면 가차 없이 끊어야 한다. 불법도박중독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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