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순 “1960년 스키도 없이 미국行… 하늘이 도와 올림픽 출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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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봉송 바라보는 ‘스키 국가대표 1호’ 임경순 씨의 남다른 감회

3년 전부터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한 임경순 씨는 금강산에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스키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3년 전부터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한 임경순 씨는 금강산에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스키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을 누구보다 가슴 벅차게 기다려 온 사람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국내 겨울스포츠를 지켜온 사람이다. 성화가 도착한 1일 그는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가난한 시절, 꿈조차 꾸지 못했던 올림픽 개최를 바라보고 있는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발판 삼아 후배들이 힘차게 도약하기를 바라고 있다.

○ 스키 국가대표 1호

중국에서 머물다가 광복 직전인 1944년 고국으로 돌아온 임경순 씨(87)는 한국 스키 역사를 쓰기 시작한 스키 1세대다. 일제강점기 때 누군가 쓰다 버린 벚나무 스키에 남대문시장에서 팔던 국군용 잠바가 당시 임 씨가 갖춘 스키 장비의 전부. 서울에 살던 임 씨는 겨울이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집을 떠나 눈이 많은 평창에 머물렀다.

“스키 동호회 회원들과 강원 평창으로 가서 합숙하며 스키를 탔어요. 합숙소에서도 1시간을 걸어 지르매산으로 갔죠. 거기밖에 탈 데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 도착하면 스키 타기도 전에 기진맥진하기 일쑤였죠 뭐.(웃음)”

임 씨가 처음으로 나간 공식 대회는 1949년 서울 아차산에서 열린 스키대회였다. 당시 기록적인 폭설로 서울에는 눈이 한가득 쌓였다. “이틀 내내 1위를 했는데 심판을 보던 분이 스톱워치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그만큼 기록이 좋았던 거죠.”

임 씨는 1960년 미국 스쿼밸리 겨울올림픽에 스키 국가대표 1호 선수로 뽑혀 출전했다. 그때까지 고물에 가까운 스키밖에 없던 임 씨는 아내가 결혼 패물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새 스키를 장만하려 했다. 하지만 스키를 사기 위해 들르려 했던 일본이 임 씨의 입국을 거절해 올림픽의 꿈은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 아직 한일 국교 정상화도 이뤄지지 않았을 때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일단 미국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스키 부츠와 장갑은 구했는데 스키가 너무 비쌌어요. 막막하던 그때 개최국 미국의 국가대표 총감독이 연락해왔어요. ‘스키도 없이 왔다’는 기사를 보고 도와주고 싶다는 거였죠. 그렇게 출전하게 된 겁니다. 하늘이 도운 거죠.”

○ 스키 변방, 한국을 알린 오뚝이 정신

1965년 대관령 스키장에서 후배 선수들 앞에서 스키 시범을 보이고 있는 임경순 씨(왼쪽 사진). 스키장이 없던 그 시절 임경순 씨는 겨울철 강원 평창에서 합숙을 하며 스키를 탔다. 합숙소에서도 논밭을 가로질러 1시간이나 걸어야 스키를 탈 수 있는 강원 창도군 지르매산이 나왔다. 임경순 씨 제공
1965년 대관령 스키장에서 후배 선수들 앞에서 스키 시범을 보이고 있는 임경순 씨(왼쪽 사진). 스키장이 없던 그 시절 임경순 씨는 겨울철 강원 평창에서 합숙을 하며 스키를 탔다. 합숙소에서도 논밭을 가로질러 1시간이나 걸어야 스키를 탈 수 있는 강원 창도군 지르매산이 나왔다. 임경순 씨 제공
코치도 없이 떠난 첫 겨울올림픽은 임 씨에겐 가혹하고 낯선 무대였다. 어렵게 구한 새 스키 또한 낡은 스키에 익숙하던 임 씨에게 맞지 않았다. “대회 전날 시범경기 때 그만 스키장에서 데굴데굴 굴렀죠.(웃음)”

대회전에서는 기문 3개를 지난 뒤 기권했지만 활강(61위)과, 회전(40위)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넘어지면 이 악물고 일어서서 기어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외신은 그런 투지를 높이 사 임 씨의 소식을 세계에 알렸다. 아프고 또 창피함마저 들었던 그 순간을 끝내 견뎌낸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스키장 하나 없던 때였어요. 국제 경기라는 걸 구경이나 해봤을까요. 그래서 도전해보자는 일념으로 나갔던 거였어요. 또 이런 큰 대회에 출전한 외국 선수들을 보고 배워 한국에 전파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상전벽해의 시간이 지난 지금 임 씨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후배들이 비상하길 꿈꾼다. 임 씨를 비롯해 여러 스키 원로들이 묵묵히 걸어온 길이 그 힘찬 도약의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제 현역 시절이던 50년 전과는 달리 한국의 높아진 위상과 겨울스포츠의 힘을 널리 자랑할 수 있도록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후배들이 좋은 성적으로 보답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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