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타고나는 거야”… ‘유전적 요인’ 연구 발표 잇따라

  • 입력 2004년 8월 12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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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장거리 육상경기를 휩쓸고 있는 케냐 선수들은 선천적으로 같은 양의 산소를 마셔도 훨씬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갖췄다는 점이 드러났다. 케냐 출신의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 윌리어 킴상이 골인 지점에 다다른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남자 장거리 육상경기를 휩쓸고 있는 케냐 선수들은 선천적으로 같은 양의 산소를 마셔도 훨씬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갖췄다는 점이 드러났다. 케냐 출신의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 윌리어 킴상이 골인 지점에 다다른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고 스포츠선수들의 경연장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오늘부터 17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100m를 9초대에 달리거나 42.195km를 2시간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주파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와는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일반인보다 월등한 운동 능력을 가진 운동선수는 ‘타고 난다’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연비 좋은 신체 구조=남자 장거리 육상경기는 케냐 선수들의 독무대다. 현재 마라톤과 하프마라톤을 비롯해 25km, 20km, 15km, 3000m 등의 경기에서 세계 기록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자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는 케냐 선수들의 비밀을 파헤쳐온 10년간의 연구가 소개됐다. 특히 덴마크 코펜하겐 근육연구센터의 벵트 샐틴 박사팀이 케냐 선수들을 스칸디나비아 선수들과 비교한 연구가 주목받았다.

연구 결과 케냐 선수들은 ‘연비’가 좋은 신체 구조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다리가 가늘고 종아리 무게가 400g 덜 나가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 똑같은 양의 산소를 마셔도 케냐 선수들은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케냐 선수들의 골격근에는 에너지를 많이 뿜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효소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집중돼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샐틴 박사는 “이런 경향은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구력 유전자’ 있다=운동 능력을 좌우하는 유전자로 처음 알려진 것은 1998년 5월 21일자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영국 런던대의 몽고메리 교수팀이 발표한 ‘안지오텐신 변환 효소(ACE)’ 유전자.

연구팀은 7000m 이상의 고산을 무산소로 오른 경험을 가진 엘리트 산악등반가 25명과 건강한 일반인 1900명에 대해 ACE 유전자를 조사했다. ACE 유전자는 II, ID, DD의 세 가지 유전자형을 갖는다. 일반인들은 각각 25%, 50%, 25%의 분포를 보인 반면 극한의 지구력을 가진 엘리트 산악등반가들은 II형을 지닌 사람이 DD형보다 5배 정도 많았다.

국민대 체육학부 이대택 교수는 “II형은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년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리듬 체조, 배구, 축구 등의 우리나라 대표급 선수들 140여명에 대해 ACE 유전자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ACE 유전자는 선수들의 종목, 연령, 남녀에 관계없이 차이가 없었지만 육상의 경우는 달랐다. 중장거리선수에게 II형이 많은 것으로 밝혀진 것.

이 교수는 “육상 이외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지구력 하나만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뛰거나 방향을 바꾸는 등 복합적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ACE 유전자의 유형이 일반인의 경향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외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단거리선수들은 DD형이 많다”며 “이는 DD형이 순간적인 근력을 발휘하는 운동에 유리하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한국인은 격투기 종목에 유리=현재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박동호 박사팀은 2001년부터 3년째 우수 운동능력 보유자를 발굴하기 위한 유전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세로토닌 운반체 유전자(5-HTT 유전자).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 자살, 폭력,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운동 능력과 관련해 처음 연구한 것이다. 이 유전자의 SS형은 공격성이 강한 사람에게, LL형은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에게 많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우리나라 일반인 24명, 우수 단거리선수 34명, 우수 장거리선수 42명을 대상으로 이 유전자의 유형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 일반인이나 단거리선수와 달리 장거리선수에게는 SS형이 많이 나타났고 LL형은 전혀 없었다. 박 박사는 “장거리선수는 물리적인 체력(지구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능력(공격성)도 뛰어나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6월 2일 ‘미국대학 스포츠의학회(ACSM)’에서 발표됐다.

박 박사는 또 “학계 자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외국인보다 SS형이 많이 나타난다”며 “이는 우리 선수들이 공격성이 요구되는 권투나 레슬링 같은 격투기 종목에 유리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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