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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유명우 “내가 장정구와 맞붙지 않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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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유명우 “내가 장정구와 맞붙지 않은 이유는…”

동아닷컴입력 2012-07-10 11:08수정 2012-07-1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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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우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 동아닷컴DB

과거 한국 프로복싱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1980년대는 물론, 1990년대 초만 해도 지금의 프로야구 인기가 남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세계 타이틀 매치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의 거리는 한산했다. 경기장은 인파로 가득 찼고 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TV속 복싱 선수가 되어 함성을 질렀다. 방송사들은 TV 중계권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80~90년대 중심에는 이 사람, 유명우(48)가 있었다.

유명우는 85년 조이 올리보(미국)를 판정승으로 꺾고 세계권투협회(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국내에는 유명우 외에도 세계 챔피언이 여럿 있었지만 그 누구도 경기내용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유명우를 앞서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 유명우는 링 위에만 올라가면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현란한 소나기 펀치를 앞세워 상대를 무너뜨리곤 했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작은 들소’.

뛰어난 기량 못지 않게 유명우는 인성도 훌륭한 복서였다. 이에 관한 일화 하나. 당시 모 자동차 회사가 광고 효과를 노리고 유명우에게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무상으로 제공하려 했다. 제안을 받은 유명우의 답은 이랬다. “아버지가 버스 기사인데 아들인 내가 어떻게 자가용을 탈 수 있겠는가.”

당시 연 2억 원 이상의 소득이 있었던 유명우 였지만 그는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부친이 정년 퇴직을 한 후에야 자가용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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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챔피언이 된 유명우는 성실함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무려 17차 방어전까지 치렀다. 그러나 91년 첫 해외 원정 방어전이었던 일본(18차)에서 이오카 히로키에게 석연찮은 판정으로 타이틀을 빼앗겼다. 현역때 ‘무패 상태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겠다’던 유명우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유명우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 동아닷컴DB

자신과 팬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 다시 신발끈을 조여맨 유명우는 92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오카를 판정으로 꺾고 빼앗겼던 챔피언 벨트를 찾아왔다. 그 후 1차 방어전을 치른 유명우는 챔피언 자리에서 스스로 타이틀을 반납하고 약속대로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했다. 프로통산 전적 39전 38승 1패(14 KO).

한국 프로복싱은 공교롭게도 유명우의 은퇴와 함께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복싱의 명성과 인기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 것. 여기에 올 초에는 한국권투위원회에 2개의 집행부가 들어서며 서로를 고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동아닷컴은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 직함을 달고 다시 복싱 팬들 앞에선 유명우 씨를 만났다. 유 총장은 자신의 복싱 인생과 한국 복싱의 문제점, 앞으로의 대책 등을 가감없이 들려줬다.

다음은 유명우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중학교 시절 복싱에 입문한 걸로 안다. 정확히 언제, 어떤 계기로 복싱을 하게 되었나?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복싱을 시작했다. 당시에 남자다운 운동이란 생각이 들어 내 스스로 선택하고 시작했다.”

-화려했던 프로와 달리 아마추어 경력은 형편없다고 들었다.

“(웃으며) 맞다. 내 아마추어 전적이 1승 3패인 걸로 기억한다. 당시 최경량급이 45kg급이었는데 거기에도 미달될 만큼 왜소해서 경기에 나갈 수 없었다. 시합에 많이 못 나가다 보니 성적이 좋지 못했다.

-기록을 보니 만 18세 되던 해인 1982년에 프로에 입문했다.

“그렇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이었는데 내 스타일이 아마추어랑 잘 안 맞고 해서 일찍 프로로 전향했다. “
유명우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 동아닷컴DB

-프로진출 3년 만인 1985년에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아마추어 때와 달리 프로에서는 승승장구했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었나?

“글쎄,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다만 남들보다 일찍 운동을 시작해서 기본기가 좋았다. 비록 아마추어 때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늘 자신감이 있었다. 프로에 입문한 후 운 좋게 연승 가도를 달리다 보니 이기는 게 습관이 되면서 실력과 자신감이 더 늘었던 것 같다.”

-세계챔피언이 된 후 무려 7년 동안 17차 방어전을 치르며 롱런했다.

“세계챔피언이 되겠다던 신인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당시 세계챔피언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유 총장은 챔프가 된 후 단 한 번도 스캔들이 없었다. 외부에서 유혹은 없었는가?

“(웃으며) 전혀 없었다. 챔피언시절에는 운동에만 전념했다.”

-복싱은 체중감량 등 다른 스포츠에 비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심한 운동이다. 다시 태어나도 복싱을 할 것 인가?

“복싱은 내 인생의 전부였고 지금도 복싱을 너무 사랑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다른 운동을 하고 싶다. (웃으며)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
유명우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 동아닷컴DB

-현역시절 가장 기뻤을 때와 슬펐을 때를 꼽는다면?

“가장 기뻤을 때는 1985년에 세계챔피언에 올랐을 때다. 가장 슬펐을 때는 프로입문 후 36연승을 달리다 18차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잃었을 때 였다.”

-현역시절 가장 힘들었던 경기를 꼽으라면? 그리고 그 이유는?

“(웃으며)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솔직히 매 경기 힘들었고 지명 방어전은 더 힘들었다. 특히 남미선수들은 복싱 센스가 뛰어나고 체력이 좋아 항상 고전했다.”

-많은 복싱 팬들이 ‘유명우 대 장정구’의 통합 타이틀전을 원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선수끼리의 통합 타이틀전은 국내 복싱 시장 규모가 작아 대전료 문제 등의 이유로 성사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챔피언 후반기 시절 미국 선수와의 통합 타이틀전 제의가 있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줄만큼 적은 대전료를 제시해 외면했다.”

-만약 장정구와의 경기가 성사됐다면 누가 이겼을까?

“(웃으며) 글쎄 누구도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복싱은 워낙 상대성이 강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합이 벌어졌다면 박빙의 경기로 매우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누가 이겼을 지 당사자인 나도 궁금하다. 하하”

-다수의 세계챔피언들이 복싱을 그만둔 뒤 사업 실패 등 경제적으로 몰락한 경우가 많은데 유 총장의 경우는 다르다고 들었다.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은퇴한 뒤 주로 요식업에 종사했는데 큰 어려움 없이 잘 됐다. 지금은 서울과 수원에서 오리고기 체인점 사업을 하고 있다.”

-8~9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복싱이 현재는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한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단 복싱 인기가 사라진 것은 복싱인들의 문제가 크다. 시대 흐름에 맞는 행정력을 갖추지 못했고 해외선진 복싱을 배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안일한 행보가 빚어낸 업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지금의 한국복싱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여러 복싱인들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곧 나아지리라고 본다.”

-과거의 복싱 인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의 악습을 버리고 선수와 매니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대중의 시선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선수를 배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좋은 선수가 나와 좋은 경기, 재미있는 경기를 펼친다면 인기는 분명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는다.”
유명우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 동아닷컴DB

-한국권투위원회가 한지붕 아래 두 집행부가 있는 것으로 안다. 법적 공방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그렇지 않다. 현재 한국권투위원회는 홍수환 회장 명의로 등기가 정리된 단 하나의 집행부뿐이다. 단지 몇몇 비복싱인들이 협회를 흔들기 위해 고소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큰 잡음 없이 정리될 것이다.”

-한국은 지인진이 스스로 타이틀을 반납한 뒤 무려 7년간이나 남자 세계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점은 나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세계챔피언이 되어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면 누가 그 힘든 운동을 하겠는가? 선수들이 잘하면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런 풍토를 만들기 위해 현 권투위원회가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침체된 한국 복싱을 살리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있는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장밋빛 청사진만 그리기 보다는 권투위원회 집행부와 선수 모두가 자기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지금은 상책이라고 본다. 일본이나 미국 등 복싱 선진국의 행정과 마케팅 기법 등을 조사하며 현실적인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언제쯤 한국 남자 복싱이 세계챔피언을 배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 역시 작년에 프로모터 일을 하면서 시합을 4건이나 성사시켰다. 세계챔피언 배출을 위해 노력하다 지금은 행정부 쪽 일을 맡으며 현장에서 후배 양성을 하지 못하게 돼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행정부 일이 정리되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이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복싱 팬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나는 복싱 팬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고 그 분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좋은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세계챔피언을 배출해 과분하게 받았던 그 사랑에 꼭 보답하겠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indian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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