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TNT 타임]‘테니스 간판’ 정현은 왜 물집이 잘 생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3일 0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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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2·한국체대)이 코트에 복귀한다. 정현은 24일 중국 청두에서 개막하는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청두오픈에 나선다. 이 대회는 ATP투어 250시리즈로 우승 상금은 19만885 달러(약 2억1000만 원)이다. 세계 랭킹 23위 정현은 2번 시드로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하게 됐다.

정현의 대회 출전은 지난달 31일 US오픈 2회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정현은 발바닥 물집에 시달리며 상대 선수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다는 평가에도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정현의 물집은 한때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이 높기도 했다. 1월 호주오픈 때는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심한 물집으로 진통제 주사까지 맞아가며 4강 신화를 썼으나 로저 페데러와 경기 도중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어 기권했기 때문이다.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는 벌겋게 생살을 드러낸 정현의 두 발바닥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 테니스를 이끌고 있는 정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실력으로 롱런하려면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는 ‘물집 악령’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정현 역시 “남은 시즌만큼은 부상 없이, 후회 없이 마무리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2018 호주오픈 당시 심하게 물집이 잡힌 정현의 발바닥.
2018 호주오픈 당시 심하게 물집이 잡힌 정현의 발바닥.
물집은 왜 생길까
물집은 왜 생길까
●물집은 왜 생기나

홍정기 차의과대 스포츠의학대학원장의 조언에 따르면 물집(blister)이 자주 잡히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먼저 물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발 뼈들이 앞뒤, 옆으로 계속 움직이면서 피부 밑에 작은 손상을 일으켜 그곳에 물이 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shear’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 단지 피부에 마찰이 생겨서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기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이나 하지 근육들의 컨디셔닝 상태가 중요하고 발목이나 발에 입었던 부상들 역시 재활이 잘돼야 한다.

홍 원장은 “발이 미끄러지는 동작에서 근육들이 발의 26개 뼈가 잘 안정화 되도록 역할을 한다면 shear가 줄기 때문에 좋은 예방책이 될 수 있다”며 “단지 발이나 하지의 컨디셔닝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좋은 심폐체력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심폐기능이 좋으면 갑작스런 움직임을 더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니 발의 과한 동작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2018 호주오픈 단식 4강 전에서 심한 물집으로 로저 페더러에게 기권패한 뒤 기자회견장에 슬리퍼를 신고 등장한 정현,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2018 호주오픈 단식 4강 전에서 심한 물집으로 로저 페더러에게 기권패한 뒤 기자회견장에 슬리퍼를 신고 등장한 정현,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정현에게 물집이란

국내 테니스 전문가들은 정현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물집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정현을 중학교 때 발굴해 삼성증권 지원을 성사시킨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은 “정현은 치아가 부정교합이었다. 그러면 신체에 언밸런스를 일으켜 다른 관절에도 문제가 올 수 있다”며 “메이저 4강 이상의 성적을 내려면 철저한 체력 관리가 필수다”고 말했다.

정현의 ATP투어 프로필을 보면 키 187cm, 몸무게 87kg으로 나온다. 노박 조코비치와 키(188cm)는 엇비슷한데 몸무게(77kg)는 10kg 더 나간다. 운동선수에게 적당한 체중은 부상 예상과도 직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와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노갑택 명지대 교수는 “메이저 대회 5세트 경기를 견디려면 체중 조절도 필수다. 정현은 순간적으로 쓰는 힘은 좋은데 근지구력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체력 상태에 따른 기복이 보인다. 열흘 넘게 한 토너먼트에서 버틸 수 있는 뒷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또 “정현은 자기가 몰려다니면서 공을 치는 경향이 짙다. 공 하나하나를 치는 데 모든 체중이 발바닥에 실리는 느낌을 준다. 스플릿 스텝, 사이드 스텝 등 뛰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스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국 NH농협은행 스포츠단 단장도 스텝을 언급했다. 박 단장은 “테니스는 좌우 사이드 스텝 비중이 70~80%를 차지한다. 무빙 동작에서 체중의 2배 이상 압력이 발바닥에 전달된다”며 “정현은 양발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코비치를 보면 준비 동작에서 테니스화가 코트 표면과 마찰하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들을 수 있다. 상대가 공을 임팩트하는 순간 제자리에서 수차례 살짝살짝 점핑해 자세를 잡는 스플릿 스탭 등 다양한 스텝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 최적의 스트로크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또 “무게중심을 낮게 하고 하체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스텝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호주오픈 당시 정현의 아버지인 테니스 감독 출신 정석진 씨는 “현이가 이렇게 장기간 뛰어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현은 시즌 초반 발바닥 문제로 고심하며 라켓 후원사인 요넥스를 통해 특수 깔창을 알아보기도 했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여러 브랜드 신발을 번갈아 신고 있다.

정현의 롤모델 이형택과 주니어 시절 지원에 힘을 쓴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
정현의 롤모델 이형택과 주니어 시절 지원에 힘을 쓴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
●이형택이 말하는 물집

정현에 앞서 한국 테니스의 살아 있는 역사였던 이형택도 물집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수도 없이 많다.

이형택은 “물집이 양쪽 발바닥에 너무 자주 생겼다. 굳은 살을 배게 하려고 일부러 맨발로 코트를 걷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물집이 잘 잡히는 체질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윤)용일이 형(선수 시절 이형택 선배)은 아무리 뛰어도 물집이 잘 생기지 않았다(웃음). 정현도 물집이 잘 생기는 타입 같다”고 말했다.

이형택도 스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텝 연습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ATP에서는 경기 전 쿠션이 있는 패드를 발에 붙이도록 하거나 테이핑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뜨거운 코트 바닥에서 경기 도중 급하게 턴을 하다보면 굳은 살 안쪽으로도 물집이 생기기도 한다.”

물집은 경기력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물집을 의식하다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물집 탓에 평소와 다르게 발바닥을 내딛다 보면 밸런스가 안 좋아진다. 만이 뛰는 선수를 만나거나 클레이코트에선 부담을 더 느낀다.”

그러면서 이형택은 어차피 물집은 생기기 마련인 만큼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예방과 사후 조치에 신경 쓸 필요도 있다고 전했다.


●물집 관리 요령은

이미 발에 굳은살이 있다면 잘 관리해 주어야 물집을 예방할 수 있다. 두꺼운 굳은 살을 좀 깎아서 원래 피부 높이로 낮춰 주고 발이 건조하지 않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추가적인 예방책으로는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운동 할 경우 신던 신발과 적당히 교체해가며 신어서 적응기를 가져야 한다. 신발 끈을 너무 타이트하게 매거나 느슨하게 매지 말고 적당히 매는 것도 중요하다. 마찰과 열을 감소시켜줄 수 있는 재질의 양말을 신는 것도 좋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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