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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와 선수로 만나…장애인아이스하키 이지훈이 아내에게 보내는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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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와 선수로 만나…장애인아이스하키 이지훈이 아내에게 보내는 출사표

김재형기자 입력 2018-03-17 11:47수정 2018-03-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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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장애인 아이스하키 한-일전 승리(4-1) 이후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남편 이지훈(29)에게 키스하는 아내 황선혜 씨(31).
장애인아이스하키 한국과 캐나다의 준결승전이 열렸던 15일 강원 강릉하키센터. 경기 직전 한국 대표팀의 이지훈(29)은 몸을 풀면서 관중석을 확인했다. 지난해 10월 ‘백년가약’을 맺은 아내 황선혜 씨(31)가 있는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신혼의 애뜻함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지훈은 한눈에 뚫어져라 자신을 살피고 있는 아내를 이내 찾아냈다.

이날 한국팀은 캐나다에 0-7로 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한국 대표팀이 경기장을 돌며 관중에게 감사 인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지훈은 자신에게 손으로 하트를 그리는 아내를 발견했다. 스틱을 들어 아내에게 사인을 보냈다. 비록 금·은은 아닐지라도 메달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아직, 17일 동메달 결정전이 남았습니다. 아내, 부모님, 그리고 장모님한테도 꼭 메달 따서 목에 걸어드리기로 했어요. 무조건 메달을 따겠습니다.”

이지훈은 군 복무 중이던 8년 전 21살에 제대를 두 달 앞두고 장갑차에 깔리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한순간에 양쪽 대퇴(넓적다리)부 아래를 절단한 장애인이 된 것이다. 요리사를 꿈꿨던 청년은 처음에는 “내가 왜 살아났을까”라며 좌절했다.

“그렇게 계속 좌절하고만 있으니 더 힘들었어요. 어느 순간 ‘어차피 살 거라면 지금부터라도 즐겁게 살자’라는 생각을 하게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일부러 웃고 더 좋은 생각만 했어요.”

3개월간의 방황을 끝내고 그렇게 일어섰다.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이지훈 오히려 더 밝게 빛났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밝은 에너지는 지금의 아내와 인연을 맺는 다리가 됐다.

이지훈은 아이스하키를 주 종목으로 하면서도 여름 스포츠로 조정을 배웠다. 아내 황선혜 씨는 당시 조정 코치로 이지훈을 가르쳤다. 부상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고교 시절과 20살 초반까지 조정 선수로 활동했던 황선혜 씨다. 그렇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준비를 하던 2016년 여름 일주일간의 합숙기간, 둘은 코치와 선수로 만나 운명처럼 사랑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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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 아내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계속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마음을 표현했죠.”

당시 황선혜 씨는 이지훈을 비롯해 장애인 선수들을 처음 대해봤다. 편견도 있었다. “처음엔 장애인 선수에게 제 나름의 편견이 있었어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뭐 이런. 약간 겁을 먹기도 했죠.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별다를 게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남편은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죠.”

합숙 훈련이 끝나는 날 이지훈은 황선혜 씨에게 고백했다. “당신은 장애인이 아니라서 솔직히 장애인인 저 같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겠지만, 저는 당신이 좋습니다.” 고백을 받고 황선혜 씨가 처음 고민했던 것은 이지훈의 장애가 아니었다.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다만, 연애하다가 혹시 헤어질 수 있잖아요. 만약에 그랬을 때 지훈이가 더 상처를 받을까봐. 그게 걱정이었던 거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저 나름의 편견이었던 것 같아요.”

둘을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은 무거웠다. 황선혜 씨의 부모님은 혹여 딸이 고생하진 않을지, 속앓이를 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병환으로 몸져누워있던 기간에 딸 황선혜 씨가 생계를 책임지며 유년기를 고생스럽게 보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더 완강하게 반대했다. “밥 한 번만 먹어보라”는 딸의 간곡한 요청 끝에 이지훈과의 첫 만남이 성사됐다. 이지훈과 황선혜 씨가 만남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황선혜 씨는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남편은 내가 자는 동안에 빨래도 설거지도 몰래 할 정도로 자상하며 생활력이 강하다. 누구나 혼자는 불완전하다. 남편과 둘이라서 완전한 존재처럼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황선혜 씨는 “남편이 패럴림픽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둘은 4월 하와이로 미뤄뒀던 신혼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이지훈은 당시 아내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러 가던 날을 “무서웠다”고 기억한다. ‘장애인인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온갖 잡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처음 밥을 먹는데 두 분의 표정이 안 좋으신 거에요. 속으로 ‘큰일 났다 어떡하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래서 더 웃고 환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지훈은 “나중에 선혜가 힘들지 않겠나”라는 지금의 장인 어른에게 질문을 받았다. 머리는 멍했지만, 가슴을 더 단단하게 여몄다. “자신 있습니다. 그때는 그때고 선혜 제가 잘 보필 수 있습니다.” 결국 둘은 그 첫 만남에 “예쁘게 만나라”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이지훈의 장인 장모님은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패럴림픽 경기장을 찾아 사위 이지훈을 보며 남들에게 “가문의 영광이다”고 자랑한다. 황선혜 씨에겐 “천사같은 아들이 생겼다”며 고마워한다.

그 사이 황선혜 씨에게 우려를 표하던 지인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둘을 보며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주변의 편견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황선혜 씨는 결혼 이후 남편과 함께 생활하면서 또 한번 그의 강인함을 배웠다. “남편이 집안일을 정말 잘 도와줘요. 제가 자는 사이 건조대에 있던 빨래가 다 정돈 돼 있죠. 강인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입니다.”

지난해 10월 결혼식 당시 이지훈과 황선혜 씨가 주례사를 듣고 있는 모습
정작 이지훈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신혼다운 생활을 못했던 것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결혼 이후 6개월이 지난는 동안 합숙훈련 등으로 집안에 있었던 시간은 채 한 달이 되질 않는다. 신혼 여행도 4월로 미뤘다. 그런 남편에게 황선혜 씨는 “남편이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뛸 수 있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지훈은 그런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17일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 나선다. 아래는 이지훈이 아내 황선혜 씨에게 전하는 짧은 편지 내용이다.

“신혼 초인데 집보다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 때문에 많이 외롭고 힘들었지? 지금까지 잘 참고 이겨내 줘서 너무 고마워. 이제 마지막 한 경기 동메달 결정이 남았어. 자기한테 약속했잖아. 메달따서 목에 걸어주기로! 빙판 위에 전사가 되어서 모든 걸 쏟아붓고 후회 없는 경기하고 갈게! 그리고 꼭 이겨서 메달가지고 갈게.”

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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