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수진]컬링 聖地 의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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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위의 잡티란 잡티는 모조리 쓸어버리겠어, 그런 각오가 느껴진다. 여러모로 보아 역시 이들은 빙판 청소 단체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렇게 미칠 듯이 비질을 하다니.”

최상희 작가의 장편 소설 ‘그냥, 컬링’의 한 대목. 컬링은 4명씩의 두 팀이 빙판에서 둥글고 납작한 돌(스톤)을 미끄러뜨려 표적(하우스) 안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경기다.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필요해 ‘빙판의 체스’로도 불린다. 중세 스코틀랜드의 얼어붙은 호수나 강에서 돌덩이를 미끄러뜨리던 놀이에서 유래했다.

▷대부분 의성여중·고 동문인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세계 1, 2위 캐나다와 스위스에 이어 종주국 영국(4위)을 연파하고 사상 최초로 올림픽 4강에 진출하면서 경북 의성이 ‘컬링의 성지(聖地)’로 뜨고 있다. 인구 5만의 의성은 조선 중기 이래 마늘이 특산품이었다. 부식토가 덮인 땅에서 자란 이곳 마늘은 즙액이 많고 쪽수(6쪽)가 적은 데다 매운맛과 살균력이 강한 것이 특징.

▷여자 컬링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민정 감독의 아버지 김경두 경북과학대 교수(대한컬링연맹 부회장)는 레슬링 선수 생활을 접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중 1990년대 중반 캐나다에서 컬링을 경험한 뒤 고향에 컬링 전용경기장 설립을 제안했다. 이름도 생소했지만 농촌 지자체는 흘려듣지 않았다. 2006년 경기장을 짓고 ‘의성마늘배(杯)’ 전국대회를 만들어 지역 중고교에도 컬링을 보급했다. 2007년 의성여고 1학년이던 김영미(27), 김은정(28)은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고, 의성여중 2학년 김경애(24)는 언니(김영미) 물건을 전해 주러 왔다가 얼떨결에 따라했다. 김선영(25)은 친구 김경애가 교실 칠판에 적은 ‘컬링 할 사람’에 이름을 올린 게 출발점.

▷“야가 막고, 쟈를 치우고” “가라, 언니야”…. 선수들의 강한 경상도 억양도 덩달아 뜨거운 인기다. 뉴욕타임스는 20일 의성 주민들의 체육관 합동응원 현장을 전했다. “갈릭 걸스(Garlic Girls)가 올림픽을 사로잡았다. 대표팀 고향 의성도 사랑에 빠졌다.”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
#평창올림픽#컬링#김민정#김경두#뉴욕타임스#의성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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