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금지약물]단순 약물 복용 넘어 유전자-뇌 도핑시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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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화하는 도핑

벤 존슨이 88 서울 올림픽 육상 남자 100m에서 1위로 들어오고 있다. 당시 그는 9초79로 세계기록을 세웠지만 도핑 테스트 결과 금지약물인 애너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으로 밝혀져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동아일보DB
벤 존슨이 88 서울 올림픽 육상 남자 100m에서 1위로 들어오고 있다. 당시 그는 9초79로 세계기록을 세웠지만 도핑 테스트 결과 금지약물인 애너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으로 밝혀져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동아일보DB
 2000년 미국의 과학 전문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발표된 ‘근육, 유전자 그리고 운동능력’이란 제목의 논문 뒷부분에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2012년 올림픽 남자 육상 100m 종목에 유전자를 조작해 단거리 달리기에 필요한 근섬유를 강화한 선수가 출전한다.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예선에서 적당히 뛴 이 선수는 준결선에서 8초94의 세계신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결선에서 너무 열심히 뛰다가 엄청나게 발달한 대퇴근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슬개골 인대가 끊어지고 만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번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9초63의 기록으로 우승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논문의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밝혀지지 않았을 뿐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금지약물의 시대를 넘어 ‘유전자 도핑’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세계반도핑기구(WADA)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WADA는 이르면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유전자 도핑에 대한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 진화하는 도핑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도핑 검사를 하고 있는 장면. 도핑을 적발하는 반(反)도핑 기술이 발전할수록 선수들이 도핑 사실을 숨기는 방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제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도핑 검사를 하고 있는 장면. 도핑을 적발하는 반(反)도핑 기술이 발전할수록 선수들이 도핑 사실을 숨기는 방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제공
 올림픽 무대에서 도핑이 처음 크게 이슈화된 것은 1960년 로마 올림픽이었다. 대회 첫날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 크누드 에네마르크 옌센이 경기 중 사망했다. 부검 결과 흥분제의 일종인 암페타민 과다 복용이 밝혀졌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의무분과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IOC가 도핑 검사를 처음으로 실시한 건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겨울올림픽이었다. 그해 열린 멕시코시티 여름올림픽 근대5종에서는 처음으로 금지약물 복용으로 실격하는 선수(스웨덴의 한스 군나르 리렌바르)가 나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결선은 가장 많이 얘기되는 도핑 사례다. 당시 캐나다의 벤 존슨은 9초79의 경이로운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하지만 3일 뒤 약물 복용이 드러나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금메달은 2위였던 칼 루이스(미국)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1976년과 1984년 올림픽 남자 400m를 거푸 제패했던 에드윈 모지스는 “벤 존슨이 금메달을 박탈당한 것보다 그 선수만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고 말했다. 루이스를 비롯한 많은 선수도 검사에 걸리지 않았을 뿐 도핑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말이다. 1989년 280명 이상의 옛 동독 선수가 도핑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도핑이 줄어들지 않자 IOC는 1999년 WADA를 설립했다.

 반도핑 기술이 발달할수록 도핑 기술 역시 진화를 거듭해 왔다. 200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베이에어리어연구소(BALCO)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BALCO는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기록(762개)을 갖고 있는 배리 본즈와 육상 스타 매리언 존스 등에게 약물을 제공했다. 이들이 사용한 약물은 도핑 검사에서 적발되기 어렵게 ‘디자인’된 인공 스테로이드였다. 사이클 황제에서 ‘약쟁이’로 전락한 랜스 암스트롱은 자기 몸의 피를 뽑아 보관했다가 경기 직전 수혈하는 ‘금지 방법’으로 도핑 검사를 피했다.

○ 유전자-뇌 도핑의 시대

 최근 들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도핑 방법은 ‘유전자 도핑’이다. 몇 해 전부터 과학자들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새로운 도핑 방법으로 유전자 치료법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유력한 유전자 조작 대상은 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적혈구의 수를 늘리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적혈구생성촉진인자)이다. EPO는 스테로이드와 함께 현대 도핑의 대명사로 꼽힌다. 이 호르몬을 만드는 DNA를 몸속에 넣는 방법으로 유전자 치료를 하면 현재의 약물 도핑 검사로는 발견하기 어렵다. 이미 해외의 몇몇 연구소에서는 원숭이 등 동물 실험을 통해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근력을 향상시킬 가능성도 있다.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한 연구소에서는 쥐의 유전자 하나를 변형시켜 다른 쥐보다 쳇바퀴를 더 빠른 속도로,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마라톤 쥐’를 만들어 냈다.

 유전자 도핑은 아직 한 건도 적발되지 않았지만 WADA는 이미 유전자 도핑을 ‘금지목록 국제표준’에 포함시키고 이를 찾아내기 위한 실험법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준화까지 완성되고 나면 2018 평창 올림픽에서 처음 선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브레인 도핑’ 역시 새로 등장한 방식이다. 브레인 도핑은 뇌를 자극해 운동성과를 높이는 것이다. 사이클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브레인 도핑을 한 선수들이 좀더 빨리 페달을 밟는 것으로 나타났다. WADA는 아직 브레인 도핑을 금지목록에 넣어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브레인 도핑이 선수들의 신체에 해를 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언제든 금지될 수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유전자#뇌도핑#약물 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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