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고 베이는 일은 일상”…환경미화원 작업 현장, 동행 취재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3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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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서광원 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인천 중구 도원역 일대에서 쓰레기 수집·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환경미화원 서광원 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인천 중구 도원역 일대에서 쓰레기 수집·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2일 저녁 9시 인천 중구 도원역 인근의 골목길. 환경미화원 서광원 씨(54)는 이곳에 세워둔 리어카를 끌며 하루 작업을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는 장소는 따로 없다. 집에서 작업복을 입고 나온 그는 작업 도구가 든 작은 가방을 들었다. 리어카를 끌고 빠른 걸음으로 쓰레기봉투를 싣고 내리길 반복했다. 서 씨는 “무게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봉투가 많아 허리를 삐끗하는 일은 늘 있다”고 말했다.

서 씨는 가정과 상점에서 내놓은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 폐기물을 수집해 운반하는 위탁업체의 미화원이다. 전국 환경미화원의 절반 이상(56.2%)이 서 씨처럼 위탁업체 소속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환경미화원 사망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최근 정부는 ‘환경미화원 노동환경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3년 간 사망한 환경미화원 18명 중 16명이 위탁업체 소속이다. 이들이 어떤 작업환경에 노출돼 있는지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환경미화원 서광원 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인천 중구 도원역 일대에서 쓰레기 수집·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환경미화원 서광원 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인천 중구 도원역 일대에서 쓰레기 수집·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넘어지고 베이는 일은 일상

환경미화원의 유형은 낮에 도로를 청소하는 미화원과 서 씨처럼 밤에 쓰레기봉투를 운반하는 미화원 두 가지로 나뉜다. 도로 청소미화원은 오전 5~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며 지방자치단체 소속인 경우가 많다. 비교적 작업 환경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모집 경쟁률도 높다.

반면 쓰레기 운반 미화원은 밤부터 새벽까지 작업한다. 서 씨는 오전 4~5시는 돼야 일이 끝난다. 서 씨는 “‘왜 쓰레기를 안 치워가느냐’는 주민 민원이 있어 토요일 하루를 빼고 주 6일 작업한다”고 말했다.

서 씨는 리어카 작업을 ‘전반전’이라고 설명했다. 5층 이하의 빌라들이 오밀조밀 모인 동네는 골목길이 많아 쓰레기 수거차량이 돌아다니기 어렵다. 전반전은 쓰레기 봉투와 재활용품 등을 수집해 차량이 다니는 큰 길까지 내놓는 일을 뜻한다. 자정 무렵부터 시작하는 후반전에는 모아둔 쓰레기를 차량에 싣는 일을 한다.

500m를 채 돌지 않았음에도 리어카엔 쓰레기들이 꽉꽉 찼다. 쓰레기 봉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작업은 쉴 틈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무게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50L, 100L짜리 봉투도 많았다. 실제로 조개나 굴 껍데기가 가득 들어 악취를 풍기는 봉투는 혼자서는 꿈쩍도 안할 정도로 무거웠다. 서 씨는 “몸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야외에서 작업을 하니 넘어지는 일도 많다. 봉투에 삐져나온 날카로운 물체에 손을 찔리거나 베이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또 다른 미화원 조 모씨(54)는 “차가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이 많은 동네라 올 초엔 빙판길에 미끄러져 등이 까지는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차량에 매달려하는 후반전 작업은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와 쉴 새 없이 맡게 되는 매연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먼지복’이라 부르는 옷을 한 겹 더 입고 파란색 방한용 마스크를 쓴 서 씨는 거점마다 모아둔 쓰레기 봉투를 차량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는 “도로 옆을 지나는 차를 피하려다 엉덩방아를 찧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 씨와 동료들이 올라타는 차량 뒤편 발판엔 안전장치가 따로 없다. 차량이 급하게 회전하거나 출발하면 떨어질 수도 있다.

환경미화원 서광원 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인천 중구 도원역 일대에서 쓰레기 수집·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환경미화원 서광원 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인천 중구 도원역 일대에서 쓰레기 수집·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정부는 근무환경 개선 약속

실제로 넘어지고 떨어지는 일은 이들에게 가장 자주 일어나는 부상이다. 2015~2017년 3년간 산업재해를 입은 환경미화원 1822명 중 넘어지거나 떨어진 경우가 35.5%(646명)를 차지했다. 야외작업 중 뇌실혈관질환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경우가 15.3%(279명), 도로교통사고가 11.3%(205명)로 나타났다.

한 해 평균 600여명의 환경미화원이 산재를 당하고 있지만 환경미화원들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위탁업체에서 공상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재 처리를 하게 되면 산재가 난 사업장으로 분류 돼 근로감독을 받을 수 있고 보험료도 올라간다. 공상처리는 적은 금액으로도 합의가 가능하다. 서 씨의 동료 A 씨도 다리 골절상을 당했지만 산재 신청을 하지 못했다.

환경미화원들을 보호해줄 안전장치도 미흡하다. 매연이나 미세먼지에 늘 노출돼 있지만 서 씨가 받은 것은 한 달에 미세먼지 차단 기능이 없는 방한용 마스크 10개가 전부다. 장갑도 하루 일하면 땀으로 다 젖어버리지만 한 달에 20개만 지급된다. 탈의실이나 샤워실 등이 갖춰진 휴게 공간도 없다. 1시간 작업 뒤 서 씨는 땅바닥에 앉아 5분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다.

지난해 11월 위탁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차에 치여 사망하고, 올해 2월에도 청소차량 컨테이너 교체 작업 중 유압장비에 끼여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8월 “우리는 환경미화원들을 위험과 혹사와 무관심에 방치하고 있다”며 노동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현재 38% 수준인 주간 근무 비율을 50%까지 높이고 청소차 후방 카메라와 같은 안전장치 설치, 기본급 인상 등이 주요 대책이다. 행정안전부는 14명의 위원이 참여하는 ‘환경미화원 근무환경 개선협의회’를 꾸렸다. 고용노동부는 이달부터 환경미화 사업장 110개소를 대상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기획 감독에 들어갔다.

서 씨는 임금 인상보다도 근로 환경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돈을 더 벌어도 지금과 같은 근로환경이면 무의미해요.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이 일하다보니 점점 외톨이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답게 살고 싶은 게 우리의 소망입니다.”

인천=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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