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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한일청구권협정의 피해자, 가해자, 수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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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한일청구권협정의 피해자, 가해자, 수혜자

서영아 도쿄 특파원 입력 2018-11-09 03:00수정 2018-11-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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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지난달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간에 격랑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고노 다로 외상이 앞장서서 나날이 발언 수위를 높여가며 국제사회에 ‘부당함’을 호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국에선 7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 일본 정치인의 과격 발언에 우려를 표하고 “사법부 판단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게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논평했다.

70여 년 전의 강제징용, 50여 년 전의 한일청구권협정을 둘러싼 논의는 역사와 정치, 법리가 뒤얽혀 웬만한 사람은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다. 따라서 감정논쟁은 일단 접어두고, 몇 가지 핵심 ‘팩트’를 먼저 점검해 보자. 그래야 우리의 대응 수준과 방법도 가늠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지만 국가에 의해 국민의 권리가 지켜진다는 외교보호권은 소멸했다”는 것이다. 2013년 11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상이 국회에서 “한일청구권과 경제협력협정하에서 개인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협정에 기초해 개인 청구권은 법적으로는 구제할 수 없게 된다”고 답변했다. ‘강제징용 보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결론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 청구권의 존재는 일본 정부도 인정하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의 추산에 따르면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한 뒤 한반도에 남기고 간 재산은 당시 화폐로 46억8300만 달러 상당. 이승만 정권은 귀속재산관리법을 만들어 ‘적산’이라 불리던 이 재산을 대부분 민간에 불하했다. 이때 수혜를 입어 성장한 대기업이 적지 않다. 한일 간 수교 협의가 시작되자 이 재산을 찾겠다고 나서는 일본인이 적지 않았지만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그 권리는 사라졌다.

#1965년 보상과 배상 문제로 국교정상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박정희 정권은 “5억 달러를 일괄해서 정부에 주면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 돈은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 국내 인프라 건설로 돌려져 ‘한강의 기적’의 종잣돈이 됐다. 당시 한국의 1년 국가 예산은 3억 달러 정도였다.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는 배상해주면서 한국만 차별한다고 한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는 ‘이덕보원(以德報怨·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차원에서 청구권을 포기했다. 개인 청구권을 정부가 떠맡아 해결하겠다는 협정은 맺지 않았다. 지금 중국인 징용피해자들의 소송에 일본 기업들이 화해의 자세로 나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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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2005년 청구권협정의 효력을 재검토해 강제징용 피해자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었다고 정리했다. 이후 정부는 2015년까지 7만여 건에 대해 최대 2000만 원까지의 보상금 지급을 완료했다. 이를 아는 일본에선 “이번 판결도 ‘위안부 합의 부인’과 같은 맥락의 ‘일본 무시’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우리로선 ‘가해자인 일본이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라는 인식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지만 “‘미운 일본’이 떠드는 말은 다 헛소리”라고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다 보면 ‘팩트’에 기반한 제대로 된 대응책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 그 피해는 교류 협력하는 양국 국민에게 간다. 우선 고국을 떠나 일본에서 취업한 한국 젊은이들이 혐한(嫌韓) 분위기에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만일 당신이 협정의 가해자나 수혜자라면 피해자들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 것인지, 한일 관계 악화의 ‘선의의 피해’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를 차분히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한일청구권협정#강제징용 배상 판결#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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