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중학교 빈교실에 보육시설… “철없던 학생들이 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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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달라진다]도쿄 기누타미나미中 ‘공존’현장

12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 구립 기누타미나미 중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찾은 기자를 보자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학생들은
 “어린이집 아기들이 너무 귀엽다”고 말했다(맨 위쪽 사진). 중학교 안에 마련된 어린이집은 별도의 교문을 통해 등하교하고 운동장에도
 펜스를 쳐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0∼2세 영아들이 생활하는 이 어린이집은 올해 세타가야구 내 
157개 중 ‘보호자 평판이 좋은 어린이집’ 1위로 뽑혔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12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 구립 기누타미나미 중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찾은 기자를 보자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학생들은 “어린이집 아기들이 너무 귀엽다”고 말했다(맨 위쪽 사진). 중학교 안에 마련된 어린이집은 별도의 교문을 통해 등하교하고 운동장에도 펜스를 쳐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0∼2세 영아들이 생활하는 이 어린이집은 올해 세타가야구 내 157개 중 ‘보호자 평판이 좋은 어린이집’ 1위로 뽑혔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도쿄 세타가야(世田谷) 구립 기누타미나미(砧南) 중학교는 전철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12일 오후 3시경. 하교 시간대 학교 안은 떠들썩한 활기로 가득했다. 교실마다 청소하는 학생들 사이로 삼삼오오 합창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20일 열리는 학예발표회를 앞두고 한 교실에서는 책걸상을 한구석에 밀어놓고 고토(가야금) 연주 연습이 한창이었다. 누군가가 지나가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사실 이 학교는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1977년 전교생 532명으로 문을 열어 1980년 863명까지 학생 수가 늘었지만 그 뒤 학생이 급감해 1997년에는 280명대로 내려앉았다. 학교의 활력은 떨어졌고 빈 교실은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당시 지역 내 영아들을 위한 어린이집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도시로 이주하는 인구가 많은 데다 여성들의 취업도 갈수록 늘어 도쿄는 늘 유치원과 보육시설이 부족한 상태다. 기누타미나미 중학교 인근 어린이집 시설 역시 입소 대기 아동이 한 해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 중학교에 어린이집 들어온 뒤 학생 수 늘어

세타가야구는 2001년 이 학교의 빈 교실을 활용해 어린이집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저출산 고령화 역사가 오래된 일본은 ‘학교는 공공재이며 주민과 학생이 함께 활용하는 것이고 필요 시 통폐합도 가능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1960년대 평생교육법 도입에 따라 일찍이 학교에 지역주민과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결합한 덕도 크다.

지자체와 학교는 건물 1층 모퉁이 교실 2개를 터서 어린이집 공간으로 만들었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운동장 한쪽에 펜스를 쳐 공간을 구분했다. 중학생들이 야구 축구 등을 하다 어린이집 쪽으로 공이 날아올 것에 대비해 위쪽에 그물망도 쳤다. 별도의 출입문을 만들어 영아들은 따로 등하교한다.

어린이집 운영은 민간업자를 모집한 후 선정해서 맡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린이집에는 현재 만 0∼2세 영아 30여 명이 하루 13시간, 직원 20여 명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한다.

“본래 중학생들이 천방지축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린이집이 들어온 뒤 부쩍 어른스러워졌어요. 약자에 대한 배려 같은 걸 몸으로 배우는 것 같습니다.”

야마다 노리오 교감은 교내에 어린이집이 들어오면서 장점이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직업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어린이집 교사 체험 희망자가 가장 많다. 졸업생 중 네모토 유스케 씨(25)는 아예 어린이집 교사가 돼 지난해까지 이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복도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어린이집이 있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귀엽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야마다 교감은 “어린이집 입소 후 중학생들이 원아들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어린이집이 들어온 뒤 중학교도 학생 수가 늘어 지금은 12개 학급 408명이 재학 중”이라고 했다.

“단점이라면 소음 정도일까요. 어린이집과 가까운 교실은 아기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는 위층 중학생들의 책걸상 끄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젠 모두 익숙해져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요.”


○ 일본 내 7만9200개 빈 교실 다른 용도로 활용

어린이집 안은 기거나 아장아장 걷는 0세아 반과 1∼2세아 반으로 나뉘어 있고 조리실, 화장실, 쉼터 등도 마련돼 있다. 게시판에는 중학생들과 아기들이 함께한 사진이 가득했다. 히라노 히로코 어린이집 원장은 “학교와 같이 있으니 자원봉사나 직업실습을 오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이 어린이집은 올해 세타가야구 내 157개 중 ‘보호자 평판이 좋은 어린이집’ 1위로 뽑히기도 했다.

평소에는 중학생과 원아들이 각각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지만 운동회 날만큼은 함께한다. 중학생과 원아들이 함께하는 ‘앙팡맨(호빵맨) 댄스’, ‘함께 달리기 코너’ 등이 마련되어 있다. 중학생들은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 원아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한다. 두 살짜리 동생이 어린이집 원아인 중학교 2학년생 야마모토 아유미 양은 지난 여름방학에 일주일 동안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마침 두 살 딸아이를 찾으러 온 한 보호자(33)는 “아이들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좋아한다”며 “합창 소리 같은 것이 뇌에 자극을 주고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근처 학교 교직원이라는 이 보호자는 아이가 8개월 때부터 이 어린이집을 다녔다며 만 3세가 되면 어린이집을 떠나야 해 서운하다고 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1993년부터 학교 내 빈 교실 실태조사를 시작해 지역사회 교육시설이나 아동 사회복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2017년 조사에서는 8만400여 개의 빈 교실 중 7만9200개가 각기 다른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학교#빈교실#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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