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에 몸살앓는 지구촌… 기상예보, 전문가-대중 ‘온도차’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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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는 원인-결과 다른 복잡계”… 일부선 ‘침묵의 나선’으로 설명도
국내 연구진 ‘완벽한 예보’ 위해 수치 정보 분석해 한계극복 도전

전 세계가 소위 ‘극한기상 현상’으로 3개월째 몸살을 앓고 있다. 7, 8월 지구 곳곳을 달궜던 사상 최악의 폭염이 지나가기 무섭게 지구 곳곳에서 강한 태풍이 큰비와 바람 피해를 냈다. 이달 초에는 태풍 제비가 일본에, 지난 주말에는 태풍 망쿳이 필리핀과 홍콩을 강타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동부를 덮쳐 홍수와 함께 3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한국 역시 8월 중순 강력한 태풍 솔릭이 북상하면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태풍이나 폭염, 폭우 등을 정확히 예측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극한기상은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 기상과학 연구의 ‘허브’인 미국해양대기청(NOAA)의 태풍 전문가 제임스 코신 연구원은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매우 느렸던 플로렌스와 매우 강했던 망쿳 등은 극한기상 현상의 전형적 사례”라며 “이런 현상은 평균적인 기상에 초점을 맞춘 기존 기상 예측 모형으로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코신 박사는 과거 68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태풍과 사이클론, 허리케인 등 열대성 저기압 5785건의 움직임과 위력을 분석해 “열대성 저기압의 이동 속도가 과거에 비해 최대 30%까지 느려져 비 피해가 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올해 6월 학술지 ‘네이처’에 내 주목을 받았다.

극한 현상이 아니더라도 기상 및 기후는 이미 예측이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는 분야다. ‘원인’과 ‘결과’가 도무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는 불가사의한 특성 때문이다. 일명 ‘복잡계’다. 복잡계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원인이 현상에 관여하고 있어 ‘A면 B’ 식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딱 떨어지지 않고 변수가 많다 보니 복잡계 과학에서는 장기적인 미래 예측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본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모든 데이터를 촘촘히 수집해 시뮬레이션한다면 이론상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며 “기상 과학자들은 장기적인 예측 불가능성을 잘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예측을 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수집해 가공하고 계산하고 있다. 복잡계 물리학자로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도 “다양한 변수를 다루는 모델을 쓰고 실시간 관측 데이터를 늘리는 등 기상 예측 모델도 변하고 있다”며 “여전히 근원적인 비예측성(예측 불가능성)이 있지만 최근에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연구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상 현상을 예측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세계에서 8번째로 자체 수치예보 모델을 만들고 있는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한수예)의 홍성유 단장은 데이터와 계산 모형을 통해 “선진국 수준의 기상 예보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수치예보는 전 세계에서 위성이나 항공기, 레이더 등으로 수집한 여러 가지 기상 자료를 격자 형태의 가상 공간에 배치한 뒤 분석하는 기술이다.

잔잔한 실내에 촛불 하나를 피우고 연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보려 해도 공기의 흐름, 온도 분포, 실내 공간의 형태, 사람의 움직임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간을 가로, 세로, 높이 각각 10cm 단위로 끊어서 연기의 움직임을 추적할 것인지, 1cm 단위로 추적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정확도가 달라진다. 이런 과정을 방 하나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게 수치예보 모델이다.

한수예는 약 1억 개의 자료를 모은 뒤 전 세계를 한 층에 560만 개의 ‘방(격자)’을 지닌 91층 건물 모양의 3차원 공간에 배치하고 그 움직임과 특성을 분석해 예보를 한다. 현재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돼 기상청에서 기존에 운영하던 영국 개발 수치예보 모델과 병행 운영하며 성능 점검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예측이 어렵다 보니 완벽한 예보를 원하는 대중과 전문가 사이의 온도차도 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실제 기상 예측은 늘 불확실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태풍 솔릭 때처럼 예측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곧바로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이뤄지는 소통을 물리학을 통해 연구하는 차미영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이 현상을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했다. 특정 의견이 다수 사람에게 인정되고 있을 때 반대의 소수 의견을 지닌 사람이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차 교수는 “만약 ‘기상청이 대부분 정확한 보도를 할 때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겨 칭찬을 하지 않는다’와 ‘오보를 할 때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공적 공간에서 비판적, 자조적 글로 불만을 토로한다’라는 두 가정이 통하는 상황이라면 비판적, 자조적 글에 대한 침묵의 나선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전체의 일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공적 공간에 글을 쓰기에 글만 보면 기상청이 예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예보에 대한 별다른 의견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소수자라 느끼고 침묵하게 된다.

김승환 교수는 “대중은 불확실하고 비예측적인 자연과 미래의 모습에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고, 현안에 대해 좀 더 ‘확실한’ 답을 과학자들에게 기대한다”며 “대중과 전문가 사이의 온도차를 줄이려면 대중의 과학적 소양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과학자들도 직접 소통에 더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상과 기후의 근원적인 비예측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예측 가능한 영역을 넓히려는 전문가들의 노력을 (대중도) 응원하고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극한기상 현상#태풍#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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