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야간군수실 운영… 주민 1만8000여명 민원 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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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석 부산 기장군수 인터뷰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에게 주민 한 분 한 분은 만리장성보다 더 소중하다. 주민은 곧 
하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2018 기장형 애자일 거버먼트 프로젝트’로 제4차 행정혁명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기장군 제공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에게 주민 한 분 한 분은 만리장성보다 더 소중하다. 주민은 곧 하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2018 기장형 애자일 거버먼트 프로젝트’로 제4차 행정혁명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기장군 제공
13일 오전 9시 부산 기장군청 군수실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3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 하나 없었다. “목민심서에 ‘백성을 사랑하는 길은 목민관이 절용(節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절용과 실용(實用)은 큰 덕목입니다.”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60)는 여름 내내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현장 행정을 하다 보니 군수실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그 대신 군청 각 사무실은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철저히 배려한다.

○ 주민을 두려워하는 현장 목민관

오규석 기장군수가 매일매일 민원 현장의 이야기를 비롯해 군정을 기록하고 있는 ‘군수 일기’. 기장군 제공
오규석 기장군수가 매일매일 민원 현장의 이야기를 비롯해 군정을 기록하고 있는 ‘군수 일기’. 기장군 제공
오 군수는 초등학교 교사, 한의사 출신의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현장 위주의 행정가이자 정치인이다.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1995년 지방선거 당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린 군수(36세)였다.

그는 6·13지방선거에서 보수 텃밭과 더불어민주당의 거센 바람을 물리치고 무소속으로 3선을 일궈냈다. 1995년 지방선거까지 합하면 4선이다. 5명이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그는 3만2248표로 득표율 43.2%를 기록했다. 2위 후보를 11.7%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그는 4년 전처럼 자신의 아파트를 선거사무실로, 회계 책임자 한 명으로 ‘뚜벅이’ 선거전을 펼쳤다.

“오전 4시 50분 집에서 나와 밤 12시까지 유권자들을 만났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는 곳이 곧 선거사무실이었습니다.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군민들이 지난 8년간 저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줄지가 제일 두려웠습니다. 민심은 호랑이입니다.”

그의 이번 선거비용 사용액은 3342만 원. 2014년 단독 후보로 출마한 지역을 빼고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가장 적은 선거비용을 사용한 것보다 228만 원이 더 줄었다.

그는 겸청(兼聽)했기 때문에 무소속으로 3선이 가능했다고 자평했다. “중국 당 태종 때 위징(魏徵)이란 재상이 강조한 겸청은 ‘두루 듣는다’는 뜻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偏信) 않고 힘없는 사람과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었습니다.”

○ 기장발 행정혁명 ‘애자일 프로젝트’

오 군수는 그동안의 지방행정을 거울삼아 기장발 행정혁명을 추진한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라면 행정에서 4차 혁명을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취임 일성으로 내건 4차 행정혁명은 ‘2018 기장형 애자일 거버먼트 프로젝트(Agile Government Project)’다. 그는 1차 행정혁명을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2차는 1960, 70년대 산업화 시대, 3차는 1987년 6·10민주항쟁 이후로 분류했다.

“4차 행정혁명은 지방화입니다. 지방자치의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동안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일방통행이었지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에 초점을 맞추고 수요자(주민)와 함께 호흡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애자일의 사전적인 의미는 재빠른, 이해가 빠른 등이지만 사업을 할 때 한 번에 다하는 것이 아니라 10% 정도 해보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진행할지 말지를 판단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로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 분야에 쓰이는 말이다.

오 군수는 모든 정책과 사업의 초기 단계부터 지역주민, 전문가단체, 이해관계자, 관련 부서 등과 대화하고 협업해서 문제를 최소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피드백, 주민 참여, 현장, 공유, 공동 의사 결정, 저비용, 고효율, 실용, 절용 등으로 압축된다.

그가 애자일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 것은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한 세대를 넘기고 있지만 변한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에게 주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당리당략, 계파 및 정파적 이기주의뿐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랬고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보 시절에는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제를 안 한다고 했지요.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입을 닫았지요. 기초에는 정치가 배제돼야 합니다. 모든 건 주민이 우선입니다. 그게 풀뿌리민주주의이고 지방자치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오 군수는 지방의 현안을 놓고 국회의원이나 각 정당에서 싸우는 행태가 지방자치를 가로막는 ‘고물정치’의 전형이라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 “주민이 곧 하늘이다”

오 군수는 기장의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산업단지’를 1순위 사업으로 꼽았다.

장안읍 좌동리와 반룡리 일원 147만9000m²에 조성되고 있는 이 단지에는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치료센터, 수출용 신형 연구로, 방사성 동위원소 융합연구원이 들어와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발돋움한다. 2020년 조성이 완료되면 고용 유발 효과만 2만1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가 민선 5기인 2010년부터 야간군수실을 운영해 만난 주민은 1만8000여 명에 이른다. 야간군수실은 주민들로부터 365일 어느 때나 민원을 듣기 위해 마련했다. 업무용 차량으로 이동한 거리는 하루 평균 272km, 민원을 기록한 현장 수첩은 68권이나 된다. 짙은 청색 동·하복 작업복 10벌이 그의 사철 근무복이다. 집무실에는 구두 대신 운동화 8켤레와 장화 2켤레가 항상 비치돼 있다.

매일 ‘군수 일기’를 쓰는 그는 1995년 9월 23일 “태풍 라이언이 온다. 밤을 군수실에서 새워야 한다. 제발 태풍이 풍년에 들뜬 우리의 농심(農心)을 비켜가기를…”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집무실 책상 앞에 걸린 ‘인현장성(人賢長城)’ 액자에 대해 뜻을 묻자 오 군수는 “주민 한 분 한 분이 만리장성보다 더 소중하다는 뜻”이라며 “주민은 곧 하늘이다”라고 말했다.

기장=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야간군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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