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이기주의, 세금으로 해결 말이 되나” 국민이 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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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신도시 ‘실버택배’ 거센 반발

이런 골목길도 택배 배송하는데… 1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비좁은 골목에서 택배기사가 박스 3개를 나르고 있다. 골목이 좁아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주택가에선 물품 하나를 배송하는 데 30분이 걸리기도 한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이런 골목길도 택배 배송하는데… 1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비좁은 골목에서 택배기사가 박스 3개를 나르고 있다. 골목이 좁아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주택가에선 물품 하나를 배송하는 데 30분이 걸리기도 한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불거진 ‘택배 분쟁’의 후폭풍이 거세다.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를 내세운 다산신도시 한 아파트에서는 지난달 7일 한 어린이가 택배차량에 치일 뻔했다. 입주민들은 택배차량의 단지 진입을 막고 택배기사에게 손수레로 배송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택배회사들이 물품을 단지 입구에 내려놓고 가면서 이른바 ‘택배 갑질’ 논란이 시작됐다.

하지만 17일 국토교통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실버택배’는 이해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실버택배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이뤄지는 배송을 65세 이상 노인들이 맡도록 한 것. 노인복지를 위해 실버택배를 도입한 다른 지역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누리꾼과 시민들은 “이기주의적 행태를 세금으로 해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한다. 차라리 택배 배송이 어려운 낡은 주택가에 먼저 실버택배를 도입하라는 의견도 나온다.

○ “입주민 돈으로 해결” 청원 190여 건

국토부는 다산신도시 해당 아파트 주민 및 택배회사와 협의한 뒤 실버택배를 결정했다.

문제는 2개월 후 실버택배가 시행돼도 입주민의 추가 부담 비용이 없다는 점이다. 실버택배 인건비는 택배회사가 건당 550원, 정부가 1인당 210만 원(1년 기준)을 지급한다. 택배회사가 80%가량을, 정부가 나머지를 부담하는 셈이다.

온라인에선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부터 이틀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아파트의 실버택배 도입을 반대하는 청원이 190건 넘게 올라왔다. “실버택배 비용을 입주민 관리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청원에는 18일 오후 19만 명 이상이 찬성했다.

이 아파트 주민이 쓴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도 반대 움직임을 부추겼다. 17일 오후 해당 지역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듯한 게시물에는 “다산이 이겼다. (실버택배는) 입주민이 뭉쳐서 이루어 낸 쾌거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글은 논란이 커지자 얼마 뒤 삭제됐다. 국토부는 “향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실버택배 서비스를 받는 주민이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반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 배송 더 어려운 곳도 많은데…

18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의 왕복 2차로에 택배차량 2대가 서 있었다. 택배기사들은 짐칸에서 물건을 꺼내 도로에서 이어진 골목길 안쪽으로 들고 들어갔다. 이 동네 골목길은 대부분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다. 차를 돌려 나오기도 쉽지 않고 주차 차량도 많아 길 한가운데서 꼼짝 못 하는 경우도 있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택배기사들은 아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걸어서 물건을 나르면 1개 배송에 20∼30분이 걸리곤 한다. 기피 지역이다. 택배기사 이모 씨(45)는 “근처 전통시장 쪽 주택가는 여기보다 골목이 더 좁다. 택배기사들 모두 배송 가기를 꺼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지역은 주변에 많다. 대부분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오래된 주택가다. 누리꾼들은 이런 곳에 실버택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버택배는 2007년 노인일자리 확대 사업으로 도입됐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88개 아파트 단지에서 노인 2066명이 일한다.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는 구청과 지역 시니어클럽의 요청으로 실버택배를 도입했다. 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만 매달 1만 건 이상 택배를 배송한다. 주민 불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신도시의 새 아파트보다는 낡은 주택가의 정책적 수요가 더 크다.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해 필요한 지역부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운 easy@donga.com·황성호 기자
#다산신도시#실버택배#세금#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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