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조원 퇴직연금… 年 수익률 1.88% ‘쥐꼬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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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흔들리는 퇴직연금

50대 후반 직장인 김모 씨는 요즘 퇴직연금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민다. 2006년 가입해 2015년 2월 말 확정기여(DC)형으로 갈아탄 연금의 누적수익률을 최근 확인한 결과 7%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퇴직연금에 신경을 많이 쓴 직장 후배의 높은 수익률을 보고 뒤늦게 스스로를 탓하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씨처럼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너무 낮아 불만을 표시하는 가입자들이 적잖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168조 원의 연간 수익률은 1.88%에 불과했다. 전년(1.58%)보다 상승했지만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였던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및 개인연금과 함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3층 구조의 한 축이다. 그러나 가입자들로서는 퇴직연금 제도 자체가 어려운 데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상품의 종류도 다양하고 구조도 복잡해 제대로 관리하기도 힘들다. 수익률을 높이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몰라 답답할 때가 많다.

○ DB형… 보수적 운용으로 수익률 낮아

확정급여(DB)형은 가입자가 받을 퇴직급여가 확정된 제도로 기존 퇴직금처럼 근속기간 1년에 대해 30일분의 평균임금을 받는다. 회사는 매년 부담금을 금융기관에 적립해 운용하기 때문에 회사 부도 상황에서도 퇴직금을 떼일 염려는 없다. 적립금 운용의 주체는 회사이기 때문에 가입자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DB형은 수익률이 지나치게 낮다는 게 단점. 지난해 DB형 퇴직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1.59%. 전년(1.68%)보다 오히려 0.09%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정기예금 금리 1.6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굳이 DB형으로 운용할 필요 없이 은행에 맡겨두는 게 나은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법하다.

지난해 말 기준 DB형 적립금 규모는 110조9000억 원. 이 중 94.6%인 104조9000억 원이 예·적금이나 보험상품 등 원리금보장형에 투자됐다. 반면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 비중은 3.5%인 3조8000억 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수익률은 실적배당형이 5.54%로 원리금보장형(1.48%)보다 훨씬 높다.

DB형의 낮은 수익률 개선을 위해선 윈리금보장형에 편중된 투자 행태를 바꿔야 하지만 걸림돌도 있다. 민주영 키움투자자산운용 퇴직연금컨설팅팀장은 “회사의 DB형 담당 직원으로서는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했다가 자칫 손실이라도 나면 문책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데 그 위험을 감수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투자원칙보고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펀드 평가회사 KG제로인 연금연구소 김성일 소장은 “적립금을 누구 책임하에 어떻게 운용한다는 내용의 투자원칙보고서를 사전에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적립금을 운용하도록 해야 지금 같은 보수적인 운용 행태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DC형… 스스로 금융지식 쌓아야

DC형은 회사가 납부할 부담금이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로 확정된 제도를 말한다. 회사는 퇴직연금 운용을 관리해주기로 계약을 맺은 금융기관(퇴직연금사업자)에 개설한 가입자의 개별 계좌에 부담금을 불입하고 가입자가 자기 책임 아래 적립금을 운용한다. 가입자가 다른 직장으로 이직할 경우 그때까지의 적립금을 이전받는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정 역시 가입자 스스로 운용해야 한다.

DC형은 가입자가 잘만 운용하면 DB형보다 훨씬 큰 운용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KB국민은행 퇴직연금사업부 정유정 팀장은 “대기업 직원들을 상대로 퇴직연금 교육을 하다보면 DC형에 가입해 놓고도 퇴직연금은 은퇴자금이기 때문에 정기예금으로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고 소개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DC형(기업형IRP 포함) 퇴직연금 적립금 42조3000억 원 가운데 78.7%인 33조3000억 원이 원리금보장형에 투자됐다. DC형 수익률은 원리금보장형이 1.63%, 실적배당형이 7.11%이다. 수익률을 높이려면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DC형 가입자들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스스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법적으로는 회사가 1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가입자 교육을 하도록 돼 있으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 김성일 소장은 “실적배당형 상품을 실제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도 퇴직연금 전용 펀드 출시 등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대 경제학과 김대환 교수는 “라이프사이클 펀드 활성화나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해 수익률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기금형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이프사이클 펀드란 나이가 들수록 안전자산 투자 비중을 자동으로 높여주는 펀드로, 국내에서도 2016년부터 출시되고 있다.

디폴트옵션 제도란 가입자의 운용 지시 없이도 금융사가 사전에 결정된 운용 방법으로 투자 상품을 자동으로 선정, 운용하는 제도. 북미와 호주 등에서는 DC형 퇴직연금 상품으로 널리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우리 실정에서는 아직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기금형 제도란 회사로부터 독립적인 수탁법인을 설립해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구조다. 현재의 계약형 제도는 회사가 직접 퇴직연금사업자와 운용 및 자산관리 계약을 체결해 운영하는 구조다. 기금형에서는 수탁법인 내외부의 자산운용 전문가에게 기금 운용을 위탁할 수 있어 수익률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수탁법인 운용 등을 위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정부도 기금형 제도를 도입해 노사가 상황에 맞게 계약형 제도와 기금형 제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금형 제도 도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 만큼 퇴직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보험연구원 류건식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운용과 관련해 은행과 보험사, 증권회사,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회사, 심지어는 정책 당국의 책임까지 엄격히 규정한 미국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고 말했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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