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친고죄 폐지前 성범죄는 처벌할 방법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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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져나온 #미투 번지는 분노]가해자들 수사-처벌 가능할까

“치밀하게 계산된 사과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의 성범죄 의혹을 조사 중인 경찰 관계자가 22일 내린 판단이다. 그동안 제기된 여러 폭로 내용과 19일 열린 기자회견 때 이 전 감독의 말을 분석한 결과다.

이 전 감독은 “법적 책임을 지겠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형사처벌은 쉽지 않다. 너무 오래된 일인 탓이다.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감수하며 실명까지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이 전 감독의 처벌은 고사하고 수사조차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피해 여성들이 이 전 감독의 성폭력을 폭로한 시기는 2000∼2012년. 2013년 6월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이다. 이전에 발생한 성범죄는 친고죄 사안이다. 친고죄는 피해자가 직접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성범죄는 피해자가 범죄를 인지한 지 1년 안에 신고해야 수사가 가능하다. 이 전 감독에게 성범죄를 당했다고 폭로한 여성들은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았다. 성범죄 공소시효(10년)가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현재로선 이 전 감독을 형사처벌할 방법이 막혀 있다.

2001년 여름 여배우 김보리(가명) 씨를 밀양연극촌 인근 천막에서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하용부 전 밀양연극촌장(63)도 같은 상황이다. 2002∼2003년 제자였던 황이선 연출가를 성추행한 것으로 지목된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78) 등도 현재로선 처벌 방안이 없다. 경찰 수사도 실익이 없다.

다만 2013년 6월 이후 발생한 성범죄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찰도 폭로 내용을 볼 때 추가 성범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수많은 미투 폭로 글 중에서 시기가 특정되지 않은 사건 가운데 2013년 6월 이후 사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경찰이 직접 피해자를 선제적으로 찾아 나서면 성범죄 특성상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숨겨진 피해자나 지인들의 제보를 기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이 결정적 증거이기에 피해자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전 감독 외에 다른 문화예술인에 대한 성범죄 폭로 중에서도 형사처벌 대상을 가리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22일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50)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입건하고 곧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조 대표가 2007∼2008년 당시 중학생이던 김모 씨(25) 등 미성년 여제자 2명을 성폭행·성추행했다는 피해자 진술을 확보했다.

이 전 감독 등과 달리 경찰이 조 대표를 수사할 수 있는 건 미성년자 성범죄의 경우 친고죄가 2008년 2월 폐지됐기 때문이다.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는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점부터 공소시효(10년)가 적용돼 성인이 된 지 6년이 지난 김 씨 등의 사례는 지금도 공소시효가 유효하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조 대표는 2007년에도 김 씨 등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피해자 진술이 나왔지만 당시 범죄는 친고죄 사안이라 처벌받지 않는다.

모교인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수차례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탤런트 조민기 씨(53)도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은 조 씨가 2013년 자신의 오피스텔로 여제자 2명을 불러 술을 마신 뒤 억지로 침대에 눕히고 성추행했고, 2014년 노래방에서 여제자에게 억지로 뽀뽀를 했다는 청주대 학생들의 폭로 글이 신빙성 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 씨의 성범죄가 친고죄 폐지(2013년 6월) 후에 벌어졌다면 피해 진술을 확보해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조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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