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남편 4년새 50%↑… 정자기증 지침 없어 음성거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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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배우자 정자-난자 임신시술 실태]

2007년 방송인 허수경 씨가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유명 인사의 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연 분만건수가 40만 건 아래로 떨어진 지금 비(非)배우자의 정자나 난자로 임신시술을 받는 건수가 1000건을 넘어서 더 이상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비배우자의 정자·난자를 이용한 시술이 늘어난 건 난임환자의 증가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임·불임 진료 인원은 2012년에 비해 14.8% 증가했다. 체외수정(시험관) 시술 건수 역시 3년간(2013∼2015년) 30% 이상 늘었다. 비배우자 간 시술의 증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남성 난임의 증가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포털 사이트 육아카페에선 남편의 무(無)정자증으로 인해 타인 정자를 기증받았음을 암시하는 글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결혼 1년 차에 난임 병원을 찾은 A 씨는 신랑이 무정자증이라 임신을 하려면 비배우자 시술밖에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1년 넘게 고민하다가 결국 비배우자 정자를 기증받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불규칙한 생리 때문에 난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줄 알았던 B 씨(33)는 올해 초 자궁내막증 검사를 앞두고 남편(38)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가 원인이 무정자증인 남편에게 있음을 알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진료실을 나온 남편의 얼굴을 보고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는 B 씨는 비배우자 정자시술 병원을 예약했다.

2012∼2016년 국민건강보험 집계 난임·불임환자 진료인원 자료에 따르면 여성 환자는 2012년 15만485명에서 2016년 15만7186명으로 4년간 4.5%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남성 환자는 2012년 4만1442명에서 2016년 6만3114명으로 같은 기간 52.3%나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남성 난임 진료 자체가 늘어났고, 오래 앉아 있는 근무환경과 비만, 스트레스 등을 남성 환자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김재명 세화병원 난임의학연구소장은 “보통 남성 난임 환자의 20∼30%가 정자 형성 장애와 무정자증 환자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복지부 비배우자 간 시술 통계에서도 정자시술이 전체의 62.7%를 차지했다.

비배우자 간 임신시술은 일반 난임시술에 비해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공식 집계된 통계 외에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시술을 합하면 한 해 비배우자 간 시술로 태어나는 출생아 수가 1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연구부장은 “낙태건수 추정치도 20만에서 100만을 왔다 갔다 하는데 비배우자 간 임신시술 건수도 공식 집계가 전부는 아닐 것”이라며 “혈연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공식 신고하지 않는 시술이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추세에 비춰 한국의 정책과 제도는 사실상 백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상찬 세화병원장은 “난임시술을 하는 민간병원에만 맡겨놓다 보니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자·난자) 기증자가 늘 부족한 상황”이라며 “주차장은 있는데 차를 대지 못하게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 난임부부들로 하여금 불법적 경로를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법적 경로란 생식세포 매매나 대리부·모를 일컫는다. 실제 복지부가 불법 대리부·모 사이트를 적발한 건수가 지난해 127건에 이른다.

특히 1200여 건의 시술이 이뤄지는데도 관련 규정이나 지침이 없는 점은 큰 문제로 꼽힌다. 2004년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조작 사태 이후 난자 사용 지침은 마련됐지만 정자와 관련해선 기본검사 외에 통일된 지침이 없는 상태다. 시술 대상이나 횟수 제한, 기증자 공개 여부 등과 관련해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산부인과학회, 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내용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학회는 기증자의 조건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할 것과 함께 팔촌 이내 금지 조항을 두고 있다. 반면 나머지 두 곳엔 기증자의 조건을 두고 아무런 기준이 없다. 건강검진 시 확인하도록 권고하는 질병도 기관마다 다르다. 또 기증자에게 주는 혜택도 민간병원마다 제각각이다.

이에 복지부는 부산대병원과 함께 표준 작업지침을 만들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공공(公共)정자은행 건립 논의도 시작했다. 김승희 의원은 “난임시술 건강보험 급여화로 급여지원이 되는 비배우자 정자·난자 임신도 늘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부가 조속히 현장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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