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 월급만도 못한 참전용사 수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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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이병 月30만원으로 오르는데… 참전명예수당은 月22만원 그대로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에는 매일 오후 3시 백발의 85세 노인이 나타난다. 162cm 키에 깡마른 체구, 검버섯으로 뒤덮인 창백한 얼굴을 한 노인은 걷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노인은 1학년 학생들이 빠져나간 교실과 복도를 쓸고 닦는다. 주 5일 하루 2시간씩 일을 하고 받는 돈은 한 달 20만 원 남짓에 불과하다.

5년째 이 일을 하며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은 6·25전쟁 참전용사 최동식 씨다. 그는 정전협정 4개월 전, 치열한 막바지 전투가 벌어지던 1953년 초 육군에 입대해 목숨을 걸고 북한군과 싸웠다.

그가 정부에서 받는 참전명예수당은 월 22만 원. 서울시와 용산구가 지원금을 지급하지만 각각 월 5만 원, 1만 원에 그친다. 최 씨 부부가 각각 받는 기초노령연금 16만 원을 더해도 부부가 쥐는 돈은 한 달에 총 60만 원. 치매를 앓는 아내와 관절염, 위장 장애 등 각종 질병을 앓는 최 씨의 약값과 진료비로 월 30만 원이 나간다. 19일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용산구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 씨는 “교실 청소를 해야 연명할 수 있다”며 “90세가 되더라도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참전명예수당을 지급받는 6·25전쟁 및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현재 23만2464명.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한 달 약값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극빈의 노년’을 보내고 있다. 최 씨를 포함해 이날 용산구지회에 모인 6·25 참전용사 4명은 “참전용사 대부분이 비참한 생활을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참전명예수당에 더해 기초생활수급비로 월 68만 원가량을 받는 또 다른 참전용사 이종훈 씨(83)였다. 이들은 이 씨를 가리켜 “우리 중 제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참전용사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에 헌신한 참전유공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한다는 취지로 2002년부터 소득에 관계없이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당시 월 5만 원이었던 수당은 올해 22만 원으로 4.4배로 올랐다. 그러나 같은 기간 병사 월급이 이등병 기준 1만6500원에서 16만3000원으로 9.9배로 오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인상률이 낮다. 국방부는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의 30∼50% 수준으로 연차적으로 인상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내년 이등병 월급을 30만6130원으로 올릴 방침이다. 참전명예수당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이등병 월급보다도 적어지는 것이다. 박희모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회장은 “참전용사들이 최악의 빈곤을 겪지 않으려면 국민 최저생계비인 60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참전명예수당 대폭 인상 문제는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수당을 월 1만 원만 올려도 예산이 연간 280억 원 더 소요되는 탓에 증액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선 보훈병원 등 국가 운영 의료기관 진료비 감면, 간병 서비스 등 참전용사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을 돈으로 환산하면 월 22만 원이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모든 참전용사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면서도 “국가보훈 대상자에 대한 예우 강화가 정부 기조인 만큼 참전용사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참전용사#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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