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명량서 왜군 대파… 고종, 대한제국 선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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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파란만장’ 정유년]당파싸움으로 아버지 잃은 정조
1777년에 암살 위험 처하기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왜 수군을 물리치며 전세를 역전시킨 명량대첩. 2014년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축제’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왜 수군을 물리치며 전세를 역전시킨 명량대첩. 2014년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축제’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금 신(臣)에게는 아직도 전선(戰船)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1597년 정유(丁酉)년 7월 14일 칠천량 전투 패전 직후 이순신은 선조에게 비장한 내용의 장계를 올렸다.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이 왜군에게 궤멸되자 선조는 수군을 아예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라도 해역에서 육군과 합류해 한양으로 진격하려던 왜군의 전략을 간파한 이순신은 바다에서 결사항전을 내걸었다.

 두 달여 뒤 정유년 9월 16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나중에 한 척을 더해 고작 13척을 확보한 조선 수군은 명량(鳴梁)에서 왜선 300여 척과 맞닥뜨렸다. 이순신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빠른 울돌목 조류를 이용해 적선을 유인한 뒤 함포공격과 당파전술(선체를 충돌시켜 적선을 파괴하는 것)을 적절히 구사해 수적 열세를 만회했다. 단 한 척의 아군 배도 잃지 않고 적선 30여 척을 수장시켰다. 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정유재란에서 거둔 우리의 가장 결정적인 승리였다. 육로에서 남원과 전주를 잇달아 함락하고 충청도 직산까지 진격한 왜군은 명량해전 패전 직후 예봉이 꺾여 남해안으로 물러나게 됐다.

 내년은 쌈닭(투계·鬪鷄)을 연상시키는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다. 쌈닭은 오직 주인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사나운 데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용맹함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선지 역사 속 정유년은 명량해전처럼 절망을 기어코 이겨내려는 투쟁과 응전의 세월이 적지 않았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지 180년이 흐른 1777년 정유년도 녹록지 않은 현실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열한 당파싸움으로 아버지(사도세자)를 잃은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노록 벽파의 암살 위험에 처한 것. 그해 7월 28일 왕의 신변경호를 담당한 호위군관 강용휘 등이 침소에 들어가 정조를 살해하려고 시도했으나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앞서 노론은 영조가 말년에 정조의 대리청정을 명하자 ‘죄인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는 흉언(凶言)을 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조는 편 가르기가 아닌 ‘통 큰’ 정치로 노론의 힘을 자연스레 뺐다. 즉위 직후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조정 신료를 고루 등용했다. 이로서 소론과 남인의 인재들도 대거 정국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열 수 있었다.

 이로부터 다시 120년이 흐른 1897년 정유년은 일본과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 조선왕조가 마지막 몸부림을 친 시기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했던 고종은 정유년에 경운궁으로 돌아오자마자 대한제국 건국을 선포한다. 자신의 아내이자 국모였던 명성왕후가 일본 외교관이 지휘한 암살단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직후였다.

 고종은 정유년 11월 명성황후의 국장을 대대적으로 치른 뒤 사대(事大) 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허물고 독립문을 지었다.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군제를 개혁하고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정유년은 이순신이 명량대첩에서 승리하고 정조가 활약했던 과거 정유년과 달리 거대한 역사의 파고를 결국 넘지 못했다. 대한제국은 단 13년을 버티다가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를 꼽았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병신년에 최순실 게이트로 큰 시련을 겪었지만, 내년 정유년에는 쌈닭의 기세처럼 부정(不正)에 맞서 분투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순신#거북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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