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신도시 쇠락을 통해 본 한국 신도시의 미래]<上>고령화-저출산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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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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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0년대 단카이세대 몰린 ‘꿈의 뉴타운’
지금은 은퇴노인만 남아 ‘황혼의 올드타운’

황량한 다마신도시 상가  일본 도쿄권 최초 신도시인 다마신도시에서 1971년 입주를 시작한 스와 단지. 상점 40여 개가 밀집한 중심 상가 지역은 가게 절반 정도가 몇 년째 문을 닫고 있고 접골원, 치과, 내과처럼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만 영업을 하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 고령화에 따라 젊은층이 떠나고 은퇴한 노인만 남은 탓이다. 다마신도시=정임수 기자
황량한 다마신도시 상가 일본 도쿄권 최초 신도시인 다마신도시에서 1971년 입주를 시작한 스와 단지. 상점 40여 개가 밀집한 중심 상가 지역은 가게 절반 정도가 몇 년째 문을 닫고 있고 접골원, 치과, 내과처럼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만 영업을 하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 고령화에 따라 젊은층이 떠나고 은퇴한 노인만 남은 탓이다. 다마신도시=정임수 기자
《일본 도쿄(東京)역에서 급행전철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다마(多摩)신도시. 인구 21만 명의 다마신도시는 도쿄권에서 가장 먼저 개발돼 1971년 입주를 시작한 일본의 대표적인 주거 중심 신도시다. 전철역에서 초기 입주 단지인 스와(諏訪)로 가는 길은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20분을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노인용 유모차를 끌고 가는 노인과 산보를 나온 노부부뿐.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도쿄 도심과 대조적이었다. 한 일본인 교수가 “혼자 걷기 무서울 정도로 조용할 것”이라고 건넨 말이 실감났다. 스와 단지에서 40여 개 상점이 밀집한 중심상권으로 들어섰는데도 문을 연 가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셔터를 내리고 ‘임차인 모집’이라고 써 붙인 곳이 여럿이다. 그나마 간판을 내건 곳은 미장원과 접골원, 치과, 심장내과 정도였다.》

도쿄 인근 다마신도시
인구 줄어 초중학교 속속 폐교
중심상권도 절반이 간판 내려


오사카 인근 센리신도시
주민 29%가 65세 이상 노인
접골원-실버병원만 명맥

주민 마쓰바라 가즈오 씨(55)는 “몇 년째 상가의 절반이 비어 있다”며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활기를 잃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일본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에게 ‘꿈의 신도시’로 불리던 이곳은 이렇게 시간이 멈춰 있었다.

2005년 1억2776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인구 감소에 접어든 일본. 이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겹치면서 나타난 변화는 바로 베드타운형 신도시의 급속한 황폐화다. 신도시를 가득 채웠던 단카이 세대가 고령화되고 새로 유입되는 인구가 줄면서 신도시는 ‘황혼의 올드타운’으로 전락하고 있다.

2018년(4934만 명)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되는 동시에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한국도 주거 중심 신도시들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은퇴 노인만 남은 ‘정지된 도시’

일본은 1961년 오사카(大阪) 인근의 센리(千里)신도시를 시작으로 신도시 개발을 본격화했다. 1960년대 고도 성장기 때 대도시 인구 집중과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정부는 1963년 신주택시가지개발법을 만들어 신도시 개발을 적극 추진했고 일본주택공단(현 도시재생기구)과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 인근에 49개 신도시를 조성했다. 당시 이들 신도시는 한국 신도시 분양 때처럼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단카이 세대가 대거 이동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가구 규모가 축소되고 새로 유입되는 인구마저 줄면서 신도시부터 인구 감소가 가장 먼저 시작됐다. 센리신도시는 1975년 12만9000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계속 감소해 지난해 8만9500명까지 줄었다. 다마신도시는 20년 내에 거주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신도시는 고령화도 기존 도시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70년 2.8%에 불과하던 센리신도시의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작년 말 29.9%까지 치솟으며 전국 평균(23%)을 앞질렀다. 다마신도시 스와 지역의 고령화비율도 25%에 이른다.

저출산과 주민들의 고령화로 인해 다마신도시는 1983년 이후 37개 초등학교 가운데 5곳이 폐교됐다. 중학교도 21개 중 5곳이 문을 닫았다. 스와 단지에서 폐교된 나카스와 초등학교를 찾아가니 정문 앞에 주차된 ‘케어서비스’ 마크를 단 병원용 차량부터 눈에 띄었다. 2∼4층 교실은 봉쇄돼 있었고 1층은 노인들이 건강 상담을 받고 있었다. 한때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운동장도 철조망에 둘러싸여 수풀만 무성했다. 2001년 폐교된 이 학교는 노인복지시설로 쓰이고 있다.

日 다마 신도시 집값 20년 전보다 60% 하락

○ 상권 몰락, 집값 추락


센리 신도시의 초기 입주 지역인 사타케다이(佐竹台)에서도 중심상가의 40% 정도가 셔터를 내렸다. 자전거 판매점을 하는 도모노 와타루 씨(65)는 “젊은층은 떠나고 소득이 줄어든 은퇴 고령자만 남은 탓”이라며 “빈 점포들이 계속 업종을 변경해 보지만 장사가 안 돼 결국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실제 다마 신도시나 센리 신도시를 걷다 보면 수많은 접골원과 개인병원만 눈에 띈다. 도모노 씨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만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다마 신도시 스와 단지에서 35년째 옷가게를 하는 오자와 데쓰야 씨(70)도 판매상품을 60·70대용 의류로 바꿨다. 20년 전만 해도 주력 상품은 학생용 체육복, 운동화와 30·40대 옷이었다. 특히 과거 일본 제품만 사던 주민들이 은퇴한 뒤로 싼 옷만 찾으면서 지금은 중국산 제품만 취급한다. 오자와 씨는 “은퇴한 주민들이 쓰는 돈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마쓰바라 씨는 “집 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 노인도 많다”며 “젊은층은 없고 고령자들만 살다 보니 치안이나 방범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고령화에 따른 문제가 불거지고 신도시 인기가 식으면서 집값 하락세도 가파르다. 다마 신도시 아파트나 단독주택 가격은 20년 전보다 60% 이상 떨어졌다. 1988년 45만 엔이던 다마 신도시 하치오지 지역 주택지 공시가격은 지난해 17만9000엔. 금융위기 이전 일본 부동산 가격이 반짝 상승해 도쿄 땅값이 10% 정도 뛰는 동안 다마 신도시는 4%도 오르지 못했다. 다마 신도시에 사는 도베 후미히로 씨(55)는 “집값이 싼 외곽 변두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데 이제 신도시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일본도 답 못 찾아 고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의는 많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리도 답답합니다.”

고령화, 인구 감소에 따른 신도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질문에 요코야마 부참사는 이렇게 답했다. 도쿄도 다마뉴타운사업실의 야타가이 유키오 과장은 “노후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고 건물과 도로의 턱을 없애고 어린이공원을 노인을 위한 녹지 공간으로 바꾸는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오사카부 정책기획부 이와타 나오야 기획추진총괄은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센리 신도시는 노후화된 주택을 재건축하고 근린상가 일부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며 “임대주택을 재건축해 고령자용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주택 공급을 위한 신도시 개발 전략을 포기했다. 다마 신도시도 1966년 개발 이후 매년 1000∼2000채의 주택을 새로 짓다가 1996년부터 이를 멈췄다. 이 때문에 도쿄도나 도시재생기구(UR) 등에서는 신도시 조성을 위해 확보한 택지개발지구 내 유휴지를 민간 부동산회사에 팔고 있는 상황이다.

다마·센리신도시=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지금도 신도시 짓고 있는 한국이 더 걱정”

■ 日 도시계획 전문가 조언


“도시개발-고령화 속도 빨라… 10~20 년뒤 인구 채울지 의문”


“지금 일본 신도시의 모습은 한국 신도시의 가까운 미래입니다.”

“일본보다 한국이 더 걱정됩니다. 고령화나 인구 감소 속도가 훨씬 빠른 한국이 지금도 개발하고 있는 신도시를 무슨 수로 채울 건가요?”

일본의 부동산 및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한국 신도시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이런 말부터 꺼냈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한국의 1기 수도권 신도시는 일본 도쿄권 최초의 신도시인 ‘다마’가 모델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의 1기 신도시가 짧은 기간에 개발됐다는 점에서 고령화로 인한 파장이 심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대 도시공학과 오니시 다카시 교수는 “일본 신도시가 10∼40년에 걸쳐 조성된 데 비해 한국 1기 신도시는 5∼7년 만에 개발이 끝났다”며 “수십 년간 다양한 연령층이 입주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비슷한 세대가 동시에 입주했기 때문에 입주자가 한꺼번에 고령화되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또 한국에서 여전히 인구 성장기에 적합한 개발 계획이 남발되고 있는 점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은 현재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와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수도권에서는 입주를 시작한 판교, 파주, 동탄 신도시를 비롯해 2016년까지 김포한강, 위례, 광교, 인천검단, 평택고덕국제화도시가 잇달아 들어선다.

도쿄도 도시정비국의 요코야마 기오시 부참사는 “10년, 20년 뒤 이런 신도시가 적정 인구를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금 개발하는 신도시 계획을 포기하기 힘들다면 고층 아파트 위주의 개발보다 다양한 주택을 보급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토교통성 도시지역정비국의 가부타 후미히로 도시정책기획관은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기존 베드타운 신도시에 고령자가 집중되는 문제를 막으려면 주거 외에 업무 중심 기능을 대폭 보강해 젊은층을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 부동산개발회사인 모리빌딩의 박희윤 부장은 “송도국제도시도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입지 여건이나 입주 조건이 더 떨어지는 청라, 광교, 평택국제도시 등을 업무 중심의 자족도시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이런 곳에 과도하게 오피스빌딩을 집어넣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주, 파주, 김포 신도시는 지금도 미분양이 생길 정도로 수요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며 “고령화에 따라 외곽 수요가 줄어드는 만큼 지금 개발하는 신도시는 수요를 다시 추산해 개발 시기와 규모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마·센리신도시=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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