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도 없고 입구도 찾기 힘든 ‘숨은’ 가게들의 사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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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선배가 충무로에 카페를 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에. 현대인에게는 건물 다섯 층을 계단으로 오를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인사차 방문한 나는 입지가 썩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술을 사오기 위해 한 차례 더 왕복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어깨로 문을 밀었을 때 선배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힘들지?”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내 숨소리와 안색이 충분히 하고 있었을 터. 하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좋은데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토끼굴에 빠진 기분도 들고.” 너스레였지만 온전히 허투루 한 말은 아니었다. 하나씩 켜지는 센서 조명들에 의지해 공간 감각이 옅어질 때까지 계단을 오르고, 끝내 꼭대기층에 다다라 시침 뚝 뗀 모양새의 문을 밀면 그 너머에 아늑하고 따뜻한 세계가 펼쳐지는 경험. ‘스피크이지’의 핵심 가치가 내밀함이라면 선배의 카페도 일련의 미덕을 갖춘 듯했다는 뜻이다.

스피크이지(Speakeasy)는 미국 금주령 시대에 몰래 술을 팔던 주점을 일컫는 용어다. 그리고 숨어서 술을 마실 필요가 없는 오늘날에는 -해당 모티브를 빌려와- 입구를 찾기 어렵거나 특정 코드를 알아야 입장 가능한 컨셉트의 가게를 이른다. 여기서 잠깐. 외식업계에 해박한 (혹은 주당인) 독자는 칼럼의 시의성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스피크이지바 컨셉트가 뉴욕에서 태동한 것은 20년 전. 국내만 해도 오륙년 전부터 우후죽순 생겨나 이제는 클리셰 취급까지 받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다만 최근 을지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숨은’ 가게들에 또 다른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인쇄소 건물 3층의 와인바 바302호 김태윤 대표는 이런 업태에 ‘한국식 스피크이지’란 별칭을 붙였다고 했다. “컨셉트 삼아 입구를 숨기는 게 아니에요. 목 좋은 곳에 가게를 내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불리한 입지를 택하는 거죠. 1920년대 미국의 스피크이지가 금주령에 쫓겨 자연히 만들어졌듯 오늘날 서울에서도 임대료에 쫓겨 자연생성되고 있는 거예요.” ‘간판 없는 가게’도 마찬가지. 펍 서울털보와 카페 깊은못을 운영하는 이관호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간판을 달지 않는 건 힙한 느낌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적 제약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다. “간판이 생각보다 비싸고, 건물 내 다른 입주자와의 조율 문제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이유로 미루다보면 딱히 간판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죠. 사실 이런 가게에 지나가다가 들어올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때로는 가난도 미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택지가 적을 때 우리는 더 면밀해지고, 공백을 독창성으로 메우게 되며, 때로 기존 질서를 전복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게들이 각광받는 이유도 물론 단순히 입구를 찾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공간은 인간이 관계를 맺는 매개인 바, 이 서울의 틈새 같은 곳들에서는 한층 짙게 인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약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한 곳을 검색해 찾아가볼 것을 권한다. 적어도 그 선택지가 바302호, 서울털보, 깊은못, 그리고 컵오브티 같은 곳일 때, 당신도 누군가의 ‘은신처’에서 밤을 보내고 온 듯한 감흥을 얻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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