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청성의 사회복지사가 말하는 ‘오청성의 한국 정착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2일 18시 52분


코멘트
지난해 11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북한병사 오청성 씨(26)는 20일 모처에서 사회복지사 A 씨를 만나 괴로움을 토로했다. 오 씨가 ‘한국군은 군대 같지 않은 군대’라고 언급했다는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가 보도된 지 3일 뒤였다. 오 씨는 A 씨에게 “북한군은 복무기간이 10년이고 한국군은 2년이라는 차이를 말한 것뿐인데 악의적으로 왜곡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보도 이후 악플에 괴로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그에게 A 씨는 김밥을 건넸다. 하지만 오 씨는 김밥을 끝내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

“매일 어머니의 환영 보여 고통”

A 씨는 21일 모처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2시간 동안 인터뷰하며 5개월간 오 씨의 ‘대한민국 정착기’를 들려줬다. A 씨는 7월 초 막 하나원에서 나온 오 씨를 사회복지기관에서 처음 만난 이후 매주 1, 2차례씩 만나며 어머니처럼 돌봐주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오 씨는 매일 ‘어머니의 ’환영(幻影)‘이 보인다’고 토로할 만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북한에 있을 때도 8년 동안 군대에서 복무해 가족을 거의 만나지 못했던지라 그리움이 더욱 컸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 20대 청년 오 씨가 전혀 다른 체제의 한국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가혹했다. 신분이 드러날까 봐 하나원 동기들, 극소수의 탈북자 외에는 친구들을 사귀기도 어려웠다. 정착 초기 오 씨는 한 탈북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A 씨에게 “이해가 된다”고 말했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오 씨의 어머니뻘인 A 씨는 힘들어하는 오 씨를 보며 아들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A 씨는 “같이 종교시설을 갔는데 오 씨가 한참을 펑펑 울며 괴로워하는 걸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처음엔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는데 이젠 많이 이겨낸 상태”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오 씨는 매달 생계비 50만 원과 주거급여 10만 원 등 총 60만 원을 받는 게 주된 수입이라고 A 씨는 전했다. 이 돈으로 영구 임대아파트 월세 13만 원과 관리비, 식비 통신비 등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다. A 씨는 “하나원에서 나올 당시 영구 임대아파트와 정착금 400만 원을 받았을 뿐 별도의 큰 후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과 다르다. 남한에선 노력하면 성공한다”

판문점에서 ‘사선(死線)’을 넘어온 청년 오 씨는 대한민국에서 노력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A 씨에게 자주 밝혔다고 한다. 오 씨는 A 씨에게 “북한에선 내가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데 남한에선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이니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당장 생계비가 급했던 오 씨는 지인 소개로 종종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A 씨는 “하루 일하면 이틀을 쉬어야할 만큼 총상의 여파로 몸이 완전치 않았지만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려고 고된 일을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오 씨가 스스로 노력해서 꼭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나길 바랐다. 오 씨가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서 집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일상을 알아가길 원했다. 오 씨는 매달 2만 원씩 납입하는 청약통장을 만들겠다고 A 씨와 약속하며 자립 의지를 밝혔다. A 씨는 한국의 평범한 가정을 보여주고 싶어 남편과 함께 오 씨를 만난 적도 있었다. A 씨는 “오 씨는 내 남편을 처음 만나자마자 허리 숙여 인사할 만큼 예의바른 청년”이라고 말했다.

오 씨는 목숨을 살려준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A 씨에게 종종 비췄다고 한다. A 씨는 “오 씨가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아주대가 있는 경기 수원에 집을 얻고 싶어했다”며 “한국에 와서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이 교수에게 그만큼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꼭 성공해 자서전 내겠다”

그렇게 한국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홀로서기에 매진하던 오 씨에게 거센 시련이 찾아왔다. 오 씨가 한국군은 군대 같지 않은 군대‘라고 말했다는 산케이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것이다. 악플이 쏟아졌고 오 씨를 다시 북한에 보내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오 씨는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왜곡해서 보도했다. 정정보도를 신청하겠다”며 산케이에 항의했다. 산케이는 ’미안하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이미 오 씨의 가슴엔 커다란 상처가 남은 뒤였다. 그 이후 오 씨는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게 A 씨 전언이다.

오 씨가 하나원에서 나온 뒤 차량 2대를 구입했다는 논란에 대해 A 씨는 “오해에서 불거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A 씨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오 씨 사연을 접한 지인이 ’필요할 때마다 내 차를 타라‘며 호의를 베풀어 오 씨가 그 차를 종종 빌려 탔다”며 “지인이 중간에 차를 바꿨고 그 후 오 씨가 바뀐 차를 종종 빌려 타서 주변에선 차량이 2대라고 오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는 “오 씨가 자존심이 매우 강해 주변에서 ’남한 와서 돈은 많이 받았느냐‘ ’돈은 얼마나 버느냐‘ 같은 질문을 하면 늘 아무 얘기를 안 해 더욱 오해를 키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 씨는 한국 사회에 나온 후 5개월 동안 단맛보다는 쓴맛을 훨씬 많이 봤다. 그래도 오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나 홀로 우뚝 서겠다‘는 A 씨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다. 오 씨는 대학에 가는 걸 목표로 공부 중이라고 한다. 오 씨는 A 씨와 처음 만났을 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오 씨가 한국에서 성공해서 자서전을 내자는 것. A 씨는 “오 씨가 나와의 약속을 꼭 지킬 수 있게 쭉 옆에서 돕겠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