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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카레이서’였던 아들이 1급 장애인으로…과속이 앗아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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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카레이서’였던 아들이 1급 장애인으로…과속이 앗아간 행복

최지선 기자, 서형석기자 입력 2018-10-21 16:57수정 2018-10-2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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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석 씨(왼쪽)와 아버지 유성복 씨가 1일 경기 용인시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밝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성복 씨는 정석 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2003년부터 그의 거동을 돕고 있다. 용인=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빠 미안해… 아빠 미안해….”

경기 용인시의 자택에서 만난 유정석 씨(43)의 말 중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유성복 씨(72)가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말을 잠시 멈추면 정석 씨는 “미안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정석 씨는 1급 뇌병변 장애인이다. 아버지는 “속 썩이지 않고 성실하게 커준 아들에게 평생 ‘미안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 ‘1등 카레이서’였던 아들

사고가 난 건 2003년 9월 20일 오전 3시 30분 경기 용인시 경부고속도로 신갈분기점 부근이었다. 정석 씨가 오르막에서 평탄한 도로로 진입하는 순간 앞에 가던 5t 화물차가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핸들을 틀었지만 왼쪽 차로에 차량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다시 화물차 쪽으로 핸들을 틀어 그대로 화물차 왼쪽 바퀴 아래 깔렸다. 일본, 영국 등에서 쓰는 ‘오른쪽 운전석’ 차량이라 정석 씨가 받은 충돌 충격은 더 컸다.

사고 전 정석 씨는 촉망받는 카레이서이자 솜씨 좋은 정비사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해 차량 소리만 듣고도 어떤 부품이 고장 났는지 알아냈다. 수리가 까다로운 외제차 차주들이 전국 각지에서 정 씨를 찾아왔다. 레이싱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국내외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했다.

그런 정석 씨가 자신의 몸과도 같은 차를 타던 중에 변을 당했다. 사고 당시 속도는 시속 140㎞. 2003년 경부고속도로의 제한최고속도는 시속 100㎞였다. 설상가상으로 늘 뒷좌석에 싣고 다니던 카레이싱용 안전모(헬멧)가 뒤에서 날아와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193cm 장정 아들 업고 전국 병원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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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과 자신의 삶을 바꿔놓은 15년 전 그 밤을 잊지 못한다.

“경찰이 아들 다 죽게 생겼으니 빨리 오라고… 제가 살려만 달라고, 어떻게든 고쳐보자고 매달렸어요.”

뇌를 심하게 다쳐 의식을 잃은 정석 씨는 3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됐고, 뇌병변 때문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렵다.


아버지는 정석 씨를 돌봐줄 요양원을 찾아봤지만 키 193㎝ 몸무게 100㎏의 큰 체격인 정석 씨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거구여서 돌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역할을 맡게 됐다. 키 163㎝인 성복 씨로서는 아들을 침대에서 일으켜 화장실에 데려가는 기본적인 일도 쉽지 않다.


아버지는 정석 씨를 치료해보려고 전국을 방방곡곡 헤맸다. 아버지는 “마비 환자를 잘 치료한다”는 말을 들으면 강원 춘천부터 전남 해남까지 어디든 정석 씨를 데려갔다.


“어떤 한의원은 3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용하다고 해서 매주 아들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어요. 땀범벅이 돼서 아들을 차에 태워놓고 나면 어찌나 마음이 무너지던지….”

생활고 때문에 간병에만 계속 매달릴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몸이 불편한 정석 씨를 차에 태우고 일을 하러 다녔다. 아버지는 전자오르간, 기타 등을 연주하는 행사 연주자다.


“행사 하는 동안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차에 태우고 다 큰 아들한테 소변통을 하나 쥐어줘요. 몸이 불편하니 참다 참다 ‘언제 오냐’고 전화할 때마다 마음 아팠죠.”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정석 씨는 2006년 9월부터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교통사고 피해자 지원으로 매달 재활보조금 20만 원을 받고 있다.

● ‘한 줄기 빛’ 아내와 아들

정석 씨의 삶에 한 줄기 빛을 가져다준 것은 ‘천사’ 아내다. 그녀는 정석 씨의 상황을 모두 알고서도 2010년 그와 결혼했다.

아내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남편을 매일 목욕시키고, 욕창이 생길까봐 밤에도 1시간에 한 번씩 몸을 뒤집어 준다. 요양보호사와 활동보조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정석 씨 관절이 굳지 않게 운동 치료도 직접 한다. 아들도 생겼다. 아내는 잡지 속 정석 씨의 사진을 가리키며 “남편이에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받았던 트로피를 자랑했다. 아버지 성복 씨는 그런 며느리와 손자가 안쓰럽다.

“아들이 친구들한테 ‘우리 아빠가 카레이싱 1등 선수였다’고 했더니 ‘휠체어에 탔는데 말도 안 된다’고 놀렸나 봐요. 상처 받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는데 어렵네요.”

가족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벼룩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국수 한 끼를 먹고 돌아오는 소소한 외출도 시작했다. 하지만 휠체어 위에서 떠먹여 주는 밥을 먹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는 여전히 가슴이 무겁다.

“사고가 난지 15년 됐지만 아직도 아들을 보면 속상한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단 한번의 사고가 가져온 일입니다. 우리 가족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해요.”

과속 교통사고 매년 늘어 ▼

교통안전의 기본 가운데 기본인 속도 준수가 무시되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매년 줄며 올해 3000명대 진입이 예상되고 있지만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 피해는 오히려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 427건 발생했던 과속 교통사고는 지난해 839건으로 2배가까이 증가했다. 과속 교통사고로 인해 숨진 사람도 144명에서 206명으로 증가했다.


국내 도로는 과속하기 쉬운 여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도심 일반도로를 기준으로 국내 도로의 차로 폭은 최소 3m, 최대 3.5m다. 반면 일본은 최소 2.75m로 여유롭게 속도를 내기 어렵다. 3m가 넘는 폭의 차로는 고속도로에서나 볼 수 있다. 여기에 역설적으로 도로의 포장기술과 차량의 주행성능이 개선되면서 운전자가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내기 좋은 환경이 됐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과속단속 카메라 앞이나 경찰의 불시 이동식 단속 구간에서만 속도를 줄이는 ‘캥거루 과속’도 확산됐다.

하지만 도심과 고속도로를 막론하고 제한최고속도를 넘는 과속은 사고 위험을 높인다. 도로에는 속도가 다른 다양한 차가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의 통행도 잦다. 또 과속 중인 운전자는 시야가 좁아져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다. 보행자가 차량과 충돌했을 때 받는 충격은 차량 속도와 정비례하지 않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차량 속도가 시속 60㎞만 넘겨도 보행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다. 정부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현재의 절반인 2000명대로 줄이기 위해 도심 제한최고속도를 시속 50㎞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을 추진하는 이유다. 경찰은 지난해 서울에서 시작한 도심 구간단속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고속도로도 마찬가지다. 2015년 국토교통부는 시속 120㎞인 현행 고속도로 설계속도를 시속 14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포기했다. 설계속도는 차량이 해당 속도로 달려도 안전하다는 뜻이다. 도로와 차량 성능이 좋아지면서 속도제한의 완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과속 교통사고의 증가와 교통안전 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더 컸다.

과속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명시된 중과실 중 하나다. 과속으로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다치거나 숨지게 한 운전자는 보험가입에 상관없이 기소된다. 경찰 관계자는 “제한최고속도를 지키는 건 모든 운전자가 안전을 위해 함께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과속은 이를 어기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행위로 반드시 근절해야할 잘못된 운전습관”이라고 말했다.


용인=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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