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째 저소득층 어린이 돕는 개그맨 이홍렬 씨 “100명 후원하지만 아직도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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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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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천사 빈소서 나를 돌아봅니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 어린이재단에서 만난 개그맨 이홍렬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어린이 100명을 후원하는 그는 “고 김우수 씨를 보며 사회가 아직 따뜻한 곳이란 걸 느꼈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30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 어린이재단에서 만난 개그맨 이홍렬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어린이 100명을 후원하는 그는 “고 김우수 씨를 보며 사회가 아직 따뜻한 곳이란 걸 느꼈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지난달 28일 오후 10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복지병원에 차려진 ‘철가방 기부천사’ 김우수 씨의 빈소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다. 개그맨 이홍렬 씨(57)였다.

이 씨는 1986년 2명의 아동과 후원 결연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 100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이 씨는 국내에 90명, 스리랑카에 10명의 아이에게 매달 1만 원씩 총 100만 원을 보내준다. 그는 김 씨가 후원했던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를 13년째 맡고 있기도 하다. 2007년부터는 전국을 돌며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무료 기부특강 ‘이홍렬의 펀 도네이션 기부교육’도 하고 있다. 벌써 49회째다. 지금까지 1만3740명이 이 교육을 받았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 어린이재단 사무실에서 이 씨를 만났다. 그는 김 씨가 뿌린 사랑의 씨앗이 우리 사회 전반에 큰 결실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한 달에 70만 원 벌던 그분도 매달 5만 원 안팎의 후원금을 보냈잖아요.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기부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다는 거예요.” 실제 김 씨의 기부 소식이 알려진 뒤 뜻을 잇고 싶다는 새로운 후원자가 어린이재단에만 1000명 가까이 연락해 왔다. 이 씨는 “철가방 천사가 지피고 간 기부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씨 역시 형편이 그다지 넉넉지 않았을 때 처음 기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1986년 어린이재단에서 주최한 소년소녀가장 관련 행사를 진행한 뒤 수고비로 10만 원을 받은 것이 부끄러웠던 게 계기가 됐다.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새벽 신문배달을 하며 어렵게 자랐거든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그 돈을 덜컥 받아버린 거예요. 너무 미안해서 그날로 어린이재단에 연락해 강원도와 제주도에 사는 어린이 두 명을 추천받아 후원을 시작했어요.”

개그맨으로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인기가 생기면서 그는 매달 후원아동 수를 늘려갔다. 형편이 좋은 달엔 한 번에 열 명까지 늘리기도 했다. 그가 후원한 어린이 중에는 벌써 40대가 된 주부도 있다. 원하던 대학에 진학해 꿈을 이룬 소녀도 있다. 어떤 이는 미안했는지 끝내 이 씨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아이는 그가 다니는 행사에 출연해 후원의 필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후원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심어주게 된다”며 “대기업의 기부 못지않게 개인의 소액기부가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 씨 자신도 후원 아동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개그맨 이홍렬 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복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우수 씨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어린이재단 제공
개그맨 이홍렬 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복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우수 씨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어린이재단 제공
그는 김 씨의 빈소를 찾은 많은 일반 조문객을 보고 우리 사회의 저변을 지탱하는 게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교복 입은 학생부터 젊은 연인까지 줄을 이어 헌화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가 많이 따뜻한 곳이라고 느꼈어요.”

그는 이날 시민들과 둘러앉아 세 시간 넘게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 시민이 “어찌된 게 어려운 사람들이 더 기부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하자 이 씨는 “여유가 있는 저도 노후 생활비를 계산하며 기부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기부를 하려면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여유가 생기면 기부를 하겠다고 하면 10년이 돼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기부는 마음먹은 그 순간 행동으로 옮겨야 현실이 된다”고 했다.

이와 함께 기부에 대한 책임감도 강조했다. 무턱대고 후원을 시작했다가 형편이 어려워지면 후원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처음엔 한 달에 1만 원씩, 한 명의 아이만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시작합시다. 단 평생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어때요, 별로 어렵지 않겠죠?”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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