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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민심, 현장을 가다]<4>불공정 사회에 화난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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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민심, 현장을 가다]<4>불공정 사회에 화난 민심

동아일보입력 2011-05-19 03:00수정 2011-05-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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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中企맨 “연줄 있어야 민원 풀리는데 공정은 무슨…”
#장면 1.

창업을 준비 중인 권모 씨(28)는 병역비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커피믹스가 떠오른다.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2004년 어느 날 커피 심부름을 하던 후배가 1회용 커피가 가득 쌓인 탁자 옆에서 “커피가 없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갓 전입해온 후배 의경은 그동안 고급 원두커피만 마셨을 뿐 1회용 커피믹스는 타본 적이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가 배치된 곳은 근무가 편했다. 그곳에는 현직 장관과 판사, 경찰 고위직, 대학총장, 이름만 대도 아는 유명 기업가를 아버지로 둔 의경이 유독 많았다. 다른 곳에서 1년 근무한 뒤 배치된다는 규정도 안 지킨 채 전입한 ‘규정 밖 배치’도 많았다.

권 씨는 “새로운 후배 의경이 들어올 때마다 ‘너는 어느 분의 자제님이냐’고 물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군 면제 병역비리는 줄었을지 모르지만 보직 청탁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공정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한마디로 웃긴다”고 말했다.

#장면 2.

50대 택시운전사 제모 씨는 공정사회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 한국 사회의 ‘높은 분들’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30년 운전을 한 나는 정치인이나 고위인사를 많이 모셔봤다. 그분들이 뒷좌석에 앉아 전화로 하는 대화 내용을 듣다 보면 내겐 희망이 생길 수 없다. 좋은 제도를 아무리 만들어도 그분들의 마음가짐이 여전하다면 큰 기대가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만난 보통사람 10여 명은 대체로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에 시큰둥했다. “기대는 해본다”는 말도 없진 않았지만 소수에 그쳤다. 이명박 대통령이 1주에 한 번꼴로 공정사회 실현을 다짐하고 국무총리실이 80대 공정사회 추진과제까지 선정해 발표했지만 민심은 여전하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대기업 경영인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늘 “이런 게 공정사회입니까”라는 반문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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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점이 과연 같을까?”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동일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정한 경쟁을 거치게 하고 결과를 각자 받아들여야 한다는 기회의 평등을 말한다.

하지만 정부기구에서 일하는 최모 씨(41·여)는 자녀교육 문제만 떠올리면 ‘과연 주어진 기회가 같을까’라는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한국의 공교육에 큰 기대를 걸지 않지만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두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매달 150만 원에 이르는 학원비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엄청 학원공부 시켜대죠. 애들한테 아무것도 안 시킨다니까 주변에서 무식한 엄마 취급을 하더라고요.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교육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것 같아요. 빈부격차의 불이익은 결국 애들이 보는 거죠. 요즘은 옛날처럼 조금만 노력해도 기본은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니까.”

선생님에게 촌지를 안 주면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그를 괴롭히는 고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는 ‘백화점 상품권 석 장은 기본’이라는 얘기를 듣고 최근 스승의 날에도 아이들 선생님 만날 생각을 아예 포기했다.

그래도 최 씨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가면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낼 생각이다. 그는 “대출을 받고 무리를 해서라도 자녀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최소한 부모의 도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하루아침에 바뀌겠어?”

시민들은 학벌과 인맥, 혈연을 중시해온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관행의 벽을 체감하고 있었다. 권 씨는 “통치자 한 사람이 공정사회를 부르짖는다고 몇십 년간 쌓여온 문제점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거라고는 기대 안 한다”고 말했다.

전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옷가게 창업을 준비하는 윤모 씨(29·여)는 “취업을 선택한 동창들이 학력이 낮고 여성이라서 무시당한다며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본다”면서 “이래서야 뭐가 달라질 수 있을지…”라고 말했다. 청년실업자인 남동생과 홀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윤 씨는 사업이 실패할까 두렵지만 직장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차라리 창업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굳혔다.

인천의 중소기업에서 영업 업무를 하는 김모 씨(44)는 관공서 출입이 잦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을 만날 때 학연 지연을 활용한 ‘전화 한 통’의 힘을 잘 안다. 그는 “사회구조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 똑같다”고 말했다.

A정당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한 당직자의 생각도 같았다. 이 당직자는 “정치인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없이 체감했다”면서 “정치권에서 정책을 고민해온 나로서도 이 사회가 공정해지기는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 “미래엔 바뀔 수 있을까?”

서울 종로에서 두 평 남짓한 구멍가게를 30년 넘게 운영하는 60대 할머니에게 ‘대통령이 세상을 더 공정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한 말을 들어봤느냐’고 물었다. “나도 귀는 뚫렸으니 듣기는 했지. 하지만 말로 하면 뭐하나. 실제로 해야지. 그런데 실제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나는 못 느끼겠어.”

‘정부가 뭘 바꿔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거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 먹고사는 게 좀 나아지면 좋겠다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 할머니도 실낱같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쉽게는 안 될 거야. 그래도 딱 한 번은 정부건 대통령이건 믿어보고 싶어. 하지만 (대통령 임기) 5년은 후딱 가버리더라고.”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정부 ‘공정 드라이브’ 팔 걷었지만, 공직비리 잇따라 여론 ‘냉랭’ ▼
금감원 전관예우 - 장관딸 특채에 “거봐라”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3월 3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을 방문해 공정사회 추진회의를 열고 공정과세와 성실납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국무총리실 산하 공정사회구현태스크포스(TF)는 지난주 제5차 회의를 열고 80개 공정사회 추진과제의 진척 상황을 점검했다. 16개 정부 부처를 비롯한 정부 주요 기관 관계자들이 돌아가며 경과보고를 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한 TF 실무자는 “모든 부처가 달라붙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성과가 적은 것 같다”며 “하반기에는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대국민 홍보도 더 많이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처별로는 공정사회 구현과 관련된 홍보성 이벤트나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병무청이 지난달 스포츠 및 연예인 단체들과 ‘공정병역 실천 협약식’을 진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최근에는 이현동 국세청장이 직원들에게 “알선, 청탁이나 골프 모임 등으로 공정과세 노력을 퇴색시켜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그동안 △해외거주 사업가의 탈세 △대기업의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 △주식투자를 통한 변칙 상속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법률회사 취업 등 민감한 사안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그 결과 중 하나가 행정안전부가 17일 공개한 전관예우 금지를 강화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다. 경제부처 1급 공무원은 “과거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경제 관료)의 살을 도려내는 일이 눈앞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공정사회 구현에 대한 국민의 체감도는 왜 여전히 낮은 것일까. 총리실 관계자는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할 때마다 공직자 비리 스캔들 같은 사건들이 펑펑 터진다”며 “걸림돌이 턱턱 하나씩 앞에 놓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천명한 지 보름 만에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사건이 불거졌고, 지난해 말에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전관예우가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부산저축은행 예금 인출 사건으로 기득권층의 특권과 특혜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여기에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들이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부실 금융기관들의 감사를 무마해준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러면 그렇지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 무슨 공정사회를 한다는 것이냐”는 말까지 다시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공정사회 정책을 처음 내놨을 때 기득권층에서는 ‘정치적인 사정(司正)에 이용하려는 목적’이라고 반발했다”며 “그런 일각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름대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업무가 아래로부터 지지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장 가시적 효과는 적을지 모르지만 지속가능한 제도 및 문화 개선을 통해 공정사회 과제들을 꾸준히 추진해나갈 방침이다. 일례가 새치기를 없애기 위한 예약문화 개선이다. 특히 병원을 일찌감치 예약하더라도 ‘힘센 분’이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불공정 예약문화를 고치기 위해 민간과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한 TF 관계자는 “시민사회의 문화 개조가 없다면 공정지수를 앞당기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의사협회, 병원협회와 손잡고 시민사회와 협력해 캠페인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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