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4101억 세금 추징 ‘시도상선’ 권혁회장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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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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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175척 보유 ‘숨은 선박왕’… 사업 20년만에 거부로 우뚝

권혁 시도상선 회장은 국제 해운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국내에선 ‘숨은 선박왕’으로 불려왔다. 시도상선이 보유한 대형선박 수가 175척(국세청 발표는 160척)으로 국내 1위의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160여 척보다 많은데도 해운업계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시도상선을 세계적 선박임대업 및 해운업체로 일궜지만 국세청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탈세로 규정했다. 권 회장 측은 “사업 시작 이후 한국에서 가져간 자금이 전혀 없고 일본에서도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며 “오히려 해외에서 돈을 벌어 최근 5년간 현대중공업, STX조선 등에 선박 3조5700억 원어치를 발주하는 등 한국을 도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권 회장을 한마디로 ‘유령(幽靈) 경영자’라고 말한다.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본인의 한국 내 행적을 지워버린 비리 기업인이라는 것이다.

○ “권 회장은 한국의 오나시스”

시도상선은 권 회장이 1993년 일본 도쿄에 설립한 해운회사다. 처음에는 자동차운반선 회사로 출발해 벌크선, 탱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갔다. 2005년에는 법인을 일본에서 홍콩으로 옮긴 뒤 ‘시도시핑HK’라는 간판으로 바꿔 달았다. 한때 보유 선박이 300척에 이를 때도 있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 시황이 나빠지자 선박을 대거 처분해 현재에 이르게 됐다. 홍콩은 개인소득세만 부과하기 때문에 많은 해운사가 운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홍콩에 ‘헤드 오피스’를 두고 있다는 게 시도상선 측 설명이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선박 보유량이 급증하면서 해운업계에서 ‘한국의 오나시스’라고 부르기도 했다”면서도 “외국 선사로 분류되면서 국내 해운사와 교류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이 해운업에 몸담게 된 것은 경북고와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뒤 1974년 고려해운에 입사하면서부터다. 고려해운에서 단조로운 서류 업무에 싫증이 난 권 회장은 1979년 현대종합상사에 지원해 합격한 뒤 현대자동차 수송부에서 선적 업무를 담당했다. 1988년 1월부터 현대자동차의 일본 도쿄지사에 근무하다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의 투자를 받아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돼 20년 만에 개인 재산이 수조 원이 넘는 거부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마루베니의 전폭적인 지원과 사실상 제로 금리인 일본 엔화 자금을 이용한 선박투자 등에 힘입어 시도상선도 급속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시도상선의 한국 대리인은 “한국에서 국적(國籍)선사로 등록해 본격적인 영업을 하려고 준비하던 차에 해외 탈세를 했다고 모욕을 주는 것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 최대 규모의 조세 소송 될 듯

서울 서초동 시도상선 사무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G5센트럴프라자 5층의 시도상선 국내 사업장 사무실. 국세청은 해외 탈세 조사를 통해 이 회사와 사주 권혁 회장에게 4101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국세청 발표 이후 회사 측은 사무실 불을 모두 끄고 문을 잠근 채 철수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서초동 시도상선 사무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G5센트럴프라자 5층의 시도상선 국내 사업장 사무실. 국세청은 해외 탈세 조사를 통해 이 회사와 사주 권혁 회장에게 4101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국세청 발표 이후 회사 측은 사무실 불을 모두 끄고 문을 잠근 채 철수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번 세무조사의 최대 쟁점은 권 회장이 과연 국내에 거주하지 않은 조세피난처 거주자인지 여부다. 국내 거주자가 아니면 국세청에 과세 권한이 없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례를 비롯해 해외 탈세 조사 때마다 논란 속에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세무조사 결과 권 회장은 국내 거주 장소를 은폐하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의 임대차계약서를 친인척 명의로 작성했다. 아파트와 상가, 주식 등 자신이 국내에 보유한 자산의 명의도 해외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 이전했다. 시도상선 측에선 “권 회장의 주민등록이 한국으로 돼 있고 아들이 한국에서 병역을 마쳤다는 이유로 거주자로 간주했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2006년 3월까지는 일본 거주자로 일본 국세청에서 과세했고 이후로는 홍콩에서 거주했다”고 해명했다.

권 회장은 또 자신이 보유한 175척의 선박도 바하마 등 조세피난처에 있는 해외 페이퍼컴퍼니 소유로 돌려놓았다. 국내에서 해운업을 하면서 생긴 각종 계약서와 대금청구서 등은 국내에 놔두지 않고 홍콩의 시도시핑HK로 보냈다. 국세청이 시도시핑HK를 찾았을 때 해운사업의 핵심 조직인 영업, 운항 직원은 전혀 없었으며 경리직원 일부만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권 회장이 한국에 거주하면서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 및 구두(口頭) 지시로 회사 경영 전반에 관여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시도상선 측은 “자금 집행과 사업 계획, 영업 활동, 증권 발행 등 주요 의사결정을 모두 홍콩에서 했다”며 “본사를 일본에서 홍콩으로 이전한 이후 중국 매출이 2%에서 12%로 성장한 반면 한국은 51%에서 8%로 줄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세청은 권 회장 외에 수출입 과정에서 허위 문서 작성, 해외에서 벌어들인 주식 양도소득 및 이자소득 누락, 변칙적인 외환거래를 이용한 해외 부동산 편법 취득 등 40건에 대해서도 640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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