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광영]‘콩밥’보다 ‘돈줄 차단’… 양진호의 아킬레스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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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구속되면 3억 원, 집행유예 1억 원, 벌금형 받으면 그 돈의 2배로 보상.’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47·구속)의 측근이었던 한 내부 고발자는 지난달 양 회장의 독특한 ‘임직원 인센티브’를 폭로했다. 경찰 수사로 드러난 양 회장의 핵심 경영방침은 자신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는 국내 1, 2위 웹하드 업체를 거느리면서 측근들을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배후 조종했다. 음란물 유포나 저작권 침해가 적발되면 이들이 처벌을 받았다. 그 대신 출소 후 승진하거나 거액의 성과급을 받았다. “양진호 왕국은 별들의 천국”이란 말도 있다.

양 회장이 몇 개월 감옥살이나 벌금 몇백만 원을 두려워한 것 같지는 않다. 사업에 지장이 생기는 게 싫었을 것이다. 그가 구축한 불법 음란물 유통 카르텔은 감시망을 벗어난 황금알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일단 원료 값이 안 든다. 성관계 몰카 등 불법 촬영물은 저작권료를 달라는 사람이 없다. 인터넷에 대량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헤비 업로더’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매출의 10∼18%만 떼어준다. 이들이 물어오는 불법 촬영물은 인기가 많아 일본 성인물(AV)보다 수익이 10배 이상 높다. 이들이 ‘콩고물’로 받아가는 돈만 수천만 원이다.

양 회장은 정부 규제를 사업 다각화에 역이용했다. 웹하드 업체는 불법 촬영물 등을 걸러내는 필터링 업체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데, 양 회장은 ‘셀프 감시’용 필터링 업체를 차명으로 세웠다. 리벤지 포르노 등 금지 품목은 무사통과됐다. 게다가 온라인에 퍼진 불법 촬영물을 지워 주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까지 운영해 추가 수익을 냈다. 벼랑에 몰린 피해자들이 영상을 지워 보겠다며 어렵게 마련한 돈까지 양 회장의 주머니로 갔다. 경찰은 양 회장이 이렇듯 ‘깔때기’로 쓸어 담은 부가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본다.

그동안의 검경 수사는 이 비즈니스 모델을 건드리지 못했다. ‘빨간 줄’을 각오하고 고용된 바지사장들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정보통신망법)을 선고받을 뿐이었다. 대표 이름만 바뀔 뿐 이 수지맞는 사업은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몰카 유포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인 동시에 산업이다. 일반 성범죄자와 달리 디지털 성범죄자는 잔인무도한 사업가에 가깝다. 유포 피해자의 인생 위기를 사업 기회로 본다. 이들에겐 ‘콩밥’도 필요하지만 ‘돈줄’을 끊는 게 더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들을 단죄할 수단이 아직 부족하다. 음란물 유통 수익에 대한 몰수·추징은 2012년부터 가능해졌다. ‘범죄수익 은닉 규제법’이 적용되는 중대 범죄에 음란물 유통이 그때서야 포함됐다. 실제 몰수가 이뤄진 경우는 별로 없다. 경찰이 최근 양 회장의 범죄수익 일부인 71억 원을 ‘기소 전 몰수 보전’ 조치한 게 거의 유일한 사례다. 71억 원도 빙산의 일각이다. 양 회장과 거래한 헤비 업로더들이 받았던 10∼18%의 수수료 수입을 경찰이 역산한 액수가 그 정도일 뿐이다. 양 회장이 누군가의 사회적 죽음을 이용해 번 돈을 모조리 토해내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몰카 등 불법 촬영 피해자들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 사진, 내 영상을 봤을까” 하는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고 한다. 노출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피해를 본 유튜버 양예원 씨의 변호인은 7일 마지막 재판 직후 “피고인이 했다고 생각하는 잘못과 피해자가 짊어질 무게 사이엔 괴리가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제가 강간이나 성추행을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선처를 호소하곤 한다. 이들에게는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해 정확한 금액으로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양진호 같은 사람들이 만든 더러운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없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양진호#불법 음란물 유통 카르텔#정부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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