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사고로 총리 질책 받고도… ‘잘못 끼운 케이블’도 발견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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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멍난 코레일 안전]강릉선 KTX 황당한 탈선 사고

“만약 평창 올림픽 때 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할 뻔했나요.”

8일 발생한 강원 강릉시 고속철도(KTX) 탈선에 대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강릉시 운산동 사고 현장을 찾아 오영식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을 질책하며 한 말이다. 사고 직후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등 5개 기관의 현장 확인 결과 사고가 난 남강릉 분기점의 선로전환기 2개는 고장 상태를 외부로 알려주는 케이블이 서로 엇갈려 연결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이 언제부터 다른 선로전환기의 상태를 표시하고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 올림픽 기간에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한국철도학회 관계자는 “통상 1건의 큰 사고가 표면에 드러나면 실제로는 300번의 작은 사고가 숨어 있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산업 현장의 정설”이라며 “최근 잇따른 대형 철도 사고는 국내 철도안전 체계의 위험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 또 선로전환기 고장, 7년 만에 동일 문제로 탈선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에 가깝다. 위험 신호는 사고 발생 전부터 감지됐다. 사고 직전 강릉역과 코레일 관제센터에는 강릉차량기지 방향으로 열차를 보내는 ‘21A’ 선로전환기의 문제 신호가 접수됐다. 코레일 직원들이 현장 점검을 했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케이블이 잘못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작 고장 난 ‘21B’ 선로전환기는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열차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신호가 뜬 서울행 선로(21B 관할)로 직선 주행을 했다가 사고가 났다. 전환기 고장으로 선로가 서울 방향으로 완전히 이동하지 않고 강릉차량기지 방향과의 사이에 어중간하게 있다 보니 열차 바퀴가 그 틈으로 빠져 버린 것이다.
8일 오전 KTX 탈선 사고가 발생한 강릉선 남강릉분기점. 사고 당시 서울 방향 B 선로전환기(주황색)가 고장나 있었지만, A와 B 
선로전환기에 신호를 공급하는 케이블이 엇갈려 꽂혀 있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관계자들은 강릉차량기지와 연결된 A 선로전환기(파란색)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고장나있던 B 선로전환기에 대해 A 선로전환기의 고장나지 않은 상태가 열차에 전달됐고, 열차는 그대로 직진을 하다 탈선을 
일으켰다. 국토교통부 유튜브 계정 캡쳐
8일 오전 KTX 탈선 사고가 발생한 강릉선 남강릉분기점. 사고 당시 서울 방향 B 선로전환기(주황색)가 고장나 있었지만, A와 B 선로전환기에 신호를 공급하는 케이블이 엇갈려 꽂혀 있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관계자들은 강릉차량기지와 연결된 A 선로전환기(파란색)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고장나있던 B 선로전환기에 대해 A 선로전환기의 고장나지 않은 상태가 열차에 전달됐고, 열차는 그대로 직진을 하다 탈선을 일으켰다. 국토교통부 유튜브 계정 캡쳐

남강릉 분기점의 선로전환기 케이블은 사고 지점에서 약 6km 떨어진 청량신호소 내 신호기계실에 꽂혀 있다. 지난해 6월 설치됐다. 박규환 코레일 기술본부장은 “(선로전환기) 최종 점검이 지난해 9월 17일 있었고, 그때 결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국토부 측은 “누가 언제 케이블을 잘못 연결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공사를 끝냈을 때부터 케이블이 잘못 연결돼 있었는지, 추후 유지보수 과정에서 코레일 측에서 문제를 일으켰는지 조사하겠다는 뜻이다.

강릉선은 지난해 12월 개통했다. 개통 후 1년간 이상 유무를 알지 못했다. 오 사장은 “(평창 올림픽 때) 장애가 발생했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다행히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열차 10량 전체(기관차 2량 포함)가 선로에서 이탈했다. 당시 충격으로 앞쪽 2량은 T자로 꺾인 채 튕겨 나갔다.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저속 주행(시속 103km) 중이어서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철로 양쪽은 20∼30m 높이의 급경사로 열차가 아래로 추락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구간이다.

선로전환기 관리 문제는 2004년 KTX 상업 운행 이후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됐다. 2011년 2월 경기 광명시 경부고속선 일직터널에서 발생한 KTX 탈선 역시 이 장치의 너트가 빠지면서 선로 전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도 전문가는 “7년 전 문제를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또다시 사고가 났다”고 했다.

○ 비상안전경영, 총리 질책 끝나자마자 사고

국내 철도의 ‘안전 불감증’이 정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레일은 철도 사고가 빈발하자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비상안전경영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마저 5일 대전 코레일 본사를 찾아 “국민 불신을 완전히 불식할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음에도 사흘 만에 역대 두 번째 KTX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철호 의원(자유한국당)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7월까지 코레일의 기관차·전동차 고장 건수는 661건으로 사흘에 한 번꼴이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종합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수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으로 고속철도용 신선(新線)에서는 탈선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며 “이번 사고도 만약 300km로 달리다가 났다면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박재명 jmpark@donga.com·서형석 / 강릉=이인모 기자
#강릉선 ktx#황당한 탈선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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