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난 뒤 왜 저만 설거지해야 하죠?”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4월 29일 16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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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0, 40대 여성 사이에서 가장 핫한 대화 주제는 며느리의 ‘시집살이’다. 시집살이란 말 자체가 왠지 구시대적 느낌이 강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고부갈등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숙제임이 분명하다.

최근 ‘며느리’를 소재로 삼은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집살이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연재되고 있는 웹툰 ‘며느라기’를 비롯해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책 ‘며느리 사표’ 등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며느리상을 보여준다. ‘여성의 삶을 옥죄는 며느리란 굴레를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찾아라’는 도발적 메시지들이다.

대물림되고 있는 시집살이

[ⓒ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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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첫 방송된 MBC 교양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서서히 타오르던 며느리들의 ‘봉기 의식’에 제대로 기름을 끼얹었다. ‘전지적 며느리 시점’을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고 있는 며느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세 며느리는 여전히 ‘시월드’로부터 유형, 무형의 억압을 받고 있다.

[ⓒ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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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출연자 중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 씨에 대한 누리꾼의 반응이 뜨겁다. 박씨는 출산을 앞둔 만삭의 몸으로 시집에서 힘겨운 명절을 보내는가 하면, 시아버지로부터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자연분만을 강요받는다. 이런 상황에 김재욱이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자 시청자는 시부모와 남편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일부 누리꾼은 김재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찾아 악플을 쏟아냈고 결국 그는 SNS를 폐쇄했다.

더욱 씁쓸한 건 방송에 등장하는 갈등의 면면이 우리 현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이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결혼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시집과의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1년에 두 번씩 빠지지 않고 미디어에 등장하는 ‘명절증후군’ 얘기며, 집집마다 방식이 다른 제사에 얽힌 갈등, 손자에 대한 시부모의 집착 등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유형의 고부갈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가해자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갈등 당사자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물론이고,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제대로 처신하지 못해 원망을 듣는 남편도 일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기자 역시 10년 차 며느리다. 시집 식구로는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시누이 3명이 있다. 눈치챘겠지만 처음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열이면 열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겠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시누이 셋이 만들어갈 신비롭고도 이상한 ‘시월드’가 대번에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기자는 이상한 나라로 시집가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는 데다 시집이 전남 목포라 몸도 마음도 시집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시집 식구 어느 누구도 내게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자는 ‘팔자 좋은’ 며느리일까. 글쎄,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시집의 등쌀이 있고 없고를 떠나, 스스로 ‘좋은 사람=좋은 며느리’란 공식을 세워놓고 나 자신을 힘들게 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한동안 웹툰 ‘며느라기’를 보며 이불 속에서 혼자 너털웃음을 지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며느라기’에 등장하는 며느라기는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시기’를 뜻한다. 작가는 이 시기에 며느리 대부분이 시댁 식구에게 예쁨 받고 칭찬 받고 싶은 마음에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시집에 과잉 충성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꼬집는다.

자식의 경제적 독립 인정하지 않은 시부모

결혼하고 처음 맞은 추석, 기자는 회사 일로 추석 당일에야 시집에 갈 수 있었다. 음식 장만을 제대로 거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일찌감치 집에서 갈비를 재워놓았다 혼자 낑낑대며 들고 시집으로 갔다. 시집 어른들의 반응은 예상 그대로였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갈비를 해왔다는 사실에 시어머니는 물론이고 시집을 방문한 일가친척은 하나같이 “오메, 며느리 잘 봤어라”라며 칭찬을 퍼부었다. 그때 시작된 ‘갈비 재우기’는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며느라기’ 주인공 민사린 못지않은 ‘고구마’ 캐릭터로 비칠 수 있겠다.

반면 영화 ‘B급 며느리’와 책 ‘며느리 사표’에 등장하는 며느리는 이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들은 시집과의 갈등으로 죽을 만큼 힘들었고, 결국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경우다. 주변에서 접하는 고부갈등의 끝은 대부분 아름답지 않다.

결혼 8년 차인 40대 최모 씨는 지난해부터 시집에 가지 않고 있다. 명절에도 남편과 아이만 시집으로 보낸다. 최씨가 시집에 발길을 끊은 결정적 이유는 시부모가 아들 부부의 경제적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신혼생활을 시부모 소유의 빌라에서 시작했다. 1층에는 시부모가, 2층에는 최씨 부부가 살았는데,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다 보니 시부모의 간섭이 심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뒤 양육방식을 두고 심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최씨는 분가를 결심했고, 남편과 상의 끝에 시부모에게 나가 살겠다고 말했는데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독립 자금을 대주길 바라는 최씨 부부와 달리 시부모는 자신들과 함께 살거나 이혼해 며느리만 따로 나가 살라고 했다.

“며느리 한 명만 사라지면 모든 게 행복해지리라 믿는 분들 같아요. 분가 얘기와 함께 이혼 얘기가 나올 무렵 시부모님이 난데없이 남편에게 외제 스포츠카를 사주더라고요. 평소 남편이 갖고 싶어 했지만 제가 반대해 못 샀거든요. 마치 시부모님이 남편한테 ‘이혼하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사탕발림으로 어린아이를 꼬드기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이없었죠. 아무리 갖고 싶던 차라도 그걸 냉큼 받아온 남편을 용서하기 힘들었어요. 정말 이혼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남편이 월세를 살더라도 나가자고 해 분가를 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남편은 부모와 인연을 끊지는 못하겠다고 해서 원할 때면 언제나 아이와 함께 시집에 가요. 물론 저는 빼고요.”

결혼 5년 차인 직장맘 김씨는 시어머니의 얼굴만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시어머니가 고향 대구에서 수시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집에 머물기 때문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시어머니는 가끔 김씨에게도 명품을 선물하지만 김씨는 그런 게 전혀 달갑지 않다. 문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몸종 부리듯 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자기애가 정말 강한 분이에요. 시댁 집안일도 도우미 아줌마가 거의 다하고 젊어서부터 남편과 아들한테 공주대접을 받으며 사신 분이라 저희 집에 와서도 손 하나 까딱 안 하세요. 다른 시어머니는 며느리 살림에 너무 관여해 문제라는데, 저희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저를 하녀 부리듯 해요. 시어머니가 오시면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상 차리고, 점심 드실 것까지 다 준비해놓은 뒤 출근해요. 그것까진 이해한다고 쳐도 저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 집에 왔는데 시어머니가 드신 그릇들이 설거지가 안 된 상태로 그대로 있을 땐 힘이 죽 빠져요. 또 쇼핑하시느라 어린이집에서 애를 안 찾아와 난리가 난 적도 있어요. 이제 정말 한계가 온 것 같아요. 더는 시어머니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요.”

하루 세 번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전화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출연자 박세미 씨가 시아버지로부터 자연분만을 강요받는 모습. 방송 후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MBC 캡처]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출연자 박세미 씨가 시아버지로부터 자연분만을 강요받는 모습. 방송 후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MBC 캡처]
아들에 대한 시부모의 기대와 집착이 강한 경우에도 고부갈등은 피할 수 없다. 지난해 결혼한 30대 초반의 강모 씨는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 중이다. 중매로 치과의사와 결혼한 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전화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시어머니의 모든 관심사는 오로지 남편에게 맞춰져 있어요. 아침 7시만 되면 시어머니의 전화가 잠을 깨워요. ‘어제 ??가 술을 먹고 왔으니 아침에 시원하게 콩나물 해장국을 끓여라’ 식으로 명령을 내리죠. 점심때면 또 전화해 남편이 밥은 잘 먹고 갔는지, 옷은 깨끗이 입혀서 보냈는지 일일이 확인하세요. 심지어 남편에게까지 전화해 제가 한 말과 남편이 한 말이 맞는지 맞춰본다니까요. 저녁쯤 되면 저녁 반찬으로 뭐가 좋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으세요. 그러면서 ‘너는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의사 남편 얻기가 어디 쉽냐. 남편 몸 상하지 않게 네가 잘 해라’ 등 기분 상하는 말을 마구 쏟아내죠.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암담해요. 어머니 전화에 꼬박꼬박 답하는 남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머니와 남편 사이에 제가 들어갈 틈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고부갈등이 이혼으로 번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시어머니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현행 민법 제840조 3호와 4호는 본인이 시부모나 장인, 장모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또는 본인의 직계존속(부모·자식)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재판상 이혼 사유로 정하고 있다.

신은숙 이혼전문 변호사는 “상담하다 보면 부부관계 파탄의 원인이 결국 시부모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부분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며느리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혼 사유를 시어머니에게도 묻고 싶다면 남편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면서 시어머니를 ‘피고 2번’으로 지정하면 된다. 이 경우 남편과 시어머니가 함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고부갈등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어머니도 많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시집살이로 매도한다는 불쾌함의 표출이다. 심지어 며느리 눈치 보느라 속앓이를 하는 시어머니도 적잖다. 60대 후반인 시어머니 박모 씨는 처음 며느리가 인사하러 온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들이 한 명이라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내심 컸어요. 그런데 처음 며느리를 만난 날 며느리가 대뜸 ‘어머니, 저희는 명절을 어떻게 지내요?’라고 묻더라고요. ‘남들 하는 것처럼 지낸다’고 했더니 결혼하면 설과 추석 중 한 번은 자기네들끼리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하면 개념 없는 시어머니가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천천히 다시 얘기하자’고 했는데, 결혼하고 난 뒤 정말로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더군요. 또 명절날 아들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좀 싸주려고 하면 손사래를 쳐서 이제는 아예 ‘가져갈래?’라고 물어보지도 않아요. 아들 집에 가는 건 엄두도 못 내죠. 주변 친구들 보면 아들네 아파트 비밀번호를 다 알고 있던데, 저는 그런 생각조차 못 했어요. 며느리가 불편하면 제 맘도 편치 않아서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해요. 덕분에 아직까지 며느리와 큰 갈등은 없지만 가끔은 ‘이렇게 며느리 눈치 보려고 아들 키웠나’ 싶어 우울할 때가 있어요.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지 깐깐한 며느리가 왠지 무섭네요.”

특히 60, 70대 여성은 과거 자신은 혹독한 시집살이를 감내하고도 정작 자신이 시어머니가 된 지금에는 며느리에게 큰소리는커녕 도리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아직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경우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현재 96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70대 중반의 고모 씨는 “위아래로 치이니, 힘들어 못 살겠다”고 푸념한다.

“남편한테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에요”

“나도 며느리를 얻으면 조금 편해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상전 한 명을 더 모시고 사는 꼴이에요. 손자 예쁜 것도 잠깐이지,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니 내가 하루도 쉴 날이 없어요. 가끔은 아들 내외가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까지 하는데, 아이들을 못 봐준다고 할 수도 없고. 또 몇 년 전부터는 남편이 설날은 처갓집에 가서 지내라 해서 며느리 손 빌리기도 쉽지 않아요. 결혼 초부터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그걸 또 내가 다 받아주니, 우리 며느리처럼만 살면 세상 편할 거 같아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싸움에서 결국 화살이 향하는 곳은 남편이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갈등은 극으로 치닫는다. 결혼 4년 차인 30대 후반의 남성 이모 씨는 “내가 생각하던 결혼생활은 이런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건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부터다. 신접살림을 어디에 차릴지를 놓고 양가가 기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아내와 어머니 모두 이씨에게 “똑바로 처신하라”며 다그쳤다.

“저희 부모님은 결혼해 1년가량 같이 살기를 바라셨고, 아내는 절대로 안 된다며 맞선 상황이었어요. 아내는 ‘이럴 거면 그냥 여기서 끝내자’ 하고, 어머니는 ‘우리 집 식구가 되려면 네가 알아서 설득하라’고 야단이셨죠. 지금 생각해도 제 인생에서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내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지만, 어머니 말씀도 틀린 게 아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몇날 며칠을 폐인처럼 지냈어요. 결국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고집을 꺾으시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처음부터 관계가 틀어지니까 결혼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갈등이 생겨요. 아버지 생신을 집에서 할 거냐, 밖에서 할 거냐를 두고도 아내와 어머니의 의견이 달라 결국 부부싸움을 하게 돼요. 그럴 때마다 아내는 늘 제가 어머니한테 강하게 얘기를 못 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저로서도 억울한 면이 있어요. 아내 생각이 매번 옳다고 보지는 않거든요. 물론 머리로는 ‘무조건 아내 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또 ‘효자 아들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도 불편할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가정이 화목하려면 남편이 중재 구실을 잘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결국 남편들이 택하는 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올해로 결혼 8년 차인 최모 씨는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고부갈등은 없지만 2주에 한 번씩 본가에 갈 때마다 딸과 단둘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내가 어머니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불편해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굳이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아요. 아내가 직업상 해외 출장이 잦아서 부모님에게 둘러대기도 편하고요. 사실 결혼 초에는 저 역시 아내가 알아서 부모님에게 잘하기를 바랐어요. 제가 장모님한테 하는 만큼 아내도 저희 엄마를 살갑게 대했으면 했죠. 하지만 그게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장모님이 시집살이를 워낙 고되게 하셔서 그런지, 아내는 시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시부모와 만남을 최소한으로 해 갈등 요소를 아예 차단해버리겠다는 생각이 커요. 제가 결혼한 사람은 좋은 아내이지, 좋은 며느리가 아니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아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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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만 바꿔도 고부갈등 사라진다”

한편 고부갈등에서 뭐가 도대체 문제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남편도 있다. 이 경우 아내 처지에서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40대 주부 민모 씨의 얘기다.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부당함을 남편에게 얘기하면 그게 왜 문제냐는 듯이 바라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나 혼자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처럼 외롭고 서럽기까지 하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싶어서요. 흔히 남편은 ‘남의 편이어서 남편’이라고 하잖아요. 사실 남편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지도 않아요. 단지 ‘당신이 기분 나빴겠네’ ‘어머니는 도대체 왜 그러시냐’ 이 정도만 호응해주면 충분한데, 모든 갈등의 원인이 마치 나에게 있는 것처럼 얘기하면 도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싶어요.”

가족관계 전문가들 역시 고부갈등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은 바로 ‘남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창현 나우미가족문화연구소장은 “남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고부갈등이 쉽게 잠잠해지기도, 반대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기도 한다. 아내가 남편로부터 듣고 싶은 것은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냥 당신이 참아’가 아니라, 아내의 기분을 같이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말들이다.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건 남편으로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또한 결혼과 동시에 원 가족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이뤄야 한다. 부모 역시 자식이 새로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설 수 있도록 간섭을 최소화하고 모든 결정권을 자식에게 넘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우선순위’ 문제로 귀결된다. 결혼 전에는 부모와 관계가 1순위였다면, 결혼 후에는 부부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조 소장은 “내 아내가 힘들어하는 점이 뭔지, 내 남편이 싫어하는 것이 뭔지를 생각하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해진다. 둘 중 어느 누구도 가족 간 갈등에서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라도 배우자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방어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의사 표현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갈등의 시작은 말에서 비롯된다. 조 소장은 “보통 시어머니가 처음 며느리를 맞을 때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는 것이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며느리에게 ‘남편한테 이것 해줘라, 저것 해줘라’ 하고 명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며느리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들이다. 시어머니는 키우면서 알게 된 아들의 장점, 단점만 얘기해주면 된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는 표현은 자신에게도 똑같이 돌아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고부갈등의 주 원인은 양성불평등

며느리의 발칙한 반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사진 제공·캡처]
며느리의 발칙한 반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사진 제공·캡처]
며느리 역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시부모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때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라고 쏘아붙일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셔서 많이 속상했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라고 풀어서 설명하라는 것. 조 소장은 “가족 상담을 하다 보면 상견례에서 시어머니가 했던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시어머니를 증오하며 살아온 며느리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부갈등을 더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부갈등의 근본 원인은 양성평등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작진은 방송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 문제 가운데 여성 차별은 그 뿌리가 너무 깊다. 며느리이기에 느끼는 부당함은 결국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불평등과 맞물린다”고 말했다.

영화 ‘B급 며느리’ 속 주인공 김진영 씨도 시부모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이 집안에 어른이 넷인데, 밥 먹고 나면 왜 저만 설거지를 해야 하죠?”

명절날 며느리, 남편, 시어머니, 시아버지 할 것 없이 순번을 정해 설거지를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이제는 현실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김유림 기자

<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Main/3/all/20180429/89854323/1#csidx6804b69890a7677a5f9eb4f95cf12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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